▲ 정기훈 기자

언젠가 사람 들고 난 자리에 화분이 빼곡해 숲을 이룬다. 사람을 거른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대놓고 말하던 폴리스라인보다 세련됐지만, 그 말뜻이 다름없다. 아우성 넘쳤던 어디든 화분이 놓였다. 추운 날엔 사철 푸른 나무가, 따뜻한 날이면 빨갛고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영정 들고 행진 나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눈물을 예고한 광화문광장에도, 향냄새 끊이질 않던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있던 자리에도 어김없이 화분이, 또 화단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차마 화분을 밟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꺽꺽 울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거친 말들이 목구멍을 할퀴었다. 화분은 무거웠다. 또, 무서운 것이었다. 전운 높아가는 노동청 앞자리에 화분이 선제적으로 자리했다. 우리 도심 푸르게 푸르게, 녹화사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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