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언젠가 아들 자취방 찾아오던 엄마 양손엔 장바구니와 커다란 보자기가 묵직했다. 배추김치, 무김치와 멸치볶음, 오래 끓여 뽀얀 곰국이 거기 가득했다. 전철 타고 두 시간을 왔다는 얘길 듣고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지만, 그날 밥이 참 꿀맛이라 두 공기를 뚝딱 비우고 웃었다. 온갖 집안 살림과 남편 자식 먹여 살리는 데 한 치 부족함이 없던 엄마는 밖에 나가 일 하는 걸 멈춘 적도 없었다. 공장 식당에서 주야 맞교대로 밥을 짓고, 빌딩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억척스러웠다. 다 늙어 여기저기 삐걱대던 엄마가 어느 날 이제는 힘들다며 다 내려놓고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제발 좀 그러시라 맞장구쳤지만, 덜컥 걱정도 따랐다. 엄마가 해 온 그 많은 일을 어쩌나 싶었다. 집안 돌아가던 모든 게 다 멈출 것만 같았다. ‘뻥파업’에 그쳐 엄마 집 구석구석엔 여전히 윤기가 흐르고, 화초가 잘 자란다. 쑥쑥 큰 손주들이 찾아간 날이면 엄마는 부엌과 바깥 창고를 오가며 바쁘다. 어김없이 장바구니와 보자기에 들려 보낼 음식이 가득하다. 그만 좀 하시라고, 나는 또 한 번 투정 부린다. 대책도 없어 공허한 말에 그친다. 세상 많이 변했다니 아내가, 또 딸아이가 사는 모습은 좀 다를 것이라고, 나는 밀린 설거지와 집 청소를 하며 생각한다. 여전한 차별을 지적하고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느라 길에 선 사람들 앞에서도 그랬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파업’에 나선단다. 내 양손에 장바구니 무겁게 챙겨 들고 엄마의 파업을, 아내와 딸아이의 앞날을 응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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