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웠다. 비정규 법안은 아직 본회의도 통과하지 않았다. 현재진형행이다.

일부 취재원은 “입법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고 충고했다. 다른 이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아직 말할 때가 아니다”며 피했다. 많은 취재원들은 ‘오프 더 레코드’ 또는 익명을 요구했다. 취재원들이 이 정도로 부담스러워 하는데, 아무리 기사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라 하지만, 오죽했으랴.

10회에 걸친 기획은 사실에 바탕을 둔 평가성 기사이다. 기사들은 지난 1년8개월 동안 보도되지 않았거나 주요하게 취급되지 않은 이야기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들을 묶었다.

9회까지 연재하는 동안 불성실한 기자의 취재부족 때문에, 또는 꽁꽁 숨겨두고픈 사람들의 입단속 때문에, 또는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의 차이 때문에 누락되거나 담지 못한 이야기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담으려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확한 기록을 위해서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여러 한계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대목이 있더라도, 훗날을 위해 가능한 정확하게 담으려 애썼다.


가능한 정확하게

지난해 6월말쯤이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환노위 회의장을 점거 중이었다. 회의장 바깥 환노위 사무실에서 여당 의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법안심사소위원장이었던 이목희 의원에게 기자가 말했다. “그냥 후다닥 처리하죠.” 그러자 이 의원은 “좋다, 매일노동뉴스가 처리하자고 해서 처리하겠다고 하겠다”고 답했다. 기자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어차피 지켜지지도 않을 법,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도 무시되기 일쑤이고, 비정규직법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빈정대는 투로 들렸나 보다. 이 의원은 안색을 싹 바꾸면서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또다른 일화이다. 정기국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지난해 11월25일 밤이었다. 법안심사소위원장이었던 우원식 의원이 이목희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 의원이 “기자들이 자꾸 묻는다"며, "비정규직법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의원은 “처리한다고 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우 의원은 “정말 그렇게 얘기해도 되냐"고 반문한 뒤 "그럼 그렇게 얘기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두 가지 일화는 여당이 지난해 12월까지도 비정규 법안 처리를 주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 한해 동안 여당은 비정규 법안보다 오히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노사대타협’에 더 신경을 썼다. 비정규 법안은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유도책’으로 활용됐다는 말이다. 이목희 의원은 지난해 5월25일 노동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4월 노사정 논의의 가장 큰 성과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발을 깊이 담궜다는 것”이라며 “법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평가했다.

여당의 이런 태도는 환노위가 법안을 강행처리하던 지난 2월 국회 직전까지 지속됐다. 여당이 지난해 12월과 2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게 ‘사유제한 양보’와 ‘불법파견 고용의제 입법’을 맞바꾸자고 제안한 것도, 법안 내용보다는 법안 처리의 형식, 즉 사회적 대타협을 더 중시해서 내놓은 제안이었다.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에서 여당이 ‘사유제한’ 수용 가능성을 흘린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2월 국회에 들어서면서 비정규 법안을 더이상 끌고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월 회기 안에 못하면 영영 입법을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여당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사례로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김한길 원내대표는 지난 2월14일 노동부 당정협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회기 안에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 처음으로 여당이 ‘실제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드라이브는 2월27일 환노위 강행처리로 일단락됐다.

그전까지 국회 회기가 열릴 때마다 “조속 처리”를 강조한 것은, 실제 처리하겠다는 뜻보다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사회적 대화로 유도하는 압박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것이다.

사회적 대화 유도에 관심

지난 1년8개월 동안 노동계의 태도도 여당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노동계와 민주노동당 일부도 비정규 법안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집행부 끌어내리기에 대부분 힘을 쏟았다.

이는 지난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파행과 이수호 집행부 사퇴 등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집행부 반대파들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을 저지하기 위해 단상을 점거하고 대회를 파행시켰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결정으로 노사정 교섭이 열리자, '비정규 노동자를 버리면 안 된다'는 대단히 추상적인 도덕율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4월 당시 교섭에서는 ‘사유제한’ 도입이 기정사실화 단계까지 갔다. 사용자단체들은 어떻게 하면 교섭 국면을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만 하던 때였다. 진짜 교섭을 교란시키고 판을 깨고 싶어 했던 쪽은 사용자단체들이었다. 그러나 교섭장을 벗어난 것은 노동계였다.

이후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터지자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했다. 책임을 물어 사퇴를 요구하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지도부는 다음해 1월에 사퇴하겠다고 버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일부 메이저 연맹들은 “즉각 사퇴하지 않으면 하반기 투쟁을 조직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들은 비리가 벌어졌던 지도부를 믿고 어떻게 힘있는 파업을 조직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지도부는 이를 “싸우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은 민주노총이 전면 총파업을 해도 따낼 까 말까 한 사안이다. 지도부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사퇴했다.

지도부 사퇴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는 사퇴를 요구한 이들이 무엇을 더 중시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소한 비정규 법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도부 흔들기에 관심

이처럼 여당은 비정규 법안 입법에 관심이 별로 없었고,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은 설령 관심이 있었다 해도 힘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노총은 관심이 지대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한국노총은 비정규 법안보다 노사관계 로드맵과 양대노총 공조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국노총은 개악되지 않는 선에서 비정규 법안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한국노총은 그 선을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의 막판 절충안 수준으로 봤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지난해 11월30일의 이른바 ‘최종안’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4월 교섭 결과도 유실될 수 있었고, 노사관계 로드맵 국면에서도 노동계가 불리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정작 비정규 법안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집단은 정부법안을 제출한 노동부와 비정규노동자로 구성된 노조 일부, 비정규 관련 단체와 학계의 일부 인사, 사용자단체 정도였다. 정부는 정부 법안 관철을 위해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하는 순간까지 노력(?)했다. 비정규노조 역시 자신들의 문제인지라 대체적으로 비정규 법안 자체에 충실하고자 애썼다. 관련단체와 학계도 법안 내용에 더 관심이 높았다. 사용자단체들도 법안 내용을 들고 끝까지 국회를 상대로 로비전을 펼쳤다. 그러나 노동부와 사용자단체를 제외한 이들은 논의의 주요 주체가 아니었다. 핵심 주체는 양대노총과 여당, 민주노동당 정도였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대로 핵심 주체들은 법안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주체들이 관심이 없는데 법안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다. 법안은 인권위 의견표명과 이에 힘입은 사회적 여론의 뒷받침으로 지난해 4월 최고조에 달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노동계의 파업과 민주노동당의 점거는 사회적 여론을 움직이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당연히 법안도 후퇴했다.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에서 기정사실화 단계까지 갔던 ‘사유제한 도입’에 대해, 여당은 이제 ‘비현실적인 제도’라고까지 치부하고 있다. 4월 당시 교섭을 교란하고 압박하던 민주노동당이 시간이 흐르고 국회 차원에서 입법 논의가 시작되자 그 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분리처리’니 ‘사유제한 10개로 확대안’을 내는 등 안간힘을 써봐도 관철이 쉽지 않았다. 결국 법안은 4월 교섭 결과보다 후퇴한 쪽으로 중간 매듭이 지어졌다. 사공들이 딴 곳에 눈을 팔다보니 배가 산으로 간 꼴이다.

이쯤 되면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이 지난 1년8개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4월 교섭이 제대로 굴러갔다면 당시 또는 이후에라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사유제한을 명문화시키는 단계까지는 입법할 수 있었다. 불법파견 고용의제도 가능했을 것이다.


산으로 간 배

그렇다면 실제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과 불법파견 고용의제 도입이 가능했는지를 명확해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얼마나 후퇴했는지,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들이 어떤 ‘도둑’을 맞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5회분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여당은 지난 4월 중순 사유제한 수용을 검토하고 있었다. 4월14일, “국가인권위가 기간제 사용 시 사유제한을 하라고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애초부터 수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목희 의원의 관련 기자회견은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당시 노사정이 사유제한 도입에 근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지난해 4월20일, 교섭의 핵심 의제는 사유제한이었다. 사용자단체들은 “무조건 안 된다”고 버티면서도 “만약 사유제한을 하려면 제한사유의 결정권한을 사용자들에게 달라”고 했다. 노동부는 “사유제한으로 하면 제대로 규제가 안 되기 때문에 기간제한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사유제한을 명시하되 제한범위의 폭을 넓히자”고 했다. 이목희 의원은 “사유제한을 명시하되 제한범위의 폭을 넓히고, 대신 기간제한은 하지 말자”고 했다. 민주노총은 “사유제한을 명시한다면 구체적인 방안은 열어놓고 논의하겠다”며 “사유제한을 한다고 기간제한을 하지 말자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팽팽한 이견차이를 보인 것 같다. 사유제한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사용자와 경총이 반대했고, 노동계와 여당이 찬성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용자단체가 “결정권을 달라”고 한 대목은 상당히 의미있는 부분이다. 이는 사용자들도 사유제한 도입쪽이 대세였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 된다”고 버티기는 했지만, 정 안 되면 ‘사유제한 리스트’라도 자신들이 마음대로 정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사용자단체들이 얼마나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다른 사례도 있다. 4월21일 교섭 내용을 깊숙이 아는 민주노총 핵심 간부가 수첩을 잃어버렸다. 기자가 그 수첩을 주웠다. 그 수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일 이목희 사전면담. 사유제한 포함하되 제한범위 푼다. 이목희 설득.”

또다른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단병호 의원실 신언직 보좌관의 전언이다. 당시 신 보좌관은 20일의 노사정 교섭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일 회의에서는 사유제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노동계는 인권위 의견대로 사유제한을 수용하라고 했고 경영계는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 중재에 나선 이목희 의원이 경영계에게 사유제한을 수용하되 내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명무실하게 운영하는 방안도 있다고 넌지시 건넸다. 이 의원은 경영계에게 주5일제 법안과 유사하게 사업장 규모에 따라 시행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작은 사업장 순으로 점차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이었다. 경영계는 반대했다. 사유제한 범위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범위를 대폭 축소하거나 ‘네가티브 리스트’를 도입하는 방안 등도 집중적으로 논의됐으나, 노동계는 ‘그렇게 하면 의미가 없다’고 반대했다. 어떤 것도 합의 근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틀 뒤부터 교섭 분위기가 바뀌었다. 4월23일, 경총쪽에서 ‘사유제한’과 ‘동일노동노동임금’ 수용 의사를 밝혔다. 대한상의가 펄쩍 뛰었다. 당시 경총이 이를 수용하기로 한 것은 이목희 의원의 압력과 설득 때문이었다. 법안은 노동계 요구쪽을 많이 담되 시행령에서는 사용자쪽 요구를 대폭 담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설득을, 경총이 받아들인 것이다. 이 의원은 이대로 가면 6월에는 임단투가 걸려 있는데, 노동계가 임단투와 비정규 법안을 연계하면 경총이 더 힘들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늦으면 사용자쪽도 손해니까 ‘차차선’을 택해서라도 합의를 하자는 설득이었다.

그런데 23일 교섭장에서 대한상의가 반발한 이후 24일 교섭에서는 경총과 상의가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사유제한을 하되 3년 전에는 적용하지 말자는 뜻이었다”고 번복했던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에서도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는 사용자가 판단해서 예외로 하자”고 주장했다. ‘차차선’에서 사실상 정부안을 관철하는 ‘차선’쪽으로 돌아섰던 것.

그런데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유명무실한 ‘3+사유제한’이지만, 사용자들도 사유제한 도입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 사용자들은 끝까지 ‘3년+사유제한’을 고집했다. 그러나 교섭 막판에 민주노총이 ‘사전(입구) 사유제한’에서 ‘6개월+사유제한’이라는 ‘갱신 사유제한’이라는 형식을 내놓자, 사용자들은 양보 압력에 시달렸다. 앞서 기획에서 살펴본 대로 사용자단체들은 ‘3년+사유제한’을 지키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4가지 사유제한 목록’에도 사실상 합의했다. 기간의 문제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4가지 사유 외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 사용자쪽이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이어 터진 비리와 폭력사태 등으로 인해 노동계가 ‘공공의 적’인 양 비판받던 시기의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사유제한을 입 밖에 꺼내보기도 힘들었다. 누구 하나 대꾸조차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당시 이목희 의원은 ‘사유제한’을 “쟁점이 될 수 없는 쟁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만 해도 애초에 ‘사유제한 도입 수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했고, 교섭에서 사유제한 도입쪽으로 사용자단체를 압박까지 했던 이 의원이 이렇게 나온 것은, 그만큼 ‘노동’의 힘이 약화됐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12월 당시 단병호 의원이 사유제한 10가지를 제시한 것에 대해 단 의원실 관계자는 “논의 구조가 꽉 막힌 구조에서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자는 것”이었다며, “그랬더니 우원식 의원과 배일도 의원이 ‘10개가 뭔지 들어나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법안소위 테이블에서 사유제한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야기됐던 때”라고 회상했다. 4월 노사정 교섭 당시와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사유제한 리스트까지 합의

불법파견 판정 시 고용보장에 대해서도 짚어 넘어가자.

기획 7회분 <‘전부’ 아니면 ‘전무’>에서 자세히 다루기는 했지만, 이후 좀더 분명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기사를 보강할 대목이 있다. 7회분에서는 ‘여당 내부 설득이 가능했는지’와 ‘한나라당 반대를 뚫을 수 있었나’ 하는 부분이 실려 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우리가 우원식 의원이 제안을 수용했더라도 그대로 처리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했다.

우 의원이 밝힌 당시 사실관계는 이렇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환노위를 점거하고 있던 2월17일 우원식 의원이 단병호 의원에게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수용할 테니 ‘사유제한’를 양보해 달라며, 20일 오전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점거 중에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회의를 마치고 단 의원이 우 의원을 조용히 보자고 했다. 단 의원은 “제안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 내가 나서서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겠다”고 답했다. 우 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여겼다.

우 의원은 곧바로 김한길 원내대표를 만나 설득했다. “노동법은 사회적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서라도 이번에 민주노동당에서 제안을 수용하면, 어렵더라도 우리가 받자.” 이에, 김 대표는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수용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어 그는 강봉균 정책위의장을 만났다. 강 의장은 ‘규제 완화론자’이다. 그래서 평소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인 비정규 법안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의원이다. 그런데 강 의장도 “그렇게 하라”고 승낙했다. 우 의원은 제종길, 김형주, 이목희 의원 등 환노위 여당 의원들과도 만나거나 연락했다. 이들 의원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배일도 한나라당 간사를 찾아갔다. 우 의원은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표결에는 참여해 달라”고 했다. 배 의원은 “회의가 열리고 심의가 끝나면 표결에 당연히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우 의원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설령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여당 의원들과 단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면 법안 통과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여당 내부 설득과 한나라당 문제를 모두 해결한 우 의원은 ‘다 끝났다’는 생각에 ‘기분좋게’ 20일 회의장을 찾았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대뜸 회의장 점거에 들어갔다. 민주노동당이 우 의원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불파 고용의제’는 없던 일이 됐다.

불파 고용의제가 날아가다

비정규 법안의 다른 조항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두 가지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기간제 노동자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삶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노동운동 지도그룹이 ‘원칙을 지키는 멋진 자세’를 보이는 사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이 흔들린다. 노동운동 지도그룹은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집안싸움 하느라 도둑 든 줄 몰랐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혹자는 왜 그 책임을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에게만 묻느냐고 질책한다. 더 큰 책임은 정부와 여당, 사용자들에게 있지 않느냐며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들이 내놓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한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노동쪽으로만 화살을 돌리는 것이 노동언론으로서 할 짓이냐고 따진다.

맞다. 정부여당과 사용자쪽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 책임을 물으려면 정부여당과 사용자가 노동계나 민주노동당보다 진실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과 눈물을 닦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세력, 또는 노력해 온 세력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질책을 하는 이들은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가.

또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나 기본권 신장에 별 관심도 없고 오히려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려고 하면서, 이걸 하기 위한 비정규 법안을 ‘보호법’이라고 자꾸만 선전하는데, 왜 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이, 단 한번이라도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 의지를 기대하거나 믿은 적이 있는가. 그들의 선의를 인정한 적이 있는가.

비정규 법안과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온전히 노동운동이 싸워서 따낼 몫이다. 따내서 쟁취해야 할 몫인데도, 온 힘을 다 쏟아 싸워도 모자란 판국이었는데도, 지난 1년8개월 동안 주요 주체들은 ‘싸움’에 성실하지 않았다. '싸움'에 성실하려면, 이 싸움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성실해야 한다. 그래야 힘의 관계를 정확히 보고, 전략적으로 전진과 후퇴를 병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노동’ 책임이냐고?

혹자들은 또 이 기사가 특정 세력 또는 특정 정파의 입장에 서서 특정 세력이나 정파를 겨냥한 기획물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도 보낸다. 이 의혹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

이 기사는 특정 세력이나 특정 정파의 입장에 서려고 애 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세력과 정파는 현존하는 세력이나 정파가 아니다. 굳이 꼽자면 노동자 대중, 비정규 법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될 현재와 미래의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했다. 기자는 기존 정파 구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정파 구도에도 큰 관심이 없다.

그리고 겨냥한 쪽은 분명하다. 기사가 나갈 때마다 뜨끔거리거나, 심기가 불편한 집단이나 개인, 세력을 정면으로 조준했다. 왜? 반성해야 하니까.

노동운동은 자신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참지 못한다. 비판과 비난을 구별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노동운동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진보운동진영이 그러하다. 내부 비판조차 어색해 한다. 몸에 익지 않아서다. 안 그래도 외부로부터 공격에 늘 상 노출돼 있는 ‘공습경보’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은 호심탐탐 노동운동의 후면을 노린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마당에 내부 비판을 하는 것은 그래서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같은 논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운동을 정체하게 만드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은 성역이 아니다. 대부분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성역은 없다는 뜻이다. 일부 급진적인 국민들은 노동운동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정권과 보수언론들이 펼친 집요한 선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왜 먹히는지에 대해 노동조합은 자신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 비정규 법안 공방을 둘러싼 각 주체들의 태도는 노동운동의 현 지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먼저 조직한 자에게는 공격이 집중되는 만큼 명예가 주어진다. 먼저 조직했으니 먼저 각성된 만큼 과실의 크기도 크다. 그러나 지금은 양극화다. 월급의 양극화뿐 아니라 권리의 양극화도 있다. 지금 노동의 현실을 보자. 먼저 조직한 자가 공격받고 있나, 아니면 비정규, 특수고용 노동자가 공격받고 있나.

노동운동이라는 것이 먼저 조직한 자들의 명예나 지갑을 위한 게 아니라면, 때로는 부끄러움, 심지어 굴욕까지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조직했다고 힘이 더 센 것도 아니다. 후위가 무너지면 전위는 힘을 쓸 수 없다. 이미 그렇다. 그런데 힘이 모자라는 자가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 그때 도장 찍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수는 있어도, ‘나는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는 훈장을 얻을 수는 있어도, 결코 후위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이 지금 두려워하는 게 정녕 무엇인가. 내셔널센터의 주도권을 잃는 게 두려운가, 민주노동당의 주도권을 잃는 게 두려운가. 아니면, 자신들의 실력이 공개되는 게 두려운가, 자신의 정체성이 공개되는 게 두려운가.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두려운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중의 눈에서 눈물마저 마르게 되는 상황이 아닌가. 눈물이 마르면 어떤 선동도 통하지 않는다.

아직도 못 다 쓴 이야기
전화 한통 안 왔다. 아니 전화는 많이 받았다. 모두 ‘격려’ 또는 사실관계를 ‘보강’해 주겠다는 전화였다. 그런데 ‘항의’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 연락처를 모를 리도 없건만 왜 한통의 항의전화도 오지 않았는지, 아직도 의아하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실명 또는 익명의 댓글들이 더러 붙었다. 사실관계를 정정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고, 관점이 이상하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 기사가 매일노동뉴스의 입장인지, 기자 개인의 입장인지를 묻는 ‘공개질의’도 있었다.


우선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국장은 두 가지 대목에서 정정을 요청했다. 윤 국장은 우선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권리입법으로 성안되었던 안은 2004년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2000년부터 논의·마련되었던 법안과 99년 이후의 비정규직 투쟁에서 제출됐던 요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그렇기에 짧은 시간 동안, 사실상 몇몇 문구를 다듬는 수준에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윤 국장은 또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2005년 4월 국가인권위 의견 제시 이후 ‘권리입법’ 대신 인권위 수준으로 요구를 후퇴시킨 것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며 “당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 및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은 공식적으로 이러한 요구안 후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권리입법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두 가지 문제제기 모두 사실이다.


당시 다급한 분위기 속에서 권리보장입법의 문구를 다듬는 수준에서 서둘러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전비연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이 성명 등을 통해 문제제기를 한 것도 사실이며,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은 윤 국장의 문제제기 그대로 정정하겠다. 지적에 감사드린다.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관점이 이상하다’ 또는 ‘조중동식 기사’ 등등의 비판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양식에 맡기겠다.


또 구권서 전비연 의장은 매일노동뉴스의 입장인지 기자 개인의 입장인지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매일노동뉴스라는 매체는 기자 개인의 일기장이 아니라 데스킹 과정을 거쳐서 출판되는 매일노동뉴스의 자산이다. 이 정도면 답변으로 충분하리라 믿는다.


기획기사를 통해 현장에서 힘들게 싸우는 노동운동가들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진정성을 부정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었다. 기자에게 그럴 자격이 있지도 않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짚고 넘어가자.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운동 지도그룹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선전해 주는 기관지가 아니다. 매일노동뉴스는 땀흘려 일하고, 싸우는 노동자 대중의 편에 서서 기존 보수언론의 조명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왜곡되는 이야기를 사실대로 담아내는 언론으로서 기능하고자 늘 애쓰고 있다.


편에 서는 것과 사실에 눈 감는 것은 엄연하게 다르다. 비판에 성역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기자는 믿고 있다. 노동운동 지도그룹도, 잘못된 것을 보고도 입을 다물거나 ‘미담’ 기사만 내보내는 매일노동뉴스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매일노동뉴스가 그런 언론을 지향한다면 기자는 아마 여기에 몸담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기자 본인은 지난 2주 동안 ‘항의’ 전화 한통 받지 못했는데, 동료 기자들이나 주변인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요즘 유행어로 ‘대략 난감’했다. ‘사실’ 또는 ‘진실이라도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의견을 기사에서 최우선으로 배치하고자 노력했다. 그외의 일방적 주장이나 의견, 기사의 흐름과 큰 상관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은 일단 제쳐놨다.


기사를 쓰면서 많이 반성했다. 지난 1년8개월 동안 비정규 법안을 둘러싼 관계들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했으면서도, 그때마다 이런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거나 못 했다. 자질이 부족해서였다.


마지막인 10회분 제목을 ‘못다 쓴 이야기’라고 붙였지만, 취재수첩을 뒤적여 보니 여전히 ‘심증’만 있고 사실관계 확인을 못 끝내서 ‘못 다 쓴 이야기’들도 많았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들을 쓰게 될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편집자 주> 비정규 법안은 지난 2년간 노동계의 핵심 현안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법안을 계기로 공조하다 이 법안 때문에 헤어졌다. 법안을 낸 정부도 결과적으로는 이 법안에 발목이 잡혀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위 개편 등 산적한 과제들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비정규 법안은 핵심 현안이었던 게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제 이슈였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900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실제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철폐를 주장하든 양산을 주장하든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정당이 있다는 게 바로 그 반증이다.

이는 비정규 법안을 둘러싼 공방이 사회화가 '덜' 되어도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어쩌면 사회화가 '덜' 돼야 사회적으로 용납이 됐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법안 내용은 실로 단순했으나 법안을 둘러싼 사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노동계 내부와 정치권 내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파워게임이 이 법안을 둘러싸고 이어졌다. 욕심과 주장과 변명이 뒤엉켰다. 한국 노사정의 수준이 이 법안 공방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도 진정으로 격분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비정규 법안 공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년간의 기록을 2주에 걸쳐 10회에 나눠 싣는다. 그간 보도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최대한 담을 생각이다. 다 끝난 마당에 이런 기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이 공방은 이후 옷만 바꿔 입은 채 다시 반복될 것이다. 명분과 몸 사리기에 빠져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무책임한 행위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획시리즈는 그래서 ‘철지난 선데이서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경고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재순서
1. 아무도 원하지 않은 '수건 돌리기'
3. 센터링 한 번에 자살골 두 번

5.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 
7. ‘전부’ 아니면 ‘전무’ 
9.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이 말라간다
2. 저지냐 쟁취냐, 그것이 문제로다
4. 노사정 교섭 최종안 있었나

6. 한국노총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8. 환노위 강행처리의 진짜 이유
10. 못 다 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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