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된 파견법 가운데 불법파견 부분은 ‘2년 후 고용의무’로 돼 있다. 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해 만든 수정안인데, 이는 한나라당원안과 같다.

지난해 4월 인권위 의견은 ‘고용의제’였다. 지난 11월말까지의 노동계 공통 요구안도 ‘고용의제’였다. 한국노총 최종안과 지난해 12월 여당이 낸 수정안은 ‘즉시 고용의무’였다. 한나라당은 ‘2년 후 고용의무’였고, 정부원안은 ‘3년 후 고용의무’였다. 사용자단체는 불법파견을 법안에 명시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각자의 입장들이 부딪히다가 결국 법안은 한나라당 요구대로 통과됐다.

‘고용의제’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그 회사에 입사했던 시점부터 기산해서 원청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즉시 고용의무’는 불법파견 판정 즉시 원청 사용자가 해당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고용의무’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을 시 해당 사업장에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 대해서만 고용을 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2년 이하 근속 노동자에 대해서는 고용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2년 이하의 불법파견을 법으로 용인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단 한 글자 차이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그렇다면 법안은 어떤 경로를 거쳐 한나라당 요구안대로 통과된 것일까.


우원식 “맞바꾸자” 제안

지난해 12월16일.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 국회가 공전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우원식 환노위 법안소위원장이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났다. 비공개 면담이었다. 민주노총쪽에서는 전재환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배강욱 당시 비대위 집행위원장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우원식 의원이 민주노총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노동계의 요구인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수용할 테니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사유제한 도입을 양보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전재환 위원장은 “단병호 의원이 제안한 사유제한 10가지를 여당이 수용하면 우리도 수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우 의원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약간 논란이 빚어졌다. 내부에서는 “언제 우리가 사유제한에 목을 매 달았느냐”며 우 의원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사실 불법파견 문제가 해소되면 민주노총도 조직 내부적으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는 ‘원칙’을 지키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사유제한 도입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는 게 대체적인 기류였다.

당시 우원식 의원은 민주노총이 암묵적으로라도 수용하면, 단병호 의원을 설득해 볼 요량이었다. 불법파견 고용의제는 당시 여당의 수정안도 아니었다. 여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즉시 고용의무’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우 의원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설득에 성공하면 여당 의원들도 동의하고 동참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 의원만 법안소위에 참석하면 법안심의와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한나라당이 계속 등원을 거부할 경우 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만 참석하는 전체회의를 열어서 처리하는 방안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우 의원의 이런 계획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갔다.

민주노총 거부

해가 바뀌고 2월 임시국회가 열렸다. 제종길 여당 간사는 2월7일 소위를 열어 비정규 법안 심의를 마치고 9일 전체회의에서 처리하는 일정을 한나라당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10일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있던 민주노총쪽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들이 국회를 찾아 항의했다. 여당은 선거가 있는 10일까지는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법안소위를 앞두고 노동부가 환노위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정부원안대로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더라도 3년 이상 일한 노동자에 한해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파견기간을 3년으로 하자는 정부원안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당은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우원식 의원을 제외한 여당 의원들은 불법파견 판정 즉시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은 불법파견 판정 시 고용의무로 하느냐 고용의제로 하느냐 하는 논쟁보다는 고용의무의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반면 우 위원은 불법행위로 판정된 것 자체가 원인무효이므로, 해당 노동자는 사용 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우 의원의 소신이었다.


여당 ‘고용의무’ 선호

우 의원은 2월 중순 다시 한번 이같은 ‘소신’을 펴 보려 했다. 우 의원은 2월16일 단병호 의원을 만나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수용할 테니, 사유제한 도입을 양보해 달라’고 제안했다. 법안소위는 17일 열기로 예정돼 있었다. 따라서 이는 사실상 법안 처리를 앞두고 여당이 민주노동당쪽에 보낸 최후통첩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부 의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며 “어차피 우리 실력으로 저지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하나라도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 제안을 수용하자”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원칙’을 강조하며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론을 못 내린 의원단은 이 문제를 당 지도부와 상의하기로 했다.

16일 오후2시쯤 당사에서 긴급 의원단-최고위원단 연석회의가 열렸다. 대부분의 최고위원들과 천영세 의원단 대표, 단병호 의원이 참석했다. 대부분의 당직자들도 이 회의의 의제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회의 결과는 ‘수용 불가’였다. 여당의 공식적인 제안도 아니므로 진정성도 의심스럽고 원칙과도 맞지 않으므로 당론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당시 회의의 결론이었다. 대신 이날 회의에서 이들은 17일 법안소위를 봉쇄해서 법안 처리를 저지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17일 환노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법안소위는 파행됐다. 우원식 의원은 사유제한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표결 처리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여당의 제안을 수용할 것인가 여부를 두고 다시 머리를 맞댔다. 전날에 이어 이날 오후 1시께 다시 의원단-최고위원단 연석회의가 비공개로 열렸다. 역시 이날 회의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일부 의원들은 우 의원의 제안을 수용해 불법파견 문제만이라도 해결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당과 민주노총의 투쟁이 고양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의장 점거 전술만으로는 어떤 것도 따낼 수 없다는 현실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여당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따내는 것도 좋지만, 사유제한을 포기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당이 원칙을 버렸다는 비난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감도 이같은 결정의 한 배경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도 거부

민주노동당은 자체적으로 이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불법파견 문제로 싸우고 있는 사내하청노조의 ‘동의’와 민주노총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행여나 사내하청노조가 불만을 제기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잃을 경우에 대비해 정치적 책임을 나눠질 상대가 필요했다.

민주노동당은 이 문제를 상의하자며 민주노총과 간담회를 요청했다. 당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부담스러웠던 민주노총쪽은 먼저 당사자인 전비연쪽과 먼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지난해 말부터 우원식 의원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지만, 민주노동은 이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던 터였다. 더구나 민주노총은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지도부가 20일 전비연쪽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단병호, 심상정 의원과 김선동 사무총장, 이용대 정책위의장, 이해삼 최고위원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전비연쪽에서도 구권서 전비연 의장과 박대규 건설운송노조위원장 등 10여명이 자리에 앉았다.

민주노동당이 말문을 열었다. 당은 “여당에서 사용 사유제한을 양보하면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전해 왔는데 이에 대해 전비연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전비연쪽에서는 “불파 고용의제를 포기하면 사내하청에서 난리가 날 것”이라며 “전비연은 비정규직권리보장입법을 쟁취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고 했다. 또 “불법파견 고용의제는 현행 파견법에도 들어 있다”며 “그런데 현행법에 들어 있는 내용을 개악하지 않는 대신, 사용 사유제한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당도 전비연과 생각이 같다”며 “당이 원칙적 입장을 견지할 테니 전비연도 당과 공동으로 대응하고 이후에도 책임을 져 달라”고 요청했다. 전비연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전비연과 간담회를 연 20일, 환노위는 소위 심사 종료를 선언하고, 법안을 전체회의로 넘겼다. 눈앞에서 한 차례 아른거리던 ‘불법파견 고용의제’는 이렇게 사라졌다.


전비연 민주노총과 ‘공조 거부’

한국노총은 이를 두고 훗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향해 ‘최대강령주의’만 고수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실패한 전술’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현실적 힘의 한계로 인해 따내지 못하는 사유제한 도입 대신, 한국노총 최종안보다 노동계에 유리한 ‘불파 고용의제’라도 건질 수 있었는데, ‘원칙’만 강조하다가 이마저도 놓쳤다는 비판이었다.

반면 민주노총은 이는 ‘최대강령주의’가 아니며, 사용 사유제한은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맞섰다. 힘이 없다고 원칙을 버리고 실익을 쫓는 자세는 노동운동의 근본 자세도 아니라고도 했다.

이용득 위원장도 이와 똑같은 논리로 공개석상에서 민주노동당을 비판했다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최대강령주의?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당시 여당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제안한 대로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수용할 용의가 있었을까 하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 또 가정법이지만 만약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이 제안을 수용했다면, 환노위가 이를 고스란히 법안에 담아서 처리할 수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한국노총의 비판이 인정되려면 이 가정이 ‘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당시 우원식 의원의 제안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진정성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민주노동당은 이 진정성을 믿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하고 있던 12월, 임시국회는 여당과 민주노동당 모두에게 절호의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주민소환법을 직권상정 통과시킨 것처럼 당시에도 민주노동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12월 당시 여당 안에서 우원식 의원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고용의무를 선호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당 의원들은 우 의원의 이런 제안을 말리지는 않는 분위기였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정도의 판단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제안을 던진 만큼 만약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면 전적으로 우 의원이 여당 안에서 책임지고 풀어가야 할 과제였다. 우 의원은 당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수용하기만 하면 당내 설득은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런 전제조건들이 모두 충족됐다면, 아마 불법파견 고용의제는 소위를 통과한 법안에 포함됐을 것이다.


여당 내부 설득 가능했나

다음 문제는 한나라당의 태도이다. 상임위원장은 한나라당 몫이다. 또 국회는 대체로 교섭단체 간 협의를 통해 굴러간다.

우 의원이 당시 모든 여당 의원들의 동의를 끌어냈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동의까지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소위까지는 어떻게든 통과시켰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에 의해 전체회의에서 막힐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을 제치고 법안을 처리하는 방안도 가능성이 낮았다. 물론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등원을 거부하고 있었으므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목희 의원은 지난해 12월 당시 “환노위 의장 사회권을 넘겨받아서라도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등원한 2월 국회에서는 그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특히 지난 2월27일 환노위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보인 태도를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27일 당시 한나라당은 합법파견 기간초과와 불법파견 모두 고용의무로 ‘통일’ 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한나라당이 지난해 12월 제출한 ‘수정안’까지도 뒤집는 요구였다. 한나라당 수정안은 합법파견 기간 초과 시는 현행법과 같이 ‘고용의제’를 두자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내심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 여당 의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여당이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은 채 한나라당의 반대를 뚫고 비정규 법안을 강행처리 할 수 있었냐 하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여당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반대 뚫을 수 있나

그러나 이 일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내부 경직성과 지도력, 그리고 무책임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2월 당시 여당과 한나라당이 손을 잡고 법안을 강행처리할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 의원들은 하나라도 건지자며 제안 수용쪽으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원칙’을 강조하는 목소리에 묻혔다. ‘10가지 사유제한’을 수정안으로 냈을 때 일어났던 파문과 함께 이 일도 당 내부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전비연을 만난 것은 의견 수렴과 향후 공동대응을 모색하기보다는 ‘책임 분산’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잃더라도 당사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날리지 못하게 하는 ‘사전정지’ 작업이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전비연 등이 원하는 대로 ‘원칙’을 지키려 애썼으니, 원칙을 지킨 당과 민주노총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담보’를 받는 과정이었다는 말이다. 일종의 ‘입막음’이다. 이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는 지도력과 책임성 부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를 역으로 따져보자. 당시 민주노동당이 전비연 등과 사전 간담회를 갖지 않고 의원단이 또는 당 차원에서 ‘수용’ 결정을 내렸다고 치자. 그리고 여당과 한나라당을 압박해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따냈다고 치자.

그랬다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은 노동계 일각으로부터 ‘사유제한’을 포기했다는 비난을 살 게 분명하다. 민주노동당은 행여 이런 비난이 두려웠던 것이 아닌지 곰곰이 뒤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정치행위를 하기도 전에 전비연과 민주노총을 만나 책임을 분산시키며, ‘최악의 법안’으로 귀결되는데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무책임과 경직성

특히 ‘원칙’을 강조한 민주노동당은 더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법안들에 찬성표 또는 기권표를 던졌다. 그런데 과연 그 수많은 법안들이 민주노동당이 그간 내건 ‘원칙’과 얼마나 부합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 법안은 ‘독이 든 빵’이라고 표현하며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이 찬성 또는 기권표를 던져 통과시킨 그 수많은 법안들은 모두 ‘먹을 만한 빵’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한다.

이는 불법파견 고용의제를 법안에 포함시킬지 아닌지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서 실상 더 중요한 문제다.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 지도그룹이 빠져나갈 '구멍 찾기'를 반복하는 한, 운동의 주체이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늘 객체로 남고 ‘소외’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다. 진정 용기를 가진 ‘장렬한 전사’는 이럴 때 하는 것 아닌가.

<편집자 주> 비정규 법안은 지난 2년간 노동계의 핵심 현안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법안을 계기로 공조하다 이 법안 때문에 헤어졌다. 법안을 낸 정부도 결과적으로는 이 법안에 발목이 잡혀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위 개편 등 산적한 과제들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비정규 법안은 핵심 현안이었던 게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제 이슈였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900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실제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철폐를 주장하든 양산을 주장하든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정당이 있다는 게 바로 그 반증이다.

이는 비정규 법안을 둘러싼 공방이 사회화가 '덜' 되어도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어쩌면 사회화가 '덜' 돼야 사회적으로 용납이 됐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법안 내용은 실로 단순했으나 법안을 둘러싼 사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노동계 내부와 정치권 내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파워게임이 이 법안을 둘러싸고 이어졌다. 욕심과 주장과 변명이 뒤엉켰다. 한국 노사정의 수준이 이 법안 공방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도 진정으로 격분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비정규 법안 공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년간의 기록을 2주에 걸쳐 10회에 나눠 싣는다. 그간 보도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최대한 담을 생각이다. 다 끝난 마당에 이런 기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이 공방은 이후 옷만 바꿔 입은 채 다시 반복될 것이다. 명분과 몸 사리기에 빠져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무책임한 행위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획시리즈는 그래서 ‘철지난 선데이서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경고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재순서
1. 아무도 원하지 않은 '수건 돌리기'
3. 센터링 한 번에 자살골 두 번

5.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 
7. ‘전부’ 아니면 ‘전무’ 
9.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이 말라간다
2. 저지냐 쟁취냐, 그것이 문제로다
4. 노사정 교섭 최종안 있었나

6. 한국노총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8. 환노위 강행처리의 진짜 이유
10. 못 다 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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