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움직인 것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선수를 쳤다. 정부가 조만간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2004년 7월12일 비정규직보호법안(권리보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등에게 법안 쟁취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호소했다.

법안은 근로자파견법 폐지안과 근기법 개정안, 노조법 개정안, 직업안정법 개정안 등 모두 4개였다. 주요 골자는 △파견제도 폐지와 직업안정법 개정을 통한 근로자공급사업의 구분 기준과 허가범위 규율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 △명예근로감독관제 도입 등이었다.

법안 성안작업은 그해 6월부터 시작돼 7월초 마무리됐다. 약 한달만에 4개 법안을 모두 성안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솜씨였다.


한달만에 나온 권리보장법

당시 법안 성안 작업에는 김선수 변호사(현 대통령 사법제도개혁비서관/당시 여민법률사무소)와 당시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현 권두섭법률사무소), 단병호 의원실 강문대 보좌관(현 참터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 주진우 당시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현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 등이 실무진으로 참여했다.

실무진 모두 다급했다. 정부안이 나오기 전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법안을 만들어 정부안에 대항하는 쟁점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정부안이 먼저 제출되면 비정규법 논의도 정부안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유제한’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주요 쟁점들이 묻혀버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강문대 변호사는 최근 “당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빨리 법안을 성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며 “당시에는 정부가 8월 중에 입법예고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성안한 법안은 ‘환상적’이었다. 노동계가 집회 등에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법안의 형태로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실무진은 성안 작업을 하면서 아마 ‘이 법안이 그대로 세상에 적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에 즐거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알았다. 법안은 법안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민주노동당은 7월12일 법안들을 제출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명명했다. 민주노동당은 나중에 이 법안들과 최저임금법 등을 묶어서 ‘비정규직 권리보장법안’이라고 바꿔 불렀다. 하지만 ‘권리보장법안’은 노동계와 국회 안팎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환상적인, 너무나 환상적인

그러나 법안을 먼저 만들었다고 쟁점이 그쪽으로 모이는 것은 아니다. 2004년 9월 정부안이 공개된 뒤, 노동계의 움직임은 ‘권리보장법안 쟁취’가 아니라 ‘정부법안 저지’ 시나리오에 따라갔다. 물론 구호는 여전히 '쟁취'였지만. 권리보장법안과 정부안이 맞부딪히며 쟁점이 형성되기를 기대했던 실무진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안 저지에 주력했다. 그러나 정기국회는 국가보안법으로 난리통이었고, 비정규법안은 사실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1회 참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정부안을 일단 막기는 막았는데, 대안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권리보장법안은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었다.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당시 수차례 열린 비정규법 관련 토론회에서 노동계쪽 토론자들도 권리보장법안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급기야 법안 성안작업에 참여했던 김선수 변호사까지 당시 한 토론회에서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성안자도 개선 필요성 인정

당시 정부 법안 가운데 노동계의 가장 큰 공분을 샀던 조항은 현행 포지티브 리스트인 파견금지업종을 네가티브 리스트로 바꾸는 대목이었다. 이 갈등은 여당이 즉시 한발 물러나면서 서서히 해소됐다.

이어 문제로 대두된 부분은 기간제법의 차별시정과 관련된 대목이었다. 당시 집회장에서는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가 뒤섞여 있었다. 이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지만, 1년 뒤 조직들 간에 큰 갈등을 불러온 소재가 됐다.

2004년 11월15일이었다. 민주노총 파업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이 망라된 비정규법개악저지공대위와 민주노총이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 도중 공대위 내부에서 논쟁이 붙었다. 비정규 법안 대응의 목표에 대해서였다.

시민단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없애면 비정규직이 사실상 철폐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차별철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전비연쪽에서는 차별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철폐가 목표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약 1년 후인 2005년 11월30일 ‘최종안’을 던진 한국노총과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공조 파기를 선언한 민주노총의 갈등으로까지 비화되는 예고편이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는 제도적으로 ‘사용 사유제한’ 쟁취라는 형태로 집약됐다. 사유제한이 수용 안 되면 ‘악법’이라는 규정도 여기서 시작됐다. 악법이므로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주장이었다.

반면 '차별철폐'라는 구호는 정부안을 수정해서 처리하자는 쪽으로 발현됐다. 이들은 ‘사용 사유제한’은 현실적 힘이 모자라 쟁취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법을 만들지 말자는 것은 차별시정조치나 기간제한까지 모두 버리자는 ‘좌편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주로 한국노총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었다.


비정규직 철폐냐 차별철폐냐

이런 논쟁도 있었다.

같은해 11월30일이었다. 민주노총 투쟁본부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회 일정상 비정규법 처리가 연기됐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2월2일로 예정된 파업을 유보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전노투 핵심 100여명이 민주노총 투본회의에 참관하겠다고 찾아왔다. 참관 여부를 두고 1시간 가까이 민주노총 지도부와 전노투가 몸싸움을 벌였다.

전노투는 국회가 법안을 계속 추진할 것이므로 철회를 위해 예정대로 총파업을 하자고 주장했다. 이수호 위원장은 법안 처리를 사실상 유보했으므로 2월 국회 총파업을 준비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쟁점은 비정규법 자체는 아니었다.

당시 여당쪽은 여러 경로를 통해 민주노총과 접촉, 사회적 교섭에서 비정규법을 다루는 것을 조건으로 민주노총쪽에 법안 처리 유보를 시사하고 있었다. 여당도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대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었다. 반면 전노투는 반대했다. 전노투는 사회적 교섭을 ‘자본에 대한 투항’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날 논쟁은 비정규 법안에 대한 논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교섭에 대한 힘겨루기 성격이 강했다. 권리보장입법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쪽은 주로 민주노총 집행부 반대파들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한발짝도 물러 설 수 없으므로 사회적 교섭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직 투쟁으로 권리보장법안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였다.

이런 상황에서 권리보장법안이 아닌 다른 대안을 말하는 이들은 ‘개량주의자’, ‘투항주의자’로 낙인찍기 딱 좋았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교섭 찬성론자 역시 ‘개량주의자’, ‘투항주의자’가 될 판이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든 반대파든 모두 ‘권리보장법안’을 쟁취해야 한다는 말은 똑같이 하고 있었다. 정부안을 저지하고 권리보장법안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교섭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저지하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교섭을 거부하고 총파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성안한 실무진조차 비현실성을 인정한 권리보장법안이 어느새 ‘절대선’이 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기제로 작동하고 시작했다. 비정규 법안과 사회적 교섭은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됐다.

사회적 교섭 찬반으로 비화

2005년이 밝았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안건을 다루기 위한 대의원 대회를 열었으나 전노투 등 반대파들의 폭력 저지 등으로 인해 3차례나 파행을 거듭했다. 1월20일과 2월1일, 그리고 3월15일 3차례나 대의원대회가 무산됐다.

민주노동당은 2월 국회 환노위를 점거했다. 여당은 점거를 이유로 법안 심의를 연기했다. 그러나 여당이 법안을 연기한 진짜 이유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를 기다리기 위한 것이었다. 여당은 2월 회기 내내 그런 속내를 드문드문 내비쳤다.

이목희 의원은 3월15일 회견을 자청해 전노투 등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극좌 맹동주의자와 결별하고 온건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통해 새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노총이 한 줌도 안 되는 극좌파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민주노총 지도부에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4월 국회에서 비정규법을 처리하겠다는 발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는 노동부를 의식한 발언이자, 민주노총을 압박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3월18일 중앙집행위 회의에서 비정규 법안 노사정 교섭 추진을 결의했다. 그래서 4월 노사정 교섭판이 열렸다. 민주노총은 ‘권리보장법안’을 제시했다. 마지 못해 교섭에 참석한 사용자쪽은 정부안을 고집했다. 정부도 정부안을 고집했다. 평행선을 달렸다.

지루한 교섭판이 열리던 중이었다. 4월12일 인권위가 의견안을 냈다. 파장은 컸다.

노동계는 공세적으로 돌아섰다. 비현실적인 ‘권리보장법안’ 대신 인권위 의견 수준의 ‘수정안’을 내면서 밀어붙였다. 사용자는 불만을 표시하면서 교섭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입법을 하든지 말든지 국회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노동부와 여당은 인권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김대환 장관은 인권위를 돌부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인권위 의견이 권리보장법안을 밀어내고 노동계의 새 가이드라인이 됐다.

교섭은 계속됐다. 사용 사유제한이 테이블에 올랐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불법파견 고용의제, 차별입증 사용자 책임 등도 거론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안에 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이석행 사무총장은 당시 “인권위가 큰일을 했다”고 회상했다.


인권위 의견이 새 가이드라인

단병호 의원은 지난해 4월14일 “노사정 교섭을 존중한다”며 “그동안 교섭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의견 개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에게 인권위 의견의 수용을 촉구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노사정 합의 결과가 나오면 당 차원에서 합의안에 대해 수용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응하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는 비정규 법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교섭에 나선 민주노총 교섭팀을 압박하는 발언이었다.

당시 노사정 교섭은, 인권위 의견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정부안을 기준으로 보면 노동계 요구안쪽으로 상당히 기울고 있었다. 여당은 기간제법에서 ‘무제한 1년 + 사유제한 1년 + 무기계약근로 간주'라는 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노동계에게 전했다. 경총과 정부는 불만이었다. 당시 경총 관계자는 “정부안으로 하거나 아예 입법을 중단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민주노총 출신의 한 의원실 보좌관은 이렇게 말하며 펄펄 뛰었다. “우리는 노사정 교섭에서 인권위 안 밑으로 내려가면 수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교섭 결과는 최소한 인권위 안 정도는 돼야 한다.” 결국 4월 노사정 교섭은 최종안까지 도출됐는데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석행 전 사무총장은 최근 “당시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서도 “단병호 의원의 태도에 서운했다”고 말했다.

교섭에 참가한 이들은 이른바 '배석범'의 망령에 시달렸다. 교섭을 주시하는 이들은 비정규법 그 자체보다 비정규법 국면이 어디로 이동할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부여당 또는 자본과 맞서 실제로 법을 저지하거나 쟁취할 힘이 있는지 없는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전술 설계는 애당초 관심 바깥의 일이었던 것이다.

마음은 콩밭에

물론 ‘저지’와 ‘입법’은 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정부안을 저지하고 권리보장법안을 쟁취하자는 구호나 주장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힘’, 즉 능력이다.

‘저지’는 네가티브 전술인 반면, ‘쟁취’는 포지티브 전술이다. 그래서 전자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이 주로 쓰는 수세적 전술이고, 후자는 상대를 누를 수 있는 힘이나 논리를 배경으로 달려드는 공세적인 전술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그간 ‘저지’할 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입법’할 힘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없다.

만약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에게 ‘입법’할 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아마 민주노동당은 집권여당이 돼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계가 ‘권리보장법안 쟁취’를 전면에 내걸고 ‘총파업’ 위력시위를 통해 정부여당의 ‘항복’을 받아냈을 것이다. 프랑스 학생과 노동자들은 CPE 반대투쟁을 통해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철회시켰다. 민주노동당과 노동계가 그 정도로 투쟁하지도 않으면서 ‘쟁취’를 목표로 삼겠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자, ‘난센스’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물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누구 하나 환상적인 법안을 현실의 목표로 삼은 ‘난센스’를 지적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쟁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내부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양해하는 마음에 그런 지적을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지적하는 순간 ‘타협주의자’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서 그랬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어쨌든 ‘권리보장입법 쟁취’는 비행기는커녕 자동차도 못 만드는 철공소 직원들이,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 여행을 가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뜬구름’ 잡는 논쟁은 계속됐다.

쟁취할 힘이 있었나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 태도도 주목받았다. 정당은 의회에 들어가는 순간 현실과 타협을 강요받는다. 그것은 도덕과 무관한 이야기다. 어떤 법안이 처리될 때 그 법안에 동의(암묵적 동의도 포함) 할 때는 그 만큼의 정치적 책임도 나눠져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권리보장입법을 발의한 만큼 끝까지 자신들이 낸 법안을 관철시키거나, 최대한 관철시키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결국 ‘저지’보다는 ‘쟁취’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은 타협도, 책임도 모두 거부했다.

법안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법안을 국회가 법안을 심의해서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 장외에서 총파업만 한다고 쟁취되지 않는다. 더구나 법안을 낸 당사자는 이미 원내에 의석을 가지고 있었다. 법안 심의에 참여해서 주장할 의원도 있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2004년 9월부터 현재까지 약 2년 동안 권리보장법안 입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권리보장법안 수용 약속이 아니라 비정규직 법안을 심의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으면 회의장 점거 농성을 풀었다. 여당이 처리 유보 약속만 하면 다른 법안 처리를 돕는 ‘공조’에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사학법 개정안과 올해 예산안 등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처리됐다. 권리보장입법을 따내겠다는 ‘포지티브’ 전술이 아니라 법안 저지라는 ‘네가티브’ 전술을 썼던 셈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늘 ‘현실적 힘’을 이유로 들었다. 의석이 9석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힘이 없는데 어떻게 법안을 쟁취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은 입법을 막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끝까지 막는다는 것은 ‘완전 무산’을 뜻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이 힘으로 법안을 끝까지 막을 수 있다고 여겼을까. 지난 2년 동안 몇차례의 점거 농성과 원내 상황에 따라 법안이 연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안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한발짝씩 처리쪽으로 당겨졌다. 2004년 12월에는 환노위에 상정됐다. 이듬해 2월 국회에서는 회의장을 점거하던 단병호 의원은 다음 회기에 ‘소위 심의’를 약속했다. 4월 국회는 노사정 교섭이 결렬되면서 연기됐다. 6월 국회는 민주노동당이 회의장을 점거한 데다, 민주노동당의 손이 필요한 여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9월 정기국회에서도 여당의 필요에 의해 입법이 미뤄졌다.

올해 2월 국회에서는 여당에게 민주노동당의 손이 필요 없었다. 입법 지연의 명분도 쌓았다. 그래서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처리했다. 민주노동당의 ‘저지’ 전선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입법 향해 한발 두발

민주노동당은 이제 비정규법을 무산시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여당과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민주노동당 한 관계자는 최근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안 보인다”고 답답해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사’하는 것이 과연 장렬한 것일까. 장렬하게 전사하든 어떻게 하든 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법안의 내용이다.

지난해 12월8일 이후, 한나라당이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을 할 때였다. 여당은 수차례 환노위 법안소위를 소집했다. 그런데 소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단병호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단 의원은 “참석해 봐야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권리보장입법이 목표였다면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됐을 터인데. 노동계 요구안을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정 안 되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하면 그만이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불참했다. 우원식 법안소위원장은 “한나라당의 불참은 당의 방침이라고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불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지난 2월에는 여당이 고육책을 냈다. 사용 사유제한은 수용할 수 없지만, 불법파견 시 고용의제를 입법할 수 있다고 민주노동당에게 물밑으로 제의했다. 민주노동당은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전비연과 간담회를 갖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용 사유제한이 포함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여당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칙'이란 말처럼 속편한 말이 없다.

장렬하게 전사하겠다고?

단병호 의원은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가 의견을 내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미흡하나마 수용’의사를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권리보장법안에 담긴 파견법 폐지가 아니라 파견법 현행유지쪽의 의견을 냈다. 인권위 의견 직후에 민주노총도 노사정 교섭에서 파견법 폐지안을 사실상 포기하고 현행법 유지쪽으로 돌아서는 ‘수정안’을 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파견법 폐지를 접었는데도 누구 하나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견법 폐지를 포기한 것은 파견노동이라는 고용형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법안을 성안했던 강문대 변호사는 “성안과정에서도 약간 논란이 있었지만, 쟁점을 만들기 위해 원칙에 충실하자는 의견들이 모아져서 폐지안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라며 “이 사실은 민주노총과 관련단체들이 모두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현실 조건상의 문제 때문에 현행유지쪽으로 돌아섰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우리가 파견제도 폐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현실 힘 관계상 어쩔 수 없어서 ‘포기’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단 의원은 사유제한의 폭을 대폭 넓히자고 제안했다. 단 의원실 신언직 보좌관은 “언론에서 민주노동당이 양보하지 않는다고 비판만 하는데, 이제 양보안을 낸 만큼 크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초조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이 제안을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 이 양보안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었다. ‘원칙’을 지키라는 요구였다. 지난해 4월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압박했던 민주노동당이, 이번에는 거꾸로 '원칙'을 지키라는 돌멩이를 맞은 셈이었다. 당 내부의 경직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자,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결단을 내린 적이 있던가

결국 언젠가 국회를 통과하는 법안은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원칙’과 거리가 먼 내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노동당의 정치력을 발휘해 여당과 재논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이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하는 ‘사유제한’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법사위에 계류 중인 법안이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에서 나온 최종안 또는 지난해 11월30일 한국노총이 던진 ‘최종안’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지도부 흔들기에 골몰하고, 한국노총 최종안 비판에 열을 올리면서 ‘법안 저지’를 다짐하는 ‘명분 쌓기’를 하고 있을 때, 법안은 점점 자본이 요구하는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이런데도 민주노동당이 감히 ‘장렬한 전사’라는 말을 써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장렬한 전사’를 한다는 말인가.

송영길 여당 정책위 부의장은 지난 2월7일 국회에서 전국비정규연대회의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은 때로는 욕을 들어먹더라도 결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결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단 한번이라도 어떤 결단을 내린 적이 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노동부 자문위원단도 정부안 비판
여당 의원들도 반발 
정부법안은 여당 의원들뿐 아니라 노동부 자문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부 입법예고 직전인 2004년 9월16일 노동부 자문위원회 조찬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대환 장관과 엄현택 근로기준국장, 윤성천 광운대 교수 겸 자문위 의장, 박휜구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 이병훈 중앙대 교수, 박태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김선수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엄현택 국장이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모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진호 교수는 파견업종을 네가티브로 바꿔서는 안 되지만 기간제법은 차별시정 조치 등을 담고 있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박훤구 전 원장은 파견법에 문제가 많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윤성천 교수는 차별시정의 현실성과 파견업종의 지나친 확대 등을 거론하며 정부가 노사정위 공익위원안을 무시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여당 의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종길 의원은 같은해 9월23일 정책의총에서 “아무리 시급한 법안이더라도 상임위, 정조위, 정책위를 거쳐 총회에 와야 하는데 상임위와 전혀 상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김영주 의원도 “정부안은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공익안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하며 “절차까지 무시하며 밀어붙이면 그 몫은 고스란히 여당 몫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부담감을 나타냈다.


이목희 의원도 같은해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의 전체적인 방향은 온당하지만 파견업무 전면 확대, 파견기간 등 특정 부분은 (경영계에)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주> 비정규 법안은 지난 2년간 노동계의 핵심 현안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법안을 계기로 공조하다 이 법안 때문에 헤어졌다. 법안을 낸 정부도 결과적으로는 이 법안에 발목이 잡혀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위 개편 등 산적한 과제들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비정규 법안은 핵심 현안이었던 게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제 이슈였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900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실제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철폐를 주장하든 양산을 주장하든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정당이 있다는 게 바로 그 반증이다.

이는 비정규 법안을 둘러싼 공방이 사회화가 '덜' 되어도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어쩌면 사회화가 '덜' 돼야 사회적으로 용납이 됐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법안 내용은 실로 단순했으나 법안을 둘러싼 사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노동계 내부와 정치권 내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파워게임이 이 법안을 둘러싸고 이어졌다. 욕심과 주장과 변명이 뒤엉켰다. 한국 노사정의 수준이 이 법안 공방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도 진정으로 격분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비정규 법안 공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년간의 기록을 2주에 걸쳐 10회에 나눠 싣는다. 그간 보도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최대한 담을 생각이다. 다 끝난 마당에 이런 기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이 공방은 이후 옷만 바꿔 입은 채 다시 반복될 것이다. 명분과 몸 사리기에 빠져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무책임한 행위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획시리즈는 그래서 ‘철지난 선데이서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경고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재순서
1. 아무도 원하지 않은 '수건 돌리기'
3. 센터링 한 번에 자살골 두 번
5.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 
7. ‘전부’ 아니면 ‘전무’ 
9.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이 말라간다
2. 저지냐 쟁취냐, 그것이 문제로다
4. 노사정 교섭 최종안 있었나
6. 한국노총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8. 환노위 강행처리의 진짜 이유
10. 못 다 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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