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제가 주재한 노사정 협상에서 노동계는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포기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이 틀려서가 아니라 한국적 현실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이것을 지난해 정기국회 하반기부터 다시 들고 나와 막무가내식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4월12일 이목희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펼친 주장이다. 노동계가 사전 사용 사유제한이 한국적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비정규직을 사용해야 할 몇가지의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는 ‘사전 사용 사유제한 제도’를 도입하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량 실직 사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93%가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전 사유제한을 도입하면 이들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아예 고용을 하지 않거나 현재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해고할 것이 분명하다는 주장이다.

또 다수 기업들은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불법계약을 하거나 도급으로 전환하는 등, 사유제한이 사실상 무력화되거나 형해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극소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겠지만, 대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다는 주장도 내놨다.

요약하면 사용 사유제한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IMF 외환 위기 이전에는 도입을 논의해 볼 수 있었겠지만,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도입할 수 없거나, 도입하더라도 쓸모도 없이 부작용만 부르는 제도라는 게 여당의 논리다.


“현실 안 맞아 못 한다”

사유제한 도입의 타당성과 실효성 논쟁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일단 접어두겠다. 이 글에서는 여당이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유제한을 도입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주장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리고 노동계가 이런 현실을 인정해 지난해 4월 교섭 과정에서 사유제한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들춰보자. ‘사유제한’을 도입하라는 내용이 담긴 인권위 의견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던 지난해 4월14일 오후3시 이목희 의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의원은 회견에서 “국가인권위가 기간제 사용 시 사유제한을 하라고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애초부터 수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단지 협상을 위해 그동안 밝히지 않아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내심 사유제한을 수용할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노사정 교섭을 중재하는 위치에 있는 터라 이같은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이 의원은 여기에 덧붙여 “다만 사용사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면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므로, 적정한 수준에서 사용 사유제한을 수용하려 했다”며 “사용을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사유제한의 범위도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노사정 대화에서 논의 중”이라고도 했다.

이 회견은 금방 뉴스가 됐다. 잠시 후 여당과 이목희 의원에게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전화가 폭주했다. 노동부와 경총,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였다.

이 의원은 약 2시간 후 다시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오후3시에 했던 회견 내용을 보충하고 ‘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정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이 의원은 “노사정 대화에서 사유제한에 합의해 조정안을 내면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지, 우리당이 노동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초점을 빗나간 것이었다. 당시 누구도 협상을 주재한 여당의 역할을 노동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렇게 주문한 측도 없다. 당시 여당의 역할은 사용자와 정부를 적절히 압박해 사유제한을 도입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바로 2시간 전 이 의원이 말한 "사용을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사유제한의 범위도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노사정 대화에서 논의 중"이라는 발언의 의미였다.

이 의원이 기자회견을 했던 당시는 노동계가 인권위 의견을 수용하라며 정부여당과 사용자쪽을 향해 공세의 고삐를 죄던 때였다. 공세에 밀린 사용자쪽도 내부적으로 사유제한 도입을 수준이야 어떻든 실제로 검토하던 시기였다. 물론 ‘사회적 대화’라는 판을 깨기 싫었던 여당도 사용자쪽에 양보 압력을 넣던 시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사유제한’은 이 의원의 말대로 폭과 범위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을 뿐 ‘도입’ 그 자체는 기정사실로 굳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당도 수용의견 밝혀

이날 회견 내용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우선 이 발언은 여당의 사유제한 수용 불가의 핵심 이유들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모순’이라는 점에서 중대성을 갖는다. 여당은 그간 사유제한을 도입하면 대량실직이 불가피하므로, 사유제한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 왔다. 그런데 이날 이 의원은 노사정이 합의해서 조정안을 내면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세 가지 대목에서 논리적 맹점을 지니고 있다.

두 주장을 접목하면 비정규직이 대량 실직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노사정이 합의만 하면 입법하겠다는 논리가 되는데, 그렇다면 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실직을 불러오는 이 법안을 과연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게 된다.

다른 하나는 집권여당으로서 무책임성이다. 노사정이 합의만 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가 거리로 내쫓기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집권여당으로서 할 수 있는 소리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비정규 법안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 실직이, 과연 사회 양극화 해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여당의 답을 내놔야 한다. 결국 둘 중의 하나는 ‘거짓말’이거나 ‘과대 포장’이다. 그때 그때마다 다른 상황 논리가 아무리 정치판의 ‘유행’이라도 해고, 이런 식의 정치는 특히 교섭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서는 곤란한 것이었다.


앞뒤 안 맞는 주장들

그럼 다시 지난해 회견 당시로 돌아가자. 이 의원은 이날 왜 이런 ‘본전도 못 찾는’ 기자회견을 자청했을까.

당시 상황은 대강 이렇다. 4월11일 인권위가 사유제한 도입 등을 담은 의견을 냈다. 여론이 들끓었다. 노사정 교섭장이 발칵 뒤집혔다. 정부와 여당, 사용자쪽이 강한 어조로 인권위를 비난했다. 특히 노동부는 격한 비유까지 써가며 인권위를 맹공했다.

그런데 당시를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인권위를 공격한 정부여당이 인권위 의견의 내용보다는 인권위원회 자체에 대한 공격 또는 발표 시기와 형식을 문제 삼는 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인권위가 자신들의 영역도 아닌 곳에 불쑥 출현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했다는 불만과, 노사정 교섭판이 막 열렸는데 인권위가 돌연 나타나 교섭에 영향을 미쳤다는 식의 비판이 주였다. 그럼 내용은?

여당은 당시 노사정 교섭을 중재하는 위치여서 인권위 의견의 내용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비판을 하면 노동계가 “사용자 편을 든다”고 발끈하면서 판을 깨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수용’ 또는 ‘긍정적 검토’라는 의견을 내면, 그렇지 않아도 판을 깰 궁리만 하고 있던 사용자쪽에서 교섭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 분명했다. 실제 여당은 노사정 교섭에서도 마지막까지 단 한번도 내용에 대한 ‘권고안’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의원이 이날 기자회견을 연 이유는 바로 여론의 ‘힘’ 때문이었다. 여론은 인권위 의견 표명의 시기나 절차 등 형식적인 문제보다는 ‘내용’을 중시했다. 대체적인 여론은 “인권위가 사유제한을 하라고 하는데, 여당의 입장은 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여당은 아무리 노사정 교섭 중이라고 하더라도 여론의 압박에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답하지 않으면 ‘아무 생각이 없거나 무책임한 여당’이 되고, 답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어느 한 쪽을 두둔하거나 기울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당시 여론은 인권위 의견 내용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당도 ‘표’와 ‘지지율’을 먹고 사는 정당이다. 그런 여당이 인권위 의견 내용을 부정하거나 반박하면, 여론으로부터 ‘친사용자’라는 딱지가 붙게 되고, 이는 ‘중산층 서민’을 강조해 온 당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결국 당시 여당이 고심끝에 선택한 카드는 ‘노사정 합의’를 강조하면서, “우리도 내심 인권위 의견과 유사한 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의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론의 힘

그렇다면, 노동계가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에서 사유제한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시 노동계는 사유제한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 민주노총뿐 아니라 한국노총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당은 틈만 나면 “노동계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재론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유제한’ 주장을 포기했다고 했다. 스스로 포기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런데도 사유제한을 포기한 적이 없었던 노동계는 여당의 이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다시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지난해 4월 노사정 교섭에서 사유제한이 주요 의제로 등장했을 때였다. 인권위 의견 표명 직후였다. 논쟁의 초점은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도입하는가 마는가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 경총과 노동부는 사유제한 수용 불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 들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사회적 여론의 압박과 노동계의 공세 속에서 수세에 몰리던 경총이 결국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인정하는 ‘수정안’을 냈다.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인정하되 제한의 범위와 폭을 대폭 넓히는 방안이었다. 형식적으로는 사유제한이라는 제도를 수용하되, 내용적으로는 사유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만들자는 속셈이었다.

당시는 노동계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고, 사용자는 칼날을 쥐고 있던 형국이었다. 당연히 노동계가 이 제안을 받을 리 없었다.

사용자도 사유제한 인정

이때 민주노총이 ‘수정안’을 꺼냈다. 민주노총은 ‘6개월+이후 사유제한’을 제시했다. 당시 모든 논의는 ‘사전 사유제한’ 도입 여부, 즉 비정규직 고용의 입구를 제한할 것이냐 아니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6개월+이후 사유제한’이라는 ‘유보적’ 형식은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목희 의원은 이를 “기간제한과 사유제한의 선택 논란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라고 불렀다.

당시 민주노총은 ‘6개월’이라는 기간을 두더라도 현장에서는 노동자 교체비용 부담 등으로 인해 사실상 사전 사유제한을 도입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내다봤다. 노동계는 이 ‘수정안’을 던진 만큼 경총도 사유제한의 폭과 범위를 넓히자는 주장을 접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6개월+사유제한’ 형식은 이후 노사정 교섭 과정에서 ‘1년+사유제한+고용의제(1+1무기계약 간주)’로 모습을 바꾸며 구체화됐다.

그런데 당시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민주노총이 사유제한을 포기했다는 식의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포기했으니 사실상 사유제한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곧이어 ‘1년+사유제한’에도 비판이 가해지는 상황에 이르자 민주노총 교섭실무팀은 ‘6개월+사유제한’을 교섭장에서 제안했다는 사실조차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런 ‘안’의 존재 사실도 알리지 않았고, 그런 형식을 누가 제안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6개월+사유제한’을 제안한 쪽은 민주노총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사전 사용 사유제한을 먼저 '포기' 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경총의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압박 전술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조직 내부의 비판이 두렵거나, 쓸데 없는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또 한국노총은 당시 합의보다 민주노총과 공조를 더욱 중시했다. 교섭장에서 내놓은 하나의 제안 때문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곤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고 말하고 다녀도, 노동계는 적극 반박할 기회도 없었고 하기도 힘들었다. 적극 반박하려면 사실관계를 모두 꺼내놓고 공방을 벌여야 하는데, 이는 결국 불명예스럽게 사퇴한 민주노총 지도부를 또 한번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었다.

더구나 한국노총은 비정규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강조하며 지난해 11월30일 최종안까지 던졌다. 노사 의견을 절충했다는 한국노총 ‘최종안’은 ‘무제한 1년+사유제한 1년+고용의무’는 담고 있었지만 입구부터 제한하는 ‘사전 사유제한’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적극적으로 여당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서면 ‘최종안’의 효력이 반감될 것이 당연했다.

실제 입법을 요구했던 한국노총이 노사 역관계가 반전되면서 ‘현실 도입 가능성’이 희박해진 사유제한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논란만 키울 뿐이었다. 이런 과정들은 모두 노동계의 반박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노동계가 반격 안한 이유

훗날 이석행 민주노총 전 사무총장은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는 여당 주장은 ‘거짓 선전’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양대노총은 실제 단 한번도 사유제한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섭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교섭 과정에서는 어떤 제안이든 할 수 있다”며 “당시 교섭장 안에서 나온 제안들은 모두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유연한 전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도 현재 스스로 사유제한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민주노총과 유사하다. 다만 한국노총은 여당 주장대로 ‘현실 적용 가능성이 없어’ 스스로 사유제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계의 ‘힘’이 부족해 ‘쟁취’하지 못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11월30일 최종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비연과 한비연 대표자들이 “사유제한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하자 “포기한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 따내지 못한 것”이라며 “우리도 능력이 되면 사유제한을 하고 싶고, 그것은 나중에라도 따내야 할 여전한 목표”라고 답했다.

지난해 4월과 6월 노사정 교섭과 11월 노사 교섭은 모두 여당의 중재로 열렸다. 4월과 6월은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장인 이목희 의원이 직접 주재했다. 여당은 비정규 법안 교섭을 통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2월과 4월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미루기도 했다. 또 교섭판을 열기 위해 민주노총 내부를 비판하기도 했고, 지도부를 압박하기도 하는 등 상당한 애를 썼다.


여당이 교섭을 중재한 표면적인 이유는 앞서 기획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뜨거운 감자’를 만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이를 계기로 노사정 대화 국면을 열겠다는 의지도 작용했다. 이는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사회적 대타협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일부 노사정 관계자들은 비정규 법안 교섭이 열린 이유를 이것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노동부장관을 하고 싶은 이목희 의원의 ‘꿈’도 한 몫을 했다는 설이다.


노사가 합의해서 노동관련 법안을 처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간 역사는 늘 정부여당이 법안처리에 나섰고 노동계는 ‘악법 저지’ 투쟁을 벌였다. 민주노동당도 1996년 겨울 민자당의 노동법 날치기 항의투쟁을 거치면서 창당의 ‘모티브’를 얻었다.


그만큼 이해관계에서 첨예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는 노사를 한 자리에 모아서, 합의점을 찾는다는 일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었다. 마침 그 총대를 이목희 의원이 멨다. 그러나 이 의원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겉으로 직접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노동부장관을 기대하고 있었다. 노동부장관의 바람직한 ‘상’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내보이기도 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 개각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장관 후보자들의 ‘점수’를 매겼다. 이 의원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상수 현 장관과 막판까지 경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난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를 돕다가 구속까지 됐던 이상수 전 의원을 못 본 체 할 수 없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금물이다. 하지만 만약 4월이나 6월에 노사정이 합의를 해서 비정규 법안이 처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는 여전히 노동계 안팎 ‘참새’들의 술안주 거리로 남아 있다.

<편집자 주> 비정규 법안은 지난 2년간 노동계의 핵심 현안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법안을 계기로 공조하다 이 법안 때문에 헤어졌다. 법안을 낸 정부도 결과적으로는 이 법안에 발목이 잡혀 노사관계 로드맵과 노사정위 개편 등 산적한 과제들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비정규 법안은 핵심 현안이었던 게 분명하지만, 그것이 실제 이슈였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900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 노동자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의 실제 이슈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철폐를 주장하든 양산을 주장하든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도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정당이 있다는 게 바로 그 반증이다.

이는 비정규 법안을 둘러싼 공방이 사회화가 '덜' 되어도 사회적으로 용납이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다(어쩌면 사회화가 '덜' 돼야 사회적으로 용납이 됐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법안 내용은 실로 단순했으나 법안을 둘러싼 사건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노동계 내부와 정치권 내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파워게임이 이 법안을 둘러싸고 이어졌다. 욕심과 주장과 변명이 뒤엉켰다. 한국 노사정의 수준이 이 법안 공방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도 진정으로 격분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비정규 법안 공방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년간의 기록을 2주에 걸쳐 10회에 나눠 싣는다. 그간 보도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최대한 담을 생각이다. 다 끝난 마당에 이런 기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이 공방은 이후 옷만 바꿔 입은 채 다시 반복될 것이다. 명분과 몸 사리기에 빠져 결국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무책임한 행위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획시리즈는 그래서 ‘철지난 선데이서울’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경고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연재순서
1. 아무도 원하지 않은 '수건 돌리기'
3. 센터링 한 번에 자살골 두 번
5. 노동계가 사유제한을 포기했다?
 
7. ‘전부’ 아니면 ‘전무’ 
9. 비정규 노동자의 눈물이 말라간다
2. 저지냐 쟁취냐, 그것이 문제로다
4. 노사정 교섭 최종안 있었나
6. 한국노총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8. 환노위 강행처리의 진짜 이유
10. 못 다 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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