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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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서비스 업체가 통금시간을 정해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관리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기숙사가 근로기준법상 기숙사에 해당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관리·감독에 손 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숙사가 근로기준법상 부속 기숙사에 해당한다면 사용자는 노동자대표의 동의를 받아 기숙사규칙을 작성해야 한다. 관련 규칙에는 기상·취침·외출·외박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돼 있다. 노동부는 이를 위반한 사용자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인권 침해 논란에도 “검토 중”

26일 <매일노동뉴스>의 질의에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검토 중인데 실무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부속 기숙사로 보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기숙사 여부에 대해 “해당 시설의 부속성과 기숙성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속성은 노동자에게 노무관리상 공동생활이 요청되거나, 그 시설이 사업 내 또는 그 부근에 있는지 등을 의미한다. 기숙성은 상당수 노동자가 숙박하는지, 그 장소가 독립 또는 구획된 시설인지, 공동생활의 실태를 갖추고 있는지 등이다.

고용허가제(E-9)로 지난달 입국한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명(2명 이탈)은 2개 업체가 구한 기숙사에서 거주 중이다. 각 업체는 고시원으로 쓰이던 숙박시설을 임대해 기숙사로 제공하고 있다. 업체는 노동자 월급에서 숙박비를 제해 건물주에 월세를 일괄 납부한다. 방마다 화장실이 구비돼 있지만, 주방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일터는 돌봄서비스 신청 가정으로 서울 전역이다보니 이동 편의성을 고려해 위치를 선정했다. 한 업체의 경우 사무실이 기숙사와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통금시간을 규정, 해당 시간 안에 모든 노동자가 귀가했는지 확인하는 ‘점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업체측은 외박·외출시 노동자 안전을 위해 신청서를 받기도 하지만 ‘자율’이라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업체의 외박·외출 관리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입국 당시 받은 안내문에는 “명절 기간 중 한국에서 가족·친척 만남 등을 위한 외출·외박도 가능하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해당 안내문은 고용노동부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운영 업체 2곳의 명의로 나갔다.

법조계 “근기법상 기숙사 해당”

노동자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고용노동부가 만든 고용허가제 표준근로계약서에 기숙사 제공 여부가 포함되며, 사용자는 고용노동부에 ‘외국인근로자 기숙사 시설표’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며 “게다가 ‘외국인근로자 기숙사 시설표’ 작성 매뉴얼을 보면 사업주 준수사항을 근로기준법 시행령 55~58조의2(기숙사 관련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기숙사에 해당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신의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도 “만약 기숙사가 아니라면 노동자를 통제할 근거가 없는 것 아니냐”며 “기숙사규칙에 노동자 동의를 받지 않은 점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명확한 근거 없이 기본권을 제한한 것이라면 (정부가)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철 민주당 의원은 “필리핀 가사노동자의 통금 제한은 명백한 인권침해”라며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기숙사인지 불명확하다며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당장 현장 점검·지도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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