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민 청소년유니온 위원장
▲ 송하민 청소년유니온 위원장

누구나 계약을 맺고 그 관계에 묶이며 살아간다.
스마트폰을 개통할 때에도, 은행에서 개인계좌를 만들 때에도, 우리가 일을 시작할 때에도 계약을 맺고 그 계약관계에 묶인다.

개인적으로 계약은 쌍방의 일치된 약속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인의 삶에서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에게 계약을 맺는 행위가 담고 있는 의미는 배가된다. 그 의미는 한 사람의 주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계약이 이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당사자에게 작게는 타인을, 크게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까지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 마땅한 시민의 권리와 주체성을 얻지 못한 청소년이 처음으로 일터에 발을 내디뎠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맺게 되는 생애 첫 번째 ‘근로’계약은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받는 정당한 임금은 사회와의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서, 본인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고민하고 정의 내리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수많은 청소년 노동자가 일터에서 각종 임금체불, 폭언·폭행, 성희롱, 극심한 감정노동, 부당해고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유교 문화관에서 출발하는 나이 어림에 대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시기가 바로 코로나19 전염병이 대유행하던 지난해다.

전염병 위협으로 대면서비스업이 무너지면서 일터에서는 청소년이 가장 먼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던 지난해 3·4월에는 10대 임시·일용직 취업자 감소폭이 전년 동월과 비교했을 때 -28.4%, -45.5%로 전체 연령집단에서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일터에서 쫒겨 난 청소년 노동자 일부는 전염병 특수를 누리고 있는 배달플랫폼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이들에게 녹록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배달 청소년은 그 어떤 제도적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그나마 나의 권리를 챙기기 위해서 그저 착한 관리자와 사장님이 있는 업체를 찾아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나쁜 사장님이 운영하는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이들은 오토바이 구입비를 빌리고, 법정 최고 이자율을 넘는 돈을 사장에게 갚아야 했다. 배달수를 채우지 못하면 폭행을 당하는 등 현대판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을 이어 가야 했다.

자신의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 가족의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떠한 일이든 해야만 하는 상황은 청소년 노동자 자신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이어 가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악성고객의 요구를 들어 준다거나,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업자를 만나도 착취를 감내해야 했다.

자신의 첫 노동 경험이 착취와 모욕으로만 남는다면 노동은, 사회는 원래 이렇다고 학습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근로계약관계는 그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굴레일 뿐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계약을 통해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쌓고, 나아가 노동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정의를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청소년 노동자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이다. 노동에 대해서는 윤리를 제외한 채 돈으로만 환산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 떠오를 뿐이다.

나아가 이러한 현실이 한 명의 청소년 노동자가 아닌, 청소년 노동자 다수가 겪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노동에 대한 혐오와 사회를 믿지 못하는 정서가 확산·재생산 될 것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진입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어떻게 여기고,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쉽게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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