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건설현장이 ‘죽음의 일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건설업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예방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이 지난해 9월 발의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도 하기 전에 정부 부처 간 갈등으로 법 제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매일노동뉴스>가 19일 건설안전특별법을 둘러싼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취재했다.

오늘도 건설노동자 1명은 싸늘한 주검이 된다

지난해 산재로 사망한 882명 가운데 건설노동자는 절반이 넘는 458명이다. 올해도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중대재해 분석 자료를 보면 1~4월 사이 발생한 중대재해 66건(사망자 64명) 중 52%는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건설노동자 부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15분께 충남 천안 민간근린공원 조성공사 현장에서 측량 보조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작업 중인 굴삭기 옆을 지나다가 굴삭기 후면에 부딪혀 사망했다. 이달 11일에는 경기도 김포 근린생활시설 공사현장에서 지상 3층 높이에 거푸집을 조립하던 노동자가 임시 가설물(비계) 위에서 작업 중 추락해 11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매주 9명이 숨지는 건설현장
특단의 조치로 나온 ‘건설안전특별법’

건설업 재해만 제대로 막아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지난해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참사 이후 정부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꺼내 든 배경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달리 오로지 건설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계부터 시공·감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적정 기간과 비용을 보장하는 것이 법안의 뼈대다. 정부 입법안을 토대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했다.

김교흥 의원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려면 발주자나 기업의 경영진 같은 상대적으로 권한이 큰 주체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실제 사고로 인한 피해는 권한이 상대적으로 적은 하청노동자들이 입고 있다”며 “발주자부터 적정한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제공하고, 원청이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건설공사 주체별로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제정안에 따르면 발주자는 설계·시공·감리 사업자들에게 적정 공사비용과 공사기간을 보장하고, 사업자를 선정할 때 가격뿐 아니라 안전관리 역량을 검토한다. 원청(시공사)은 착공 전에 공사 기간과 비용, 안전시설물과 가설구조물을 직접 검토해 안전한 작업환경인지 확인한다. 현장에서 둘 이상의 동시작업이 이뤄지지 않도록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것도 원청 몫이다. 감리자에게는 원청이 안전관리계획을 준수하지 않거나 안전시설물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사고가 우려되는 경우 즉시 공사를 중지할 수 있도록 공사중지 명령권을 부여했다. 또 노동자가 업무상재해를 당하면 경제적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도록 건설사업자는 노동자 재해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개인보호구 착용을 하지 않는 등 기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노동자는 작업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안전관리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설계·시공·감리 사업자는 물론 발주자와 원청 최고경영자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5년 이내 재범은 가중처벌을 받는다. 회사에는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거나 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뒤 ‘흐지부지’
국토부-노동부 안전관리 권한 놓고 충돌

건설안전특별법은 국민의힘과 건설업계 반대에 공청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여당도 후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해, 건설안전특별법에서 발주자와 경영진의 책임을 다시 물으면 ‘중복처벌’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여당은 경영진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과징금 등 처벌 수위를 대폭 낮춘 새로운 법안을 재발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국토부와 노동부가 건설현장 안전관리 권한 문제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기술진흥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국토부 장관과 인허가기관·발주청·국토안전관리원에 건설공사 부실시공과 건설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현장 점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또 시정명령과 영업정지 등의 행정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부는 “부실시공 여부 등 건설품질을 관리·감독하는 국토부에 산재예방까지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라며 건설안전특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특별법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법체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국무조정실에서 국토부와 노동부 이견 조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노동부는 법안명을 ‘건설품질관리법’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부처 간의 협업이 필요하지만, 법에서 규정하는 부처의 역할은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토부에서 법안의 1조(목적)와 2조(정의), 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면서도 “건설안전 측면에서 시설물과 노동자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의 취지를 살리고 보완할 부분은 보완하면서 국무조정실에서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건설노동자 ‘부글부글’
“목숨 달린 문제에 부처 업역 갈등 말이 되나”

정부 부처가 법안에 이견을 보이면서 피해는 건설노동자들이 입고 있다. 송주현 건설연맹 정책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도 건설업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발주자와 ‘(건설기계·장비) 임대’가 빠져 건설 산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을 보장하는 공사기간 확보’인데 건설안전특별법에서 유일하게 이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건설현장의 중대재해는 공사기간과 공정을 관리하는 원청의 무관심과 발주자의 관리감독 부재가 만든 구조적인 문제”라며 “부처 간 싸움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무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때마침 국토부와 노동부 장관이 모두 교체됐다. 노동계는 건설노동자가 하루라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으려면 두 장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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