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정부는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과징금을 물려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방식의 산업안전보건제도 개편을 추진한다. 경영책임자가 사업장 안전관리에 신경을 쓰도록 정기적으로 현장 안전상황을 의무적으로 보고 받도록 한다. 강력한 경제적 제재방안으로 꼽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대책에서 제외됐다.

건설현장 공사단계별 맞춤형 예방대책 수립 특징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관계부처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4월 발생한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재사고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내놓은 종합대책이다.

건설현장 화재사고를 막기 위해 발주·시공·감리 등 공사단계마다 화재 취약지점을 진단하고 맞춤형 대안을 내놓은 점이 이번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노동부가 주무부처로 국토교통부·법무부·행정안전부·소방청이 함께 대책을 만들었다.

우선 국토교통부는 공공·민간공사 모두 적정 공사기간 산정을 의무화하도록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한다. 사업주가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을 지시할 경우 형사처벌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설계도상 산정된 공기를 단축하거나 공법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위반하면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처벌이 가벼운 데다 산재사망 처벌조항과 별도로 구분돼 있다. 공기 단축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형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건설안전특별법에는 적정 공기 위반 처벌수준을 산업안전보건법보다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현장파악-점검-처벌’ 감독체계 강화

화재사고를 막기 위한 구체적 대책 수립과 이행은 사실상 노동부가 맡는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개정해 가연성 물질 취급작업과 화기 취급작업의 동시작업을 금지한다. 위험작업 신고제를 도입해 위험현장과 작업시기를 파악·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건설현장 출입관리 시스템을 통해 용접작업이 이뤄지는 등의 위험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지방자치단체에 현장지도 권한 부여, 안전지킴이·국민감시단 등 민간 감시체계 확대, 근로감독관·안전보건공단의 불시점검 강화 등 현장 관리·감독 능력을 강화한다. 이렇게 하면 위험현장을 파악하고, 불시에 점검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일련의 감독체계를 완비하게 된다.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을 엄중히 처벌하려던 애초 계획은 후퇴한 조짐이 보인다. 정부는 대책수립 초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법인에 피해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내부 검토를 했다. 이날 발표에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사업주가 부당이익을 취득한 경우에 과징금을 물도록 하는 방안만 담았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상 책임배상제도와 형사법 체계 등 종합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과징금 도입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앞으로 논의에서는 부과기준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화학물질관리법은 매출액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한익스프레스 산재사고 등 다중이용시설 사고와 산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안전관리책임자를 처벌하는 특례법 제정을 추진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유사한 특례법 제정을 추진한 바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노동계 “기업 최고책임자 처벌 없으면 백약이 무효”

범부처 논의 과정에서 노동부 주장이 수용되지 않은 정황도 보인다. 대책에는 산재예방 및 보상 분야의 전문성·총괄 기능 강화를 위한 산업안전행정체계 개편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안전보건청 혹은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설립·도입해 산업안전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노동부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위와 같은 문장으로 대체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이번 정부에서 사실상 어려워지게 됐다.

노동계는 이날 대책에 대해 대체로 아쉬움을 나타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기업 최고책임자가 안전에 투자하기보다 비용절감만 요구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수많은 제도와 대책은 현장에서 현실화하지 못한다”며 “기업처벌을 강화해야 산재사망을 멈출 수 있다는 노동자·시민의 분노와 요구를 정부는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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