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전태일과 시다들은 도처에 있다. 여전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서 근기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다. 근기법 적용대상이지만 사용자를 사용자라 부르지 못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코로나19 광풍에 그대로 노출된 노동자가 있다. 그들에게 전태일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노예의 굴레에 갇혔던 우리에게 용기 줘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생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택배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규제 없는 무법천지의 택배산업에서 재벌과 그의 마름 역할을 하는 대리점주들에 의해 노예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으로 모든 고통과 멸시를 오롯이 몸뚱아리 하나로 감내해야만 한다. 인간다운 삶, 정당한 노동의 가치는커녕 부품보다 못한 대우 속에 일을 한다. 불이익에 분노하고 자기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생계를 포기하고 해고될 것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로 간주된다. 말 그대로 정말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용기를 내더라도 승리를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은 부당함에 분노하고 저항하기보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외면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전태일!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온몸을 내던진 그이의 울림은 오늘 노예의 굴레에 갇혀 신음하는 택배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끊임없이 줬다. 불의에 항의하다 수도 없이 해고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던졌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현장에서 끝끝내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됐다. 연대뿐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전술을 투쟁의 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다. 정당한 권리쟁취 투쟁을 시작했고, 이기기 위해 투쟁했고 승리할 때까지 투쟁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년을 맞아 택배연대노조가 전태일상을 수상하게 됐다. 노조를 건설했고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많은 부당해고 투쟁에서 승리했다. 코로나19 시대 영웅 그 이면에 있는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라는 죽음의 그림자에 맞섰다. 택배 없는 날을 만들고, 공짜노동 분류작업에 원청사의 인력투입을 이뤄내는 투쟁을 전개한 우리 조합원들이 상을 받았다.

전태일상 수상은 함께해 온 모든 조합원들이 뭉치고 주인되는 과정이었던 지난날을 긍지 있게 돌아보게 한다. 모든 택배노동자의 단결, 세상의 주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포부를 세우는 전환점이 되는 것 같다.

아직도 ‘인간다운 삶’과 ‘생존’을 외친다
조승원 관광·서비스노련 부위원장

▲ 조승원 관광·서비스노련 부위원장

1970년에도 최저생계비 기준과 근로기준법은 있었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정당한 대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전태일 열사의 고귀한 희생은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본격적인 노동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와중에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몸소 느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관광산업은 사실상 전면휴업 상태이며, 매출액 역시 전년 대비 최대 90% 이상 감소했다. 정부 지원제도가 종료되는 11월에는 대규모 정리해고와 직장폐쇄, 사업장 매각 등이 예정돼 있다. 호텔업·여행업·면세업·카지노업의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노조는 관광산업 생태계 유지와 고용안정을 위해 모든 방안을 열어 두고 사용자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화로 마련한 여러 방안은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만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트래블버블을 빨리 시행해 정상적인 하늘길이 열려야 한다. 관광산업 노동자들은 정부의 트래블버블을 현재 상황에서 고용유지와 기업안정화를 이룰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관광산업 노동자들은 정부가 관광산업 생태계 유지를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 지켜볼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이 어려울 때, 왜 노동자들의 희생이 우선돼야 하는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노동자들도 그에 따라 대책을 마련할 것 아닌가?

사용자는 겉으로 상생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정규직 노동자를 줄이고 계약직 노동자만을 채용할 수도 있다. 회사가 인건비를 줄여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높아질까봐 우려된다. 50년이 지난 2020년에도 전태일 열사가 이루고자 했던 ‘인간다운 삶’과 ‘생존’을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회사에서 잘리는 ‘오늘의 전태일’ 하청노동자 
권오철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 사무장

▲ 권오철 부천지역노조 오비맥주경인직매장분회 사무장

오비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오늘의 전태일’이다. 전태일 열사가 50년 전 노동자들을 위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부르짖으며 산화하셨다. 그 외침을 5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똑같이 우리도 외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을, 지금의 경인직매장 노동자들도 시대를 거슬러 똑같이 외치고 있는 것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비맥주 경인직매장은 다단계 하청구조에 놓여 있는 비정규 노동자다. 지게차 기사·트럭운전자·사무원 같은 직매장 노동자들은 오비맥주가 물류운송을 위탁한 CJ대한통운이 재하청을 준 물류회사에 소속돼 있다. 1년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으며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과 수당을 받는다. 경인직매장 노동자들은 도급업체 변경 과정에서 사실상 해고되며 농성과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경인직매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 23개 직매장이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경인직매장에서 노조를 만들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최초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의 승리’가 전국 직매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 직매장 노동자들과 연대해 하청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이다.

직매장 노동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청노동자의 고용불안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급업체 변경이 곧 해고로 이어져선 안 된다. 지난 10일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급정책협의회 및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 출범식에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오비맥주직매장 내 해고와 불법파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해결방안을 찾아 보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청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에 국회가 나서야 한다.

봉제노동자들의 영원한 노동자
이정기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

▲ 이정기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

화섬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으로서 노조를 홍보하러 현장에 다닌다. 서울 전역에 있는 공장을 다니면서 지회 가입을 독려한다. 노조가 왜 필요한지, 노조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럴 때마다 머리 속에는 전태일이 떠오른다. 봉제노동자 모두의 노동자인 전태일을.

그도 우리처럼, 아니 우리보다 힘들게 노조활동을 했을 터다. 사람들의 무반응과 거절, 냉대 속에서 말이다. 그는 재단사라는 직급 최고의 관리자가 돼 평화시장 어린 여공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주길 바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동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노동청에 진성서를 내기도 했다. 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노동자 숙소 다락방 철폐, 정식 기숙사 설치 등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거리시위를 기도했지만 경비원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방해로 무산됐다.

그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행동이 결실을 맺기를 염원하면서 말이다. 많지 않은 나이, 20대 초의 청년이 저 모든 일을 했다. 무반응과 냉담 속에서 꺾이지 않았다. 꺾이지 않고 산화했다. 그의 산화 이후 50년이 흘렀다. 그의 행동은 결실을 맺었는가. 불평등은 줄어들기는커녕 확대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차별·혐오가 만연해지고 있다.

그의 행동이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그의 정신을 모두가 가졌으면 한다. 사랑과 평등, 연대의 정신이 필요하다. 타인을 차별하지 말자. 타인에게 손을 내밀자. 타인을 사랑하자. 평등과 정의의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봉제노동자들의 영원한 노동자, 전태일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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