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재벌이 임금동결을 반대한다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지난 수십 년 주야장천 임금동결을 입에 달고 산 재벌이 임금동결을 반대한다고? 그렇다. 그런데 함수가 있다. 재벌은 지금처럼 논의되는 임금동결을 반대한다. 아니 함수가 더 있다. 재벌은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계가 먼저 제안할지도 모르는 임금동결을 반대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복잡한 계산?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노동운동 안팎을 얕잡아 보는 표현인 것 같아 뒤가 켕긴다. 그래서 표현을 바꾼다. 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단순한 계산이다.

임금을 동결하고 그 돈이 재벌 창고와 총수 호주머니에 들어가면 재벌은 무조건 찬성이다. 그런데 노동계에서 불붙기 시작한 임금동결 논의는 그 차원의 임금동결이 아니다. 임금동결분으로 연대기금을 만들고 코로나19 위기에서 실직·해고·무급휴직·구직난 등으로 신음하는 밑바닥 노동에 지원하자는 거다.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중소기업까지 총고용을 유지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을 갖추자는 거다. 그 흐름을 사회 구석구석까지 확산시키자는 거다. 자, 재벌이 노동계의 임금동결 제안을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되는가? 아직 모르겠다고?

노동계가 코로나19 위기극복 임금동결을 제안하면, 재벌은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 재벌은 그게 아까운 것이다. 노동계가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제안하면, 그다음 수순은 재벌은 뭐하냐는 사회적 압박이 따른다는 점을 누구보다 재벌이 알고 있다. 그래서 노동계가 임금동결분으로 기금을 만들면, 재벌은 그만큼의 기금을 추가로 얹어야 한다. 재벌 측면에서는 이중 부담이다. 사석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직원 임금을 인상시켜 주고 말겠다고.

재벌이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중소기업까지 총고용을 유지하려면 재벌이 모든 중소기업을 책임질 수는 없어도 최소한 직간접 하청까지는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하청단가를 인상해야 한다. 그래야 하청 재정난에 숨통이 트여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재벌은 그 부담이 싫은 거다. 전 국민 고용보험 같은 사회안전망이 확대되려면 그에 따른 사회적 부담도 재벌이 나눠야 한다. 재벌은 그것도 싫은 거다. 그러려면 차라리 울타리 안 직원의 임금을 인상해서 말 잘 듣는 임금노예로 만들자는 게 재벌의 본심이다. 이제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그래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단언컨대 신의 잘못이다. 어쨌든 그래서다. 재벌은 노동계의 임금동결 논의를 불안한 눈길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양대 노총이 실제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제안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임금동결은 총고용과 사회안전망을 한 단계 진전시킬 수 있는 노동운동의 유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노동계의 선제적 임금동결 제안에 대해 노동운동 안팎에서 찬반 논의가 붙고 있다. 앞으로 연달아 글을 쓰면서 노동계의 선제적 임금동결에 반대하는 논리를 반박할 건데, 앞서 한마디 한다. 임금동결은 자본의 논리라서 안 된다는 골방 수준의 얘기는 입에 올리지도 마라. 스스로 창피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거다. 민주주의를 논할 때 어떤 상황에서의 어떤 민주주의냐는 조건이 따라붙듯, 임금동결에도 어떤 상황에서의 어떤 임금동결이냐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아무 상황이나 임금인상은 늘 선이고 임금동결은 늘 악인 게 아니다. 삼라만상은 변화한다는 우주의 절대 명제 말고, 인간사회에서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 명제는 없다.

아, 한마디 더 있다. 노동계가 선제적으로 임금동결을 내놓자는 주장에 대해 노동운동에 어떻게 저런 인간이 있냐는 둥 어용이라는 둥 그런 수준 낮은 말은 하지 마라. 그렇게 비난받는다고 해서 내가 코로나19 위기에서 임금동결을 반대하는 것은 재벌 앞잡이라고 똑같이 수준 낮게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임금동결 제안을 반대하는 이들 중에 기·승·전·임금인상의 구좌파는 이렇게 주장한다. 투쟁을 통해 총고용을 유지하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할 수 있다고. 아이고 머리야. 미안하다. 진짜 머리가 아프다. 아직도 골방에 있나 싶어서다. 향후 상황을 예상하며 말하지는 않겠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실직·해고되고 무급휴직에 들어간 노동자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래서 투쟁이 되고 있는가. 투쟁하라고 선동하면 투쟁을 하던가. 그들이 모르거나 못나서 투쟁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황을 너무 잘 알아서 투쟁을 못 하는 거다. 이른바 연식이 된 노동운동 선수들에게 묻는다. 혁명을 부르짖던 그 좋던 시절에 입만 열면 투쟁 투쟁하던 그 잘난 선수들은 고작 화염병과 쇠파이프조차 왜 그리 주저했던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곰곰 생각해 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

이렇게 얘기해 놓고 또 뒤가 켕긴다. 노동계의 선제적 임금동결 제안은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낮은 수준의 비난이 따라붙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덧붙인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청년 구직난 시대 540명의 신규채용을 만들기 위해 조합원 1인당 평균 1천만원 이상을 양보했고 그 양보를 관철시키려고 이틀이나 파업을 했다. 부산지하철노조 말고 그만큼의 신규채용을 늘리기 위해 그렇게 투쟁한 노동조합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든 사안을 투쟁으로 쟁취하면 된다는 간부와 활동가들은 밑바닥 노동의 고통과 청년 구직난을 해소하기 위해 대체 어떤 투쟁을 하고 있단 말인가. 늘 하던 대로 밥 먹을 것 다 먹어가면서? 그렇게 해서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에서 총고용이 보장된다고? 이 코로나19 위기에서 투쟁하면 임금인상이 될 거라고? (다음 편으로 이어짐)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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