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

지난 11일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이남신 의장은 매일노동뉴스에 ‘코로나19 위기극복, 담대한 임금동결을 제안한다’는 글을 썼다. 6월8일 한석호 전태일재단 기획실장도 ‘돌팔매 맞더라도 목청껏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싶은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노동운동 선배들이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남신 의장은 노동자의 연대 정신을 얘기하며 “향후 2년간 임금동결을 선언하면 49조원가량 임금이 비축된다. 이에 상응해 정부와 자본이 동일한 비용부담을 할 경우 147조원을 거둘 수 있어 위기 극복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했다. 30대 재벌이 쌓아 둔 사내유보금은 2019년 기준으로 957조원으로 1천조원에 육박한다. 매년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비정규직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기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코로나19 위기 운운하며 기업에 200조원 넘게 지원한다.

“정말 몰라서 그럽니까?” 하고 묻고 싶다. 노동자의 연대 정신은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정규직의 양보를 원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권리는 정규직의 양보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규직의 양보로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총고용과 생존권을 보장받자는 주장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자본과 정권의 속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양보해서 상생하자’는 주장은 이미 낡은 프레임이다. 지겨운 얘기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다. 노노 간의 문제로 왜곡시키지 마라. 정규직 양보론은 자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2018년 당시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내걸고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을 꺼내들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에게 2018년·2019년 연대임금 전략으로 비정규직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했다고 하는데 비정규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도리어 현대자동차 원청과 하청업체만 배불렸다.”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박상박이다.”

100만 민주노총시대, 조직된 비정규직이 30만명을 넘었다. 지난해 민주노총 투쟁을 돌아보면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학교비정규직 파업투쟁,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단식투쟁, 한국지엠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고용 투쟁, 한국마사회 문중원 열사 투쟁 등이다. 2020년도 다르지 않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것은 양보가 아니다. 계급적 단결이다. 자본에 맞선 단결과 투쟁이다. 비정규직은 현장에서 매일매일 떨어져 죽고, 끼여서 죽고, 과로로 쓰러져서 죽어 나간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지금도 현장에서, 거리에서 싸운다.

임금을 양보하자며 전태일의 풀빵정신을 끌어들이는 것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전태일 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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