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화학 비정규직 집단해고 철회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남대책위가 1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해화학 비정규직 해고사태와 민주노조 파괴 시도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현장복귀를 하면) 그러면은 방을 따로 드릴게. 일단은 저쪽에 지게차 대기실, 여자 대기실 있잖아요. 거기 방이 좀 넓지 않습니까? 그죠? 마찰이 생기더라도 일단은 진통은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A씨)

"뭐, 문제 생기고 시끄러우면 내보내. 내보내면 돼."(B씨)

"어제도 말씀드린 것 같이 우리 다른 팀에서도 그건 공동대응을 할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A씨)

"접촉 한 번만 있으면 그러면."(B씨)

"바로 사진도 찍고 전체적으로 퇴출할 테니까."(A씨)

"남해화학 대 그쪽 전쟁이 될 수 있어."(B씨)

"일단 뭐, 또 다른 디테일한 부분은 통화하시게요."(C씨)

이달 5일 오전. 전남 여수국가산단에 위치한 국내 굴지의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 제품팀 사무실에서 A씨와 B씨가 C씨에게 편의제공(방)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A씨와 B씨는 C씨에게 누군가와 마찰이 생기더라도 '접촉 한 번만 있으면' 바로 사진을 채증해서 퇴출하겠다는 얘기도 한다.

'전쟁'까지 언급할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낸 '그쪽'은 누굴까. 자리에 배석했던 또 다른 인물 D씨의 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민노총 문제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희들은 남해화학하고 계약해서 일하게 되면 최대한 남해화학이 신경 안 쓰게 편하게 해 줘야 할 의무가 있고요. (중략) 그런데 그 말썽 일으키고 서로 불편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하고 간다는 것은 솔직히 상상이 안 가고 있습니다."

대화 내용을 정리하면 남해화학과 계약을 한 D씨는 남해화학이 신경 쓰지 않도록 말썽을 일으키는 민주노총과는 함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A씨와 B씨는 민주노총과 C씨 간 마찰이 생길 경우 사진채증을 해서 민주노총을 공장에서 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부당노동행위가 의심되는 대화 자리에 출연한 A·B·C·D씨는 각각 정아무개 남해화학 제품팀장, 정아무개 차장, 신아무개 하이팩노조 위원장, 임아무개 ㈜새한 총괄부사장이다.

17일 민중당과 남해화학비정규직 집단해고 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남대책위원회가 녹취록을 공개했다. 최근 '민주노총 선별 해고' 논란을 일으킨 하청노동자 집단해고가 원청인 남해화학 주도로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남해화학은 "사내하청업체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해화학, 하청업체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더니
"차장으로 진급시켜라"


갈등은 남해화학과 비료포장 업무 계약을 새로 맺은 하청업체인 ㈜새한이 하청노동자 고용승계를 하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이달 1일자로 무더기 해고된 하청노동자 60명은 공장 점거농성을 하며 고용승계를 촉구했다. 민주노총(화섬식품노조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5명과 한국노총(하이팩노조·여수종합항운노조) 조합원 35명이 계약해지됐다가 여수종합항운노조(4일)·하이팩노조(7일) 조합원들만 차례로 고용승계됐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은 하이팩노조 관계자들이 고용승계 직전인 5일 남해화학 주선으로 오아무개 새한 공동대표와 임아무개 새한 총괄부사장을 만나 고용승계와 현장복귀에 합의하는 자리에서 나눈 대화다.

녹취록을 보면 "사내하청업체 운영에 개입할 수 없다"던 남해화학의 설명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남해화학은 하청업체에 노동자 인사(승진)와 업무 배치까지 지시했다. 정아무개 차장은 오아무개 공동대표에게 함께 배석한 하이팩노조 관계자 E과장을 지목해 "차장으로 진급시켜라"고 말했고, 오 대표는 "예예"라고 답했다.

정 차장은 "(제품팀) 총괄은 E과장이 하더라도, F(전 회사 기술자)는 써먹을 데가 있는 사람"이라며 사무업무에 배치하라고 요구했다. 오 대표가 난감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정 차장은 "인원 이렇게 호출하고 부르고 하는 거 그걸 유기적으로 잘해야 돼"라고 말했다.

남해화학은 민주노총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아무개 노조위원장이 "민노쪽 사람들도 노동자 아니냐"며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자, 정아무개 팀장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다.

신 위원장이 "고용승계란 말이 포괄적으로 단협까지 다 수용한다는 말이냐"고 확인하자, 정 팀장과 정 차장, 임 대표는 한목소리로 "한총(한국노총)에 대해서만"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30일부터 18일째 공장 안에서 농성 중인 구성길 남해화학비정규직지회장은 <매일노동뉴스>에 "그동안 남해화학은 '우리는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해 왔는데, 녹취록에서 보듯 우리를 배제하기 위해 뒤에서 하청업체와 모의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구 지회장은 "2년에 한 번씩 입찰 때마다 최저가입찰로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남해화학이 이런 범죄행위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럽다"고 토로했다.

포장업무 모르는 하청업체가 낙찰된 까닭은?

집단해고 사태 이후 노동계는 업체 선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지회에 따르면 18번의 유찰 끝에 낙찰된 새한은 연매출 8억7천만원에 화물운송 중개, 대리 및 관련 서비스업을 하는 회사였다. 포장 도급업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매출 규모나 전문성 측면에서 낙찰될 이유가 없는 업체라는 설명이다. 전남대책위 관계자는 "아마도 물정도 잘 모르고 말을 잘 듣는 업체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새한 공동대표와 총괄부사장은 포장·도급업무를 처음 접해 본 티를 숨기지 않았다. 오 대표는 "(입찰현장설명회 자료를) 몇 번 읽어봐도 저희는 현장 실정을 제대로 모르니까 따로따로 인원을 다 배정해야 하는지…"라고 말하자, 정 차장은 "무조건 포장 위주로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남해화학은 업체에 자신들의 '갑' 위치를 각인시키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 팀장은 남해화학 감사실장 말을 빌려 "언뜻 말씀하셨을 때, 이 업체가 잘한다 그러면 좀 추천해 가지고 또 연장할 수 있게끔, 그렇게 한 번 제도를 검토해 보겠다고 이야기하셨다"고 전했다. '말을 잘 들으면 계약연장을 검토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전형적인 원청 갑질 행위다.

전남대책위는 지난 16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녹취파일과 속기록을 제출하고 남해화학과 하청업체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전남대책위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해화학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남해화학 비정규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의 본질은 민주노조를 탄압·와해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무력화하는 반헌법적 범죄행위라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며 "녹취록에 나타난 남해화학의 범죄행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노동탄압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남해화학 관계자는 "어떤 자리에서 나눈 대화 내용인지 모른다"며 "녹취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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