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이주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 정책에 정작 당사자들과 인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정책 시행 뒤 이주민들에게 적게는 서너 배 많게는 수십 배 오른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날아오고 있다"는 하소연이 잇따른다.

이주민 건강보험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은 26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실질적으로 이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발족한 공동행동에는 고려인제도개선위원회, 이주인권연대,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등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체류 이주민의 건강보험 당연가입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지난달 16일 공포됐다.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편입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또 다른 차별이 문제가 됐다. 보건복지부가 "외국인 등은 국내에 소득 및 재산이 없거나 파악이 곤란해 내국인 가입자가 부담하는 평균 보험료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한 이주민은 소득이 적더라도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 미만인 경우에는 월평균 11만3천50원(2019년 기준)을 납부해야 한다.

2017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평균임금은 내국인의 64%에 불과하다. 지난 5월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8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재외국민을 포함한 이주민 건강보험 가입자는 97만1천명(67.1%)이다. 이 중 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를 포함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66만4천529명(68.4%)이다. 지역가입자는 30만6천670명(31.6%)이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보험료 금액이 너무 자의적으로 설정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돈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마련한 건강보험제도의 보험료가 영리보험회사의 보험료보다 높은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법무부가 건강보험료를 3개월 체납한 경우 6개월 이내 체류만 허용하고, 4개월 체납한 이주민들은 체류허가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주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을 건강보험료로 내거나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 진퇴양난에 처했다"고 꼬집었다. 공동행동은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이주민들의 체류 자체를 위협하는 폭탄이 됐다"며 "취약계층 이주민을 보호할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