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을 채근하고 있다. ‘2019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는 노사협의로 도입한 공공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미 일부 기관을 사전협의기관으로 지정한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과 회의를 정례적으로 하며 개선계획을 제출하라고 닦달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노동자들은 직무급제 도입 과정을 보며 박근혜 정부를 떠올린다. 성과급제를 강제도입하려다 극심하게 부딪쳤던 그때 잔영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들었다.

 

▲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

박근혜 정부 폭압의 또 다른 이름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

정부의 공공서비스 영역은 성과와 효율을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실패 영역을 보완해야 한다는 분명한 정책목표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공부문의 일하는 방식은 ‘협업’이 핵심 가치일 수밖에 없다. 개인이라는 단위로 접근해 임무를 부여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는 절대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다. 공공성은 개개인이 수행하는 개별적인 직무가치가 아니라 협업에 의한 개별직무가치의 합으로만 담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금융공공성이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로도 모자라 대주주적격성 기준마저 완화하려는 금융공공성 파괴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현장의 과도한 경쟁과 무분별한 성과주의 앞에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가치는 이미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박근혜 정부의 폭압적인 성과연봉제의 또 다른 이름인 직무성과급제는 불타는 금융산업에 기름을 들어붓는 격으로 금융공공성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공공부문의 임금체계는 ‘공공성’이라는 정책가치를 전제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여론을 호도해 관료 주도로 추진되는 직무성과급제 논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시도 과정과 판박이다. 이는 금융노동자들의 준비된 투쟁에 철퇴를 맞을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협업을 통한 직무수행과정을 충분하게 이해하고 효율성보다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고 공공성이라는 핵심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는 방식과 보상체계가 설계돼야 한다. 이와 함께 현재의 호봉제 임금체계가 지닌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인 역사성을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직무성과급제는 논의절차와 내용 모두 이러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직무성과급제! 준비 안 된 적폐의 심장! 기재부 관료들이 무늬만 바꿔 추진하는 성과연봉제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직무급제는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한 방안일 뿐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정부와 사용자가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매년 자동적으로 오르는데 이것이 불합리하니 제동을 걸고 임금을 직무가치나 성과에 연동시키겠다는 것이다. 직무를 구분하고 가치를 평가해 직무등급에 따라 ‘공정’하게 ‘차등’적인 임금을 더 적게 지급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성과연봉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한 공공병원에서는 직무분석을 통한 직무평가·동료평가·다면평가 등 다양한 평가제도를 도입했지만 누구도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업무효율성은 떨어졌고 이직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커져서 9년 만에 다시 호봉제를 도입한 사례가 있다.

설령 직무와 능력에 따른 임금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차별적인 임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직무등급을 어떻게 나누고 평가할 것인지와 관련해 갈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병원산업의 경우 70여개 직종이 협업을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유기적인 협업이 생명인 곳이다. 환자를 상대로 수익을 추구하거나 과잉진료·과소진료를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병원 노동자들은 장기근속을 할수록 숙련도도 당연히 높아진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속연수를 중시하는 호봉제만큼 합리적인 제도는 없다.

 

▲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기재부는 지금이라도 노동조합과 대화하라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두고 기획재정부가 또다시 꼼수를 부리고 있다. 노조 앞에서는 ‘노정협의’를 전제로 점진적이고 단계별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난 5월부터 사측 담당자를 불러서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공기업 연구조직부터 먼저 추진하는 등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압박하고 있다. 38개 사전협의기관을 지정해 경영평가 반영을 시사했다. 임금공시제도 개편을 통한 직무급제 촉진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지난 적폐정권은 성과퇴출제를 강제 도입하며 공공노동자를 탄압하고 공공성 훼손을 시도했지만 끝내 전 국민적 저항에 막혀 물러나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가치를 국정운영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그런데도 기재부가 또다시 구태를 반복하려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기재부도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철학을 수용하고 이를 위한 정책을 실행해야 할 때다. 기재부가 과거 박근혜 정권 시절의 향수에 젖어 노동말살 정책을 되풀이한다면 공공노동자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 황병관 공공연맹 위원장

직무성과급 꼼수 추진 아닌 사회적 대화와 노정협의 통해야
황병관 공공연맹 위원장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사회적 합의 외면으로 도입에 실패했다. 현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다만 지난 정권과는 다르게 강압적 추진이 아닌 △기관별 특성을 반영 △노사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그러나 기재부는 직무급을 포함하는 임금공시제도 개선 용역을 시행하고 사전협의기관을 지정해 보수체계 합리화 계획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공공기관 부설연구기관에 대해 임금체계 개편을 이미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공공기관별 면담시 경영평가 반영 검토를 암암리에 강조하며 공공기관을 압박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상호 유기적 협력이 중요하다. 직무를 계량한다면 공공성은 심각히 훼손될 것이다. 결국 서열화 폐단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공공부문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면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노정 협의를 거쳐야 한다. 직무급제로 인한 우려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임금체계 개편 추진은 노정갈등을 확산할 것이다. 우리 공공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끝까지 저항할 수밖에 없다.

 

▲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전체 공공기관 격차해소 목표로 임금체계 개편 논의하자
윤정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지금 정부, 정확히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는 온전한 형태의 직무급이라 볼 수 없다. 기획재정부 스스로 고과차등형 범위 직무급이라고 하는데 개인별 성과와 업무난이도, 책임정도에 따라 임금인상률과 성과급 지급률을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이 2016년 박근혜 정권이 밀어붙였던 성과연봉제와 다르지 않다.

내용도 문제지만 형식도 문제다. 기재부는 예산이라는 권력을 무기로 공공기관에 임금체계 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조가 없거나 규모가 작은 공공기관부터 도입시키고, 이를 점차 확산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임금체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협상과 교섭을 하거나 사회적 공감대를 가진 교섭구조 속에 만들어져야 한다.

노조는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면 교섭과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현 임금체계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개편이 왜 필요한지 살펴보고 기재부가 도입하려는 개편 목적과 영향도 살펴보자고 했다. 기재부는 이런 논의를 거부했다.

기관별·기업별로 진행되는 직무급제는 줄 세우기나 다름없다. 전체 기관, 전체 산업의 임금격차 축소를 논의한다는 전제로 교섭·협의를 하자. 기재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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