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3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19 ILO 백주년 기념 KLI 국제학술대회에서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가 100주년을 맞았다. 100년간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과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한 ILO에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100년 전과 지금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을 법·제도적 관점으로 바라본 <필라델피아 정신>(2010) 저자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는 ILO 회원국 간 연대에 초점을 맞췄다. <필라델피아 정신> 한국어판은 최근 매일노동뉴스가 출판했다.

알랭 쉬피오 교수는 무역국경이 사라진 현실을 반영해 다국적기업의 사회생태적 책임에 관한 보편적 선언과 재판소 창설을 통해 전 세계 차원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최종 심급에서 관할할 수 있는 지위를 ILO가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ILO 헌장의 원칙이 온전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협약 미비준 국가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방식으로 회원국 간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준된 협약에 만인효 부여하자”

한국노동연구원이 3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2019 ILO 백주년 기념 KLI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주제는 ‘사회정의를 향한 국제사회의 꿈 : ILO 백년의 도전과 동아시아의 경험’이다. ILO가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를 토대로 ILO가 풀어 가야 할 향후 과제와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전개됐다.

‘사회정의의 현대적 의미 및 ILO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 쉬피오 교수는 21세기 노동과 ILO가 마주한 기술·생태적 변화를 지적하며 “연대와 경제적 민주주의·사회생태적 책임”의 3원칙을 제시했다.

ILO 헌장은 “어느 한 나라라도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서 노동자 지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쉬피오 교수는 “ILO 헌장의 원칙을 온전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추진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연대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ILO 협약에 대한 만인효(Erga omnes) 부여와 선언·협약·권고로 구성된 현재의 시스템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범 도입을 제안했다. 임금노동을 넘어 비공식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을 포괄하자는 것이다.

라틴어 관용구인 만인효는 ‘만인에 대해’라는 뜻이다. 하나의 법률적 결정이 이해관계자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쉬피오 교수는 “각 회원국은 채택된 협약을 비준할 것인지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나 그 결정의 이유를 설명하고 협약이 다루는 사항에 관해 자국의 입법과 관행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며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정이 비교우위를 누리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되며, 만약 그런 경우라면 협약을 비준한 나라들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미비준국이 자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준된 협약에 만인효를 부여하는 것은 회원국 간 진정한 연대를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노동규범 다루는 ILO 재판소 창설해야”

디지털 혁명과 그로 인한 다양한 노동형태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민주주의 개념 확장과 무역국경 철폐에 따른 다국적기업의 사회생태적 책임 부여를 위한 ILO의 고민도 주문했다. 쉬피오 교수는 사회생태적 책임에 관한 보편적 선언의 내용으로 △각자는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신의 행위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또는 생태적 위험을 예방하거나 복원해야 한다 △법인의 책임은 그 임원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등을 예시했다.

국제노동규범을 해석하는 역할과 관련해서는 ILO에 재판소 설립을 요구했다. 그는 “국제노동규범 위반을 둘러싼 소송에서 최종 해석권한을 가지는 재판소 창설을 규정한 ILO 헌장 37조를 이행해야 한다”며 “ILO가 100주년을 맞이해 창립자들의 정신에 충실하게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기술발전이 가져올 노동시장 변화에 대비한 논의를 제안했다. 신 교수는 “기술혁신에 따른 일자리 변화와 근로빈곤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과 ILO가 기본소유 문제를 다뤄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우리사주를 통해 기업 내 소유 문제에 접근했듯이, 이를 확장해 국가적 차원에서 자산소유 민주주의, 즉 기본소유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학 박사인 은수미 성남시장은 “노동시장주의나 생산성의 문제에서 나아가 노동행위의 상호관계, 즉 인간의 총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생산성이 아닌 사회적 기여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기여에 따른 소득을 인정하는 방향의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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