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관련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정기국회 통과가 목표라고 했다.

ILO 기본협약 8개 가운데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것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협약(29호) △강제노동 철폐 협약(105호)이다. 정부는 105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런 계획을 밝히면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분쟁을 들었다. 이 장관은 “EU는 한-EU FTA에 근거해 우리의 ‘ILO 기본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FTA 사상 최초로 분쟁절차를 개시했다”며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EU와의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U는 한국 정부가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자 무역분쟁 단계에 돌입했다. 이달 23~26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가 끝나면 갈등이 가시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공이 국회로 넘어갔는데도 자유한국당은 요지부동이다. 자유한국당은 국회 심사 첫 관문인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23일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ILO 협약 비준 강행마저 밀어붙여 대한민국 경제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며 “ILO 기본협약 비준은 국내법과 충돌 때문에 28년째 이뤄지지 않았고 지난 10개월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에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누가 경제를 망치려고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28년 전인 1991년 ILO에 가입할 때,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2006년 한-EU FTA를 체결할 때 "ILO 기본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했기에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국제노동기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지적대로 28년째 ILO 기본협약 비준은 이뤄지지 않았다. 단순히 국내법과의 충돌 때문일까. 더구나 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노조 가입을 정부가 약속하지 않았나.

한국 정부는 수많은 약속을 남발하고도 지키지 않았다. 경제적 과실만 따먹고 인권이자 기본권에 속하는 ILO 기본협약 비준은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한-EU 무역분쟁은 코앞에 닥친 문제다. 더 이상 시간 끌기는 무의미하다. 경제와 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28년이면 충분하지 않나. 정부와 국회는 미비준 ILO 기본협약 4개를 서둘러 비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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