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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선 비준 불가능한가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은 8개 ILO 핵심협약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1991년 12월 ILO에 가입한 이래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제사회에 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제연합(UN)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권고를 수차례 했다. 그때마다 한국은 그러마 다짐했다. 급기야 유럽연합(EU)은 한국 정부의 계속되는 허언에 양자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조항을 근거로 분쟁절차에 돌입했다. 140곳 넘는 나라가 비준한 기본협약을 ‘10대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는 나라가 외면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제 나라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며 얻은 이름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6월이면 스위스 제네바에서 100주년 총회가 열린다. ‘노동’이라는 용어조차 금기시하는 국회가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그 안에 처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이런 ‘지체’를 끊을 의지가 있는가.

▲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먼저 비준한 뒤 총선 이후 동의안·입법안 처리해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나는 예전부터 선 입법은 불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그럼에도 선 입법 주장이 강해 올해 봄까지 해 보다가 안 되면 선 비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 상황은 선 입법이 어렵게 됐다. 지금 비준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번 국회에서는 국회 동의도 입법도 안 된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재계 주장을 수용하다가는 노동기본권 보장은 만신창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정부가 사고방식을 바꿔서 총선 프로그램으로 가져가야 한다. 비준을 먼저 한 뒤 총선 이후에 새로 구성될 국회에서 비준동의안과 입법안을 처리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그렇게 하자고 노동계와 손잡고 하는 게 좋다. 안 그래도 지금 정부는 노동계와 불편해졌는데 다시 손잡고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새로운 국회에서도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대법원에 해석을 맡길 수밖에 없다. ILO 협약과 국내법이 상충한다고 하는데 어떤 게 우선인지는 대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비준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으니 대통령으로서는 할 건 다한 것이 된다.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는데, 동의권과 입법권이 있는 국회 때문에 안 되는 것 아닌가. 6월에 ILO 총회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이제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다.

▲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

‘선 비준’ 하고 1년 동안 법 고치면 된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

국내법을 고치지 않고 ILO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선 비준을 하더라도 국회 동의와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

선 비준을 반대하는 이들은 ILO 협약과 국내법이 충돌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런데 비준을 하더라도 효력이 바로 발생하지 않는다. 1년 뒤에 발생한다. 정부 의지가 있다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법을 개정할 시간이 충분하다.

설사 1년 내에 법을 고치지 못하더라도 ILO 핵심협약과 국내법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항들은 많지 않다. 차차 고쳐 나가면 된다. 다만 군인과 경찰을 빼고는 단결권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ILO에 제소당하거나 권고를 받는 것 자체로 국내법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니, 법원의 판결을 통해 확인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법을 고친 다음에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비준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나 노사합의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흥정이나 거래·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노동 3권을 제한하고 있는데, 그 주체는 노사가 아니라 정부와 국가다.

특히 ILO 협약 87호의 당사자는 국가다. 전교조 문제와 공무원노조 문제를 봐라. 이 문제에서 사용자는 국가다. 그런데 마치 노사 간의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 있다.

▲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통령 비준권 행사, 국회 동의 반드시 거칠 필요 없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고용노동부가 ILO 핵심협약을 비준과 관련해 헌법에 근거해 국회가 우선 동의한 뒤 대통령이 비준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조약 체결과 비준 권한(73조)을, 국회에 동의권(60조)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조약에 국회가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주권의 제약이나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 등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ILO 핵심협약이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으로 해석한다. 틀린 말이다. 우선 재정적 부담을 놓고 경영권 운운한다면, 경영권은 권리가 아니니 논의할 필요가 없다. 주주권이 침해받는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으나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과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라는 지적도 옳지 않다. 입법사항으로 만든다면 모든 것이 입법사항이 돼 버린다. 대통령의 재량은 사라지고 국회가 전부 입법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인지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대통령 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하자면 ILO 핵심협약 선 비준의 조건으로 국회 동의를 거칠 필요는 없다. 이는 비준권을 가진 국가원수의 독립적 기능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비준권은 사면권처럼 국가원수로서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대통령이 비준권을 행사하되,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이나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처럼 입법이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입법을 하면 된다.

▲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ILO 협약 선 비준,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

고용노동부는 지난 17일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설명’에서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 ILO 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이후에 관련법을 개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법을 먼저 개정해야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수 있다는 ‘선 입법’만이 아니라, 국회의 동의로 ILO 핵심협약을 ‘선 비준’ 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선 비준-후 입법 주장과 동일하고, 이로써 ‘선 비준 후 입법’과 ‘선 입법 후 비준’을 둘러싼 지긋지긋한 논쟁도 끝났다.

헌법상 비준절차는 명확하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73조), 국회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동의권을 가진다(60조). 이렇게 헌법에 의해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6조1항).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은 노동기본권에 관한 입법사항이므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노동부도 확인한 것처럼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회의 동의 여부는 그 다음 문제다. 정부가 비준안조차 제출하지 않고, 국회 동의 운운하는 것은 지난 23년과 동일하게 또 한 번 국민과 국제사회를 기망하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통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ILO 핵심협약 역시 국민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조약비준권을 통해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헌법 개정과 달리 ILO 핵심협약 비준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더 이상 숨을 곳도, 변명할 것도 없다. 정부는 국민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지금 당장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 송은희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이제 정부가 ‘비준동의안’ 국회에 송부할 때
송은희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

정부는 언제까지 한가하게 있을 것인가. 고용노동부가 ILO 핵심협약 선 입법 이외에도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선 비준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지난 17일 밝혔다. 그동안 선 입법만 이야기하다가 선 비준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함께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을 늦출 이유가 없다. 이제는 비준이 먼저인지 입법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불필요한 상황이 됐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만들어서 즉각 국회에 송부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를 우선하겠다며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뤄 오기만 했다. 결국 사용자위원이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폐지,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같은 것을 요구하며 ILO 핵심협약 비준에 반대해 온 끝에 노사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애초 ILO 핵심협약 비준은 원칙의 문제이지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경사노위 합의가 무산된 이상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룰 명분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조약체결 비준권을 통해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조속히 송부해야 한다. 정부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국회는 그 다음 몫이다. 대통령은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ILO 100주년 총회에 가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당당히 비준하겠다는 의지를 밝혀라.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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