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다치면 정부 책임자와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실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20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유가족과 함께하는 기업처벌법 이야기마당’을 열었다. 행사에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해 산재 피해노동자들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산재 발생해도 기업 처벌은 미약”

유가족들은 기업에서 일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숨지는 노동자가 수백명이 넘어도 기업과 책임자 처벌은 없거나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제정연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산재사망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기관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와 업무상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두 가지 위법행위에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업무상과실치사죄를 적용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면 낮은 수준의 벌칙만 부과받는다.

황상기씨는 “우리 유미는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었고, 유미와 짝으로 일했던 분도 백혈병으로 죽었다”며 “더 알아보니 유미를 포함해 다섯 분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전했다. 황씨는 “지금은 삼성에서만 직업병 피해자가 500명 가까이 되고 150명 넘게 죽었다”며 “피해자가 수백 명이 나와도 삼성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상영씨는 “사람이 죽었는데 처벌은 솜방망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해서 손뼉 칠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면 책임자를 보석 없이 철창에 가둬야 안전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아들 민호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생수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당해 숨졌다. 지난달 1심 재판부는 민호군 사고와 관련해 생수공장 사장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장과 검사측은 모두 항소한 상태다.

이씨는 “다시는 민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제주도 삼다수공장에서 똑같은 사고로 30대 노동자가 숨졌다”며 “기업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면 민호의 사고 이후 전국의 생수·음료를 생산하는 공장은 스스로 변화했을 것이고 삼다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고위관리자 처벌할 수 있어야”

김미숙씨도 “여태껏 기업이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아무 제재가 없었다”며 “고용노동부는 용균이가 죽은 뒤 특별안전보건감독 결과를 발표하며, 원청 최고 책임자인 한국서부발전 사장 처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옥이 있다면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용균이가 일했던 곳은 열악했다. 더 이상 안전장치가 없어서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상윤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은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벌칙이 아니라 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며 “대기업에서 산재가 일어나면 경영책임자나 고위 임원이 처벌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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