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한 촛불집회 2주년 기념집회가 지난달 29일 열렸다. 뜨겁게 타올랐던 광장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시민혁명이라며 위대했다고 말은 하지만 그날의 뜨거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촛불시민혁명 계승자를 자임하며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광장에서 수백만 개의 촛불을 밝혔던 시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2018년 11월 오늘, 더는 광장에서 거대하게 타오르는 촛불은 없다. 우리는 그저 권력의 ‘적폐 청산’을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 탄핵과 19대 대선을 거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다. 더는 촛불혁명이라 할 만한 거대한 시민의 행동도 의지도 없었다. 촛불집회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 등 이 나라 주요 도시 광장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석해 박근혜 심판 말고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철폐를 외쳤다. 그런데 오늘은 볼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혁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2. 비정규직·최저임금·노동시간에 관해서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자권리 관련 주요 노동공약사항이었다. 먼저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직접 방문해 취임 첫 일성으로 외쳤건만, 자회사 고용으로 전환 말고 그야말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했노라고 내세울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더구나 직접고용이든 자회사 고용이든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기존 비정규직 임금 등 근로조건보다 크게 향상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최저임금 문제는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고시했지만, 사실상 여야 합의로 매월 지급되는 상여금 등을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함으로써 줬다 빼앗은 것이 되고 말았다. 노동시간 문제는 더욱 심란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한다면서 1주일은 일요일 등 휴일까지 포함해 7일이라는 정의를 근로기준법 2조에 규정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고서 가장 황당한 입법이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1주일에는 일요일 등 휴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5일이라고 고용노동부가 엉터리 행정해석을 해 왔던 것인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러한 법 해석을 전제로 법 개정을 통해 이제부터는 1주일이 휴일까지 포함해서 7일이라고 입법한 것이니 당시 이런 입법소식에 나는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간단축법은 국가가 법률을 통해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도 없었다. 자본이 근로계약을 통해 노동의 사용자로 되는 이 세상에서는 국가가 법으로 그 최장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기존 임금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대책은 마련하고서 하는 것인데, 도대체가 이런 기본적인 대책도 없었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그에 따라 임금이 감소하는 것은, 국가가 법률로 강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잔업·특근 없이 적게 일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파트타임 등 단시간 노동제로 일하면 되는 것이라서 국가가 거창하게 법 개정을 했노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공약 이행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아직도 소득주도 성장을 말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노동자들의 소득을 더 높여 줘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일진대 말이다. 분명히 기회는 있었다. 공약하고 천명한 대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기존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며, 1주일이 7일이라고 고용노동부가 확인해서 노동시간을 연장근로까지 포함해 최장 52시간으로 단축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촛불집회에서 함께했던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을 노동자들이 의심하지 않고 적폐 청산을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았다. 사용자 자본과 그에 편드는 언론 및 정당이 뭐라 공세를 벌이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비정규직 문제도, 최저임금 인상도, 노동시간단축도 하나 마나가 돼 의지만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 다시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입법이 여야 간의 합의로 추진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업률 등 사상 최악의 고용지표 악화로 비난받게 되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에 이어, 다시 노동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기존 최대 3개월보다 1년 등으로 연장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기획재정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슬금슬금 이에 관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최대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연내에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노사가 합의하지 못하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여야 합의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때마침 국회 환노위원장인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의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지난 1일 국회에 발의됐다. 제안이유에서 “중소기업은 경영 여건이 다양하여 실질적으로 근로자 1인당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것에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근로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소득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하여 기존 단위기간인 2주와 3개월을 각각 3개월과 1년으로 변경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3. 무엇이 오늘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에 몰두하게 하는가. 제안이유로 밝힌 대로 주 52시간제 노동시간단축에 따라 노동자 소득이 감소되는 현상이 발생하기에 이를 막기 위해 김학용 의원은 대표발의한 것인가. 진정으로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단축법이 시행됨에 따라 노동자 소득저하가 걱정됐다면, 국회에서 그런 노동시간단축에 관한 법률 개정을 할 때 노동자 임금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통과시켰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에 관해서는 아무런 고민 없는 법 개정을 해 놓고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말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그 단위기간을 평균해서 1일 8시간, 1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로 운영돼 왔다. 단위기간 3개월이 1년으로 연장되게 되면, 1년을 평균해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연장근로를 시켜도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든 재벌 대기업이든 사업장 규모를 떠나 사용자들을 위한 법 개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그런 탄력적 근로시간제 아래서 노동자는 연장근로를 해도 연장근로수당도 지급받지 못하게 되니, 그런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해도 자신의 소득이 줄어든다. 단위기간이 장기로 되면 될수록, 사용자는 이를 이용해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부담을 줄일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단순히 노동자에겐 임금 손실만 문제가 아니다. 노동시간 한도를 규제한 근로기준법 규정은 이런 탄력적 근로시간제 아래서는 맥을 못 춘다. 단위기간을 1년으로 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시행된다면 주 52시간제든, 주 40시간제든 어떤 근로기준법상 노동제도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로서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고 만다. 1년 기간을 평균해서 셈할 수가 있다면, 사용자는 특정기간을 현저히 적은 일을 시킴으로써 다른 기간에 얼마든지 장시간 일을 시키는 셈도 할 것이고,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으로 혹사당할 수 있다. 도대체가 이 나라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시간단축과 양립할 수가 없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입법추진이 아닐 수 없다.

4. 이렇게 쓰다 보니, 자꾸 의심이 든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공약 이행 추진상황을 살펴보다 보니, 과연 어떤 의지로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그 사업장 정규직과 차별 없이 동일한 대우를 받도록 하고, 최저임금 문제는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높이도록 하며,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자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의지를 갖고서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우니 말이다. 그래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그저 노동자 지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면 노동자 소득도 크게 증대돼야 할 텐데, 문재인 정부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몫이 10% 이상 증가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노동자 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나아가야 할 때는 언제나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비정규직·최저임금·노동시간 등 노동자권리와 관련한 사안마다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때 사용자 자본의 사정을 고려하며 노동자권리를 위해 나아가지 않았다. 소득주도 성장이 되려야 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의지조차 실종되는 날이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오늘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관한 입법추진에 다시 심란해진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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