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3월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이주여성들도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투(Me Too) 운동이 불타오르는 동안에도 이주여성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 바로 '불안정한 체류자격'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17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현황과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주여성 성폭력 상담 극소수”

토론회에서 조숙현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이주여성 성폭력 신고가 비정상적으로 적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전체 상담 중 성폭력 피해 관련 상담은 3.0%, 다누리콜센터의 성폭력 상담은 0.9%, 외국인인력센터의 성폭력·성희롱 상담도 0.01~0.0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상담센터로 들어오는 이주여성 성폭력 상담이 극소수라는 것이다.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이주노동자 비율과 비교하면 정도의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5년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 조사에서 이주여성 성폭력 경험률은 74.1%나 됐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주한 조사에서는 예술흥행비자 이주민의 55%가 성폭력을 경험했다. 2016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농업 분야 이주여성의 12.4%가 성폭력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인권위 발주 실태조사에서 제조업 분야 이주여성 성폭력 경험률은 11.7%로 조사됐다.

실제 성폭력 경험률과 신고율 격차가 큰 이유는 뭘까. 조 변호사는 이주여성의 불안정한 체류자격이 성폭력 피해 폭로·신고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피해자가 미등록 상태일 경우 상담이나 신고 과정에서 미등록 체류 사실이 드러날까 봐 신고를 꺼린다는것이다.

조 변호사는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70조의2(통보의무 면제에 해당하는 업무)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 수사’가 포함돼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공무원의 통보의무가 면제된다”면서도 “어떤 경로로든 신고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이주여성이라도 신고는 쉽지 않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를 3년간 3회로 제한하고 있다. 성희롱·성폭행처럼 사용자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는 언제라도 이동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주도권을 쥐기 쉽지 않다. 조 변호사는 “신고를 할 때 통역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사법기관의 이주여성에 대한 몰이해로 피해자 대부분이 고소를 중단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피해자 체류권 보장”

성폭력 피해자가 미등록 이주민이더라도 범죄를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하면 일정한 체류권을 보장하는 미국 제도가 참고 사례로 제시됐다. 미국 공익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남수경 변호사(Legal Service NY)는 “여성 이주민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지만 신고율이 낮은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는 피해자 구제방안이 있다”며 “성폭력을 비롯한 범죄 신고와 수사에 협조하는 이주민들이 U비자를 통해 4년간의 합법 체류와 노동허가증을 발부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U비자는 가정폭력이나 성폭행 등 특정 범죄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비자를 말한다.

황정미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고용허가제 체제에서 작업장 이동은 매우 까다로우며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성폭력·성희롱 피해를 당하거나 위협을 느끼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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