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노동자 권익보호가 목적이라는 노동법은 왜 신뢰를 잃었을까. 김지형 전 대법관이 진단한 원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법원 내 노동법에 대한 인식 한계, 두 번째는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공감대 부족이다. 김 전 대법관은 노동법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민사법의 아류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법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연대와 소통”을 강조하며 “노사는 노동문제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대화 참여 노력해야”

한국노총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사무총국·산하조직 간부 역량 강화를 위한 명사초청 특강을 열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김지형 전 대법관이 강연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날 ‘노동의 문제가 있는 곳에 노동법은 진정한 해답이 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노동법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노사와 정부·법원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는 “노동문제와 노동법의 본질에 대해 우리 자신은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노동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은 “노동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켜 내고 공동체의 공익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며 “노동법은 곧 인권법”이라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44년 총회에서 필라델피아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 1조에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대법관은 “44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기로 전쟁을 통해 인간성이 말살되는 참혹한 경험한 인류의 ‘다시 인간성을 되찾아야 된다’는 의지가 선언문에 담긴 것”이라며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 인격이며, 노동법은 결코 재화나 서비스 거래를 개체로 하는 시민법의 아류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와 맥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인식도 지적했다. 김 전 대법관은 “노동계가 파업을 하고 농성을 하지만 시민들은 적대적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며 “이 같은 이질감은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 조직률이 여전히 높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의 대표성 문제나 시민사회와의 소통 문제가 지적된다”며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치밀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사는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노력도 쉽게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법원으로 노동법 취지 살려야”

김 전 대법관은 노동법이 노동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법원은 노동법이 가진 노동자 권익보호라는 기본 목적을 우선해야 하는데 기업 경쟁력 강화·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과도하게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주는 판례를 내 왔다”며 “노동법을 민사법의 아류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노동법이 노동자 권익보호와 인권보호를 위한 법으로 해석되고 적용되기 위한 방안도 귀띔했다. 김 전 대법관은 “법원은 노동법원을 설립해 전문법원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을 어떻게 노동법원 제도 속에 담을 수 있는지 법원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재계에 변화를 촉구했다. 김 전 대법관은 “고용노동부는 정부부처로서 노동위원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근로감독 기능을 확충·보강해야 한다”며 “기업은 노동자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와 임금을 주는, 즉 혜택을 준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노동문제를 합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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