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노조

올해로 시행 3주기를 맞은 의료기관 평가인증제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눈속임 평가’로 전락한 인증제도를 혁신하지 않으면 평가를 보이콧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정부와 의료기관인증평가원도 태도를 바꿨다. 정부는 애초 4월에 하려던 의료기관 평가인증기준 발표를 8월로 미뤘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해 ‘의료기관 평가인증제 혁신TF팀’을 꾸려 네 달간 평가지표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보건의 날(7일)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3주기 의료기관 평가인증 이대로는 안 된다’ 토론회가 열렸다. 노조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인증제 혁신TF를 구성해 인증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병원에서 평가인증 업무를 하는 조사위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연이 의료기관인증평가원 정책개발실장은 “인증제 혁신TF에서 인증제도 전반의 문제를 재검토하고 제도 취지에 맞게 보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임신하거나 사직하거나"

“간호사에게 태움보다 무서운 게 의료기관 평가인증입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의료기관 평가인증 기간에 맞춰 임신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평가기간을 피하고 싶으니까요. 임신을 못하면 사직을 택하기도 합니다. 평가기간 전에 사표를 내거나 평가가 끝나고 사표를 쓰죠. 최근 10년간 간호사 이직률이 크게 늘어난 것은 80% 이상이 인증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사립대병원 간호사 류수영씨)

“병원마다 ‘인증 멤버’가 존재합니다. 병원에서 일 잘하고, 잘 외우는 간호사들로 구성된 ‘인증 멤버’는 평가기간이 끝날 때까지 몇 달간 데이(오후) 근무만 합니다. 오후 3시에 근무가 끝나면 모여서 한밤중까지 (평가인증) 족보를 공부하고 ‘이게 나올 거 같다’ 싶으면 같이 외우고, 서로를 테스트하면서 특훈을 합니다.”(국립대병원 간호사 임은희씨)

현직 간호사들이 토론회에서 증언한 의료기관 평가인증 실상이다. 간호사들은 인증제의 90%가 간호사 암기테스트로 이뤄진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조사위원이 나와 간호사에게 "직원 안전사고 발생시 보고방법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간호사는 “감염원 노출시 전화번호는 68**번, PH** 접속 후 '통합메뉴-위험관리-직원감염노출보고서' 입력함. 감염원 있으면 주간일 경우 보건관리자 연락, 감염내과 방문. 야간이나 공휴일일 경우 응급실 방문함”이라고 질문과 동시에 대답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암기하는 식이다.

병원 위생관리도 간호사들 몫이다. 간호사 임은희씨는 “같이 일하는 간호사 중 한 명은 지금도 ‘바퀴만 보면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평가인증 기간에 휠체어 바퀴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는 일을 맡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적정 인력기준 평가부터 하자”

의료기관 평가인증 기간이 다가오면 병원은 환자 입원을 막고 수술이나 검사를 대폭 줄인다. 평소 부족한 의료인력수를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환자수를 줄이는 것이다. 3교대로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이 평가인증 기간에는 전부 출근해 평소보다 인력이 세 배나 많아 보이게 눈속임을 하기도 한다.

이날 발제를 맡은 나영명 노조 정책국장은 “평상시 수술건수와 평가인증 기간 수술건수를 비교해 봐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평가인증 기준에 적정인력 기준과 일자리 질 평가기준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위원이 인증평가와 무관한 질문을 하거나 꼬투리 잡기 식으로 조사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인증제 혁신TF에서는 조사위원 전문성과 조사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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