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미 공인노무사

지난해 파견·용역노동자 조직률은 3.2%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 10% 달성에 발목을 잡는 데 파견법이 한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내가 만난 마트노동자도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에 기여하고 싶어 했지만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해 기여하지 못했다.

‘갑’인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A씨는 매장에서 물을 마시다 정규직 직원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매장 내에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마트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였다.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목이 말라도 참아야 했다. 역대 최장인 올해 추석연휴 열흘 중 A씨에게는 딱 하루 주휴일을 제외한 나머지 9일은 근무일이었다. 물론 연차휴가 사용조차 눈치가 보여 말을 꺼내지 못한다. 또한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 가입조차 하지 못했다. 갑 마트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갑 마트 직원들에게는 허용되는 휴일·휴가는 물론이고 고용불안 없이 노동조합을 가입하는 일이 A씨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A씨는 '갑' 마트에서 '갑' 마트 로고가 찍혀진 근무복을 입고 상품을 판매하는 노동자이지만 '을' 회사이름이 기재된 명찰을 달고 '병' 회사와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무를 한다. 즉 갑 마트는 입점협력업체인 을 회사와 납품 및 입점 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을 회사는 갑 마트에서 상품을 판매할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병 회사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았다. A씨는 병 회사에 채용돼 을 회사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갑 마트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갑 마트에서 일하지만 갑 마트 직원이 아닌 A씨는 자신을 그 흔한 갑·을·병도 아닌 '정'이라고 소개했다.

2013년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특정 대형마트의 불법파견이 확인되고, 1만여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직접고용되는 일이 있었다. 몇 달 전 대법원은 대형마트에서 캐셔로 일한 용역노동자들이 원청인 대형마트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간접고용을 불법파견으로 본다는 판단이다.

참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부나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는 것은 굉장히 예외적인 이야기다. 대형마트에서 A씨 같은 협력업체 직원들은 여전히 마트에 간접고용돼 근무한다. 이들은 원청 직원들로부터 근무복장·위생상태·근무태도·상품 판매량 등에 대해 지시를 받는데도 을이 아닌 병·정의 위치에 서 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로 인해 '간접고용'이라는 괴이한 고용형태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 불안정한 고용상태, 이로 인한 저조한 노동조합 가입률, 직접고용 노동자들과의 차별, 중간착취 등 많은 문제가 불거졌다. 불법파견인지 합법파견인지를 떠나 '파견'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간접고용이라는 틀 안에서는 고용 불안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이려 한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힘들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서는 노동자가 자유롭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병·정이라는 복잡한 구조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노동인권 실현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구조의 근본에는 파견법이 있다. 파견법 폐지야말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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