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을 10여년간 불법파견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국내 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뒤 수빅조선소에서 일한 노동자들에게 한진중공업이 업무지시와 노무관리를 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공개했다.

원청이 업무지시·노무관리에 교육·평가까지

한진중공업은 2008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인력송출업과 선박 건조·보수를 하는 업체 SHMP와 생산기술지원 용역계약을 맺었다. SHMP 소속 노동자들은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 작업조장과 비슷한 외주직장으로 일했다.

그런데 외주직장들은 한진중공업이 설립한 20~30개 현지법인에 속해 일했다. 현지법인과 별도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한진중공업과 현지법인들은 서류상으로는 도급계약을 체결한 원·하청 관계인데, 현지법인 대표는 모두 한진중공업 정규직이다.

외주직장들은 SHMP·현지법인이 아닌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지시를 받았다는 정황이 짙다. 이용득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는 외주직장들에게 “요즘 선주가 족장 설치에 민감합니다. 각 베이(공정파트) 직장은 직접 확인하고 문제 보고하세요”라고 SNS를 보냈다. 한진중공업 생산본부장이 외주직장들에게 전달한 공지사항을 이메일로 전송했다. 한진중공업 관리자들이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외주직장들의 근무일과 휴무일, 특근 인원수 등을 지정해 통보까지 했다. 한진중공업이 외주직장들을 직접 교육하고, 분기마다 기량평가를 한 문서자료도 있다.

불법파견 인지한 원청 “증거자료 삭제하라”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 외주직장 운영이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진중공업 본사 인사노무담당 박아무개 상무는 부장 시절이던 2015년 6월 외주직장 징계 문제와 관련해 수빅조선소 노무팀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외주직장에 대한 징계는 Sushicor(현지법인 중 한 곳)의 고유권한이지 원청사에서 강요나 지시할 사항이 아니다”고 주의를 줬다. 이어 “동 문제로 HHIC-PHIL(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과 Sushicor 간에 주고받은 메일이 불법파견,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되므로 모두 삭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사진 참조>

필리핀 현지에서 한진중공업과 현지법인·외주직장 간에 원·하청 관계를 넘어서는 각종 개입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올해 5월까지 수빅조선소에서 외주직장으로 일한 오아무개(55)씨는 “수빅에서 10년 일하면서 SHMP나 현지법인 지시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한진중 “필리핀 현지사업에 국내법 적용 못해”

한진중공업은 올해 5월 수빅조선소 물량감소를 이유로 SHMP와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용역업체 두 곳과 새로 계약했다.

SHMP가 폐업하는 과정에서 외주직장 98명 중 희망퇴직이나 새 용역업체로의 계약직 입사를 거부한 24명이 해고됐다. 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각하 판정을 받았다. 부산지방노동청에는 한진중공업과 SHMP를 불법파견 혐의로 고소했다.

박아무개 한진중공업 인사노무담당 상무는 “필리핀 현지법인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일에 국내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 상무는 “해고자들에게 영도조선소 특별채용을 제안했는데도 일부가 거부하고 있다”며 “불법파견이 확인된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득 의원은 “누가 보더라도 수빅조선소 한국인 외주직장들이 불법파견으로 고용됐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부산지방노동청은 고소사건을 지연하지 말고 빠른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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