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8일 기아자동차에 다녀왔다. 통상임금 재판에 관한 설명회가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선고를 앞두고 ‘재계 운명이 걸린 세기의 재판’(서울경제)이니 ‘차산업 덮친 통상임금’(아시아경제)이니 ‘시한폭탄 통상임금 소송’(한국경제TV)이니 ‘재계, 기아차 통상임금 선고에 초긴장’(뉴스토마토)이니 하면서 관심이 뜨거운 상태에서 열린 설명회였다.

이날 참석한 기아차의 노조 대의원들은 ‘재계’와 마찬가지로 재판 결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재판 진행과 변호사들의 소송 대응에 관해 많은 질문을 쏟아 냈다. 2만7천여명의 원고들을 대리해 온 나는 월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수 등 단체협약상 권리 주장 여부, 원고목록 정리와 지연이자, 인지대 문제 등에 관해 질문을 받고 대답해야 했다. 노조 임원선거를 앞두고 이러저러한 유인물까지 나돌았다는 말까지 들었던 터라 사실이 아닌 질문 공세에는 무덤덤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2011년 10월 소장을 제출하고서 시작된 재판은 이제 6년이 돼 가고 있다. 그사이 재판부가 몇 번 바뀌었고 노조 집행부도 변경됐다. 집단적인 조합원들의 청구소송 이후 추가로 발생한 부분에 관해 노사합의에 따른 대표소송이 추가로 제기됐다.

하기휴가비 등 복리후생급여를 중심으로 한 청구는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진행해 왔다. 근로기준법상 기준에 따른 청구만으로는 기아차에서 수십 년 동안 노조를 통해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해 온 단체협약상 노동자 권리를 팽개치는 것이니 기아차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경우 그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 일체를 지급하라는 것이 지금까지 일관된 우리의 청구다.

기아차에서 기본급과 제 수당에 관해 240시간·226시간으로 정한 월통상임금 산정기준시간수는 그대로 전제하고서 청구하고,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법정수당뿐만 아니라 각종 휴직수당 등 약정수당까지도 추가 임금으로 청구하고 있다.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진행되는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각 급여지급일로부터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나는 그러한 방식으로 청구해서 사측으로부터 남김없이 받아 내고자 했다. 이에 대해 사측의 각종 공제 주장에 따른 프로그램 문제로 재판이 6개월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다며 이를 포기하거나 항소심에서 청구할 것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2015년 우리의 청구취지변경신청 이후 휴일근로의 휴일근로수당 외 연장근로수당 중복청구의 경우 사측의 주 40시간 초과 여부에 관한 입증 주장에 대해 사측으로부터 근태 자료를 제공받아 재산정하는 등 청구금액이 감축되면서 수차례 청구취지 변경이 있었다. 최근에는 사망자 발생에 따른 소송수계 신청, 원고목록상 성명, 주민번호, 주소 등의 오기 내지 개명 및 변경에 따른 정정(변경)신청 등 대규모 원고로 인해 다른 소송사건에서는 별일 아닌 것들이 문제로 등장했다.


2. 지난 7월 재판부가 선고 예정일을 말한 이래 언론은 난리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완성차업체는 물론 부품업체들이 속한 협회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받아쓴 기사가 쏟아지더니 온갖 언론사가 스스로 취재 형식 기사까지 쏟아 내고 있다.

예컨대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이 기아차뿐 아니라 재계 2위 현대차그룹, 나아가 국내 산업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고, “산업계는 최대 52조원 규모의 통상임금 비용 부담으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우려하며, “수직계열화로 묶여 있어 현대·기아차의 부진은 전 계열사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뒤 “결국 산업계 전반에 자동차발 위기가 퍼질 수 있다”며 “법원이 적극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라고 보도했다(서울경제 2017년 8월7일).

8월9일에는 270여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과 한국자동차산업학회,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이 법원을 향해 "통상임금 문제 등에 대해 신중한 정책결정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고, 특히 "당장 기아차가 8월 중 예정된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기아차에 대금지급 의존도가 높은 영세 부품협력업체들은 자금회수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며 "즉각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 부품협력업체는 존폐 위기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아시아경제 8월13일). 다음날인 10일에는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르노삼성·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기아차 통상임금사건을 신의칙 위반으로 기각하지 않는다면 자동차 생산거점 해외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통상임금 사안에 대한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입장’을 발표했는데, 역시 이를 받아쓴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더니 그제는 “법조계에서는 금호타이어 소송의 2심 재판부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를 폭넓게 판단한 만큼 기아차측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한다”는 식의 기사까지 나온다(서울경제 8월20일).

이상은 많은 기사 중 몇 개만 읽어 본 것이다. 이와 유사한 기사들을 경제지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서 쏟아 냈다. 검색되는 것만도 수백 건이다. 그 기사를 읽다 보면,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해서 노동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나는 이 나라 자동차산업을 망치고 산업경쟁력을 저해하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완성차사의 임금수준이 중소 부품업체 평균임금의 두 배가 넘는 상황에서 통상임금 소송으로 협력부품업체 근로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는 짓을 대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거기서 나는 귀족노동자를 대변해 수임료를 챙기는 노동변호사라고 여겨질 정도다.

어쩌다 내가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을 맡아 가지고 일부지만 노조 대의원 등으로부터 비난받고, 귀족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동변호사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날마다 공약 이행방안을 발표하면서 비정규직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건만, 노동자 권리 타령하는 나는 어쩌다 이 지경이란 말인가. 기아차 대의원 설명회 자리에서 질문에 대답하면서, 기아차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내게 묻고 물었다.


3.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아차 통상임금 재판에 관해 사용자 자본을 대변하는 말이 아니라 원고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기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기업과 산업으로 포장한 사용자 자본을 위한 기사 일색이다. 그런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신의칙 위반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만이 자동차업체들을 살리고, 자동차산업을 살리고, 이 나라 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 그런 기사를 읽는 판사는 보다 신중히 노동자들의 청구에 대해 인정해 줄 것인지를 판결하게 될 것이다. 기아차 설명회에 갔다가 회사 대표이사 사장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말을 노조로부터 들었다. 노동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하게 되면 회사가 경영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기각해 달라는 읍소일 게다.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 판결 선고를 앞두고 이렇게 이 나라는 사용자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언론이 기사를 쏟아 내고 있건만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자들의 단체, 노동조합이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은 신의칙 위반으로 판결해서는 안 된다고, 노동자들의 청구를 인용해야 한다고 보도한 기사를 볼 수가 없다. 금속노조·민주노총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는데도 귀족노동자 일이라고 언론이 외면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도대체가 눈에 띄는 기사 하나를 읽지 못한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4. 기아차 통상임금 사건은 이제 기아차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이 나라 노동자의 일이라고 사용자 자본과 언론은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기사를 쓰고 있다. 사실 통상임금은 잔업, 특근하는 노동자 모두의 임금권리에 관한 것이다.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는 노동자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한 임금을 지급받아야 하고(근로기준법 56조), 미사용 연차휴가수당을 통상임금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니 통상임금 문제는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에 해당하는 문제다. 기아차에서 신의칙 위반으로 통상임금 소송이 기각된다면 기아차보다 경영사정이 어려운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의 청구도 당연히 기각될 수밖에 없다. 수도 없이 말해 왔던 것처럼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지 않고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도록 하는 사업장에서는 아무리 상여금에 복리후생 급여, 나아가 성과급까지 통상임금에 해당하더라도 사용자에게 어떠한 추가 부담이 없다.

오늘 이 나라에서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소송이 심각하게 문제 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하지 않아서다. 따라서 통상임금 소송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를 탓할 일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연차휴가를 보장하지 않은 사용자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지금 통상임금 소송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연장·야간·휴일 근로 등 초과근로와 연차 미사용이 심각하다는 자백인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