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미국·일본·프랑스·독일 등 전 세계 문명국가에서는 되는데 왜 우리나라만 안 되나요? 모든 나라가 21세기를 사는데 우리만 아직 19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무원·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입법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신 변호사는 “우리나라 공무원·교원은 정당 설립·조직·가입·활동·후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정치기본권이 아예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는 박주민·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했다.

◇홍준표는 되고, 전교조는 안 된다?=신 변호사는 “소수정당에 1만원을 후원했다는 이유로 공무원·교원 수백명이 기소돼 처벌받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며 “헌법은 모든 국민이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공무원·교원은 국민으로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가공무원법 66조1항에 따르면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신 변호사는 “66조1항은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제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항이지만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법외노조 통보 관련 교사선언과 집회에 참여한 전교조 조합원들이 해당 조항 위반죄로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에 대해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해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로 설명한다. 신 변호사는 “어떤 표현이 공익에 반하는지는 사람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따라 달라진다”며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전교조 관련 발언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홍 전 지사는 '전교조와 강성귀족노조를 국민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다'는 발언으로 처벌받지 않았지만 전교조가 특정 후보를 폄하하거나 ‘세탁기에 넣어 돌리겠다’고 표현하면 처벌받는다”며 “국가공무원법 66조1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치적 중립은 관직행사에 국한”=정부가 국가공무원법 집단행위 금지 규정을 공무원·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를 징계·처벌하는 법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위주의 정권은 정부에 비판적인 집단적 정치표현을 한 공무원·교원을 징계·처벌해 왔다”며 “법원 역시 이에 편승해 해당 조항에 근거한 유죄판결을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헌법은 정치적 기본권 제한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며 “헌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하위의 일반 법률로 공무원·교원의 정치기본권 행사에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중립성은 관직행사에 국한된 것”며 “정치적 기본권이 배제된 공무원·교원은 결국 국민 전체가 아닌 집권정치세력의 봉사자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공무원·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논의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최근 국회에서 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달 29일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공무원과 교원도 국민의 권리인 정치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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