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자동차 공장에서는 폭발사고가 있었다. 용해로에서 나온 쇳물을 운반하다 문제가 생기면 미리 바닥에 파 놓은 피트에 쇳물을 부어서 식히게 돼 있다. 이날은 쇳물을 운반하던 큰 통이 파손됐다. 피트에 쇳물을 붓고, 통은 고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라 있어야 할 피트에 물이 고여 있었다. 수 톤이나 되는 끓는 쇳물을 붓자, 이 물이 갑자기 기화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세 번이나 폭발음이 들리고, 처음에는 연기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다행히 근처에 노동자가 없던 터라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폭발사고였기에 고용노동부에서도 곧바로 근로감독관이 나왔고, 경찰과 소방서에서도 현장조사를 해야 했다. 전체 공장에 대한 작업중지는 당연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노동자들이 사고 원인과 현재 상황을 설명 듣기도 전에 네 개 용해로 중 사고가 발생한 한 기만 작업중지를 유지하고, 나머지 용해로는 작업중지를 해제해도 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폭발로 가스 파이프 등이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시설물이 파손되지는 않았는지, 2차 사고 위험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작업을 재개하기 어려웠다. 불안해하는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설명하거나 안전을 약속하는 대신, 구사대를 꾸려 무조건 작업을 시작하라고만 우겨 댔다. 노동자들이 완강히 버텨 작업중지를 유지하고, 임시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사고 원인과 대책에 대한 설명을 겨우 마무리한 뒤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인사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중지했던 작업을 다시 재개할 때는 안전이 확보됐는지 반드시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후, 안전조치가 다 이뤄지기도 전에 작업이 재개돼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런 메시지는 반갑다. 한 번 발생한 사고가 2차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사고를 계기로 현장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작업중지권의 본령은 예방에 있다. 사고가 난 뒤 처리를 위해 작업을 멈추는 게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기 전 위험을 감지했을 때 작업을 중지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작업중지권의 주된 취지다. 이는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그렇게 판단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얼마나 급박해야 급박한 것일까? 메틸알코올(메탄올) 실명 사고 때처럼 자신이 무슨 화학물질을 쓰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 위험은 얼마나 급박한가? 옆 공장에서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나서 일단 작업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을 대피시킨 노동조합 활동가에게 회사가 ‘정말 급박했느냐’며 징계를 내리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판이다.

프랑스도 법에 “자신의 생명 또는 건강에 심각하고 즉각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 작업 상황에서 철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훨씬 폭넓게 해석한다. 기계·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비위생적인 업무 환경, 산업보건당국이 정한 안전보건 규칙에 위배되는 작업장 등과 같이 노동자에게 유해할 수 있는 여러 요인을 작업 상황에서 철수할 수 있는 원인으로 본다. 또 프랑스 법원은 노동자가 작업중지 결정을 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고 판결했다. 노동자가 위험하지 않은 상황을 오해해서 작업을 중지해도 ‘악의만 없으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작업중지를 해제할 때뿐 아니라 작업중지를 시작할 때 노동자 의견과 판단이 지금보다 훨씬 존중돼야 한다.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조건을 넓게 허용하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 작업을 중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은, 솥뚜껑 보고 놀라서 멈추는 일을 몇 번 겪더라도, 단 한 번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사고로 우리는 생명을 잃고, 건강을 잃고, 삶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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