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 울산중부센터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이 "도급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통신·케이블업계 고용질서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급기사 공사는 정보통신공사업법상 불법에 해당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인 도급기사는 특수고용직으로 노동관련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지난해 9월 경기지역 도급기사 김아무개씨가 전신주에서 감전돼 추락사했지만 산업재해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도급기사로 일하다 협력업체에 고용되는 기사가 늘어난다는 것은 법의 보호를 받는 기사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희망연대노조는 지난 17일 “도급기사를 사용하는 협력업체를 조사해 도급기사의 지위와 처우가 회복될 수 있도록 시정명령을 내려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방자치단체에 발송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6월까지 통신·케이블업체 도급기사 실태조사를 마무리하라고 지자체에 요청했다. 도급기사 공사 중 상당수가 법 위반인 만큼 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울산시 실태조사로 도급기사 49명 직접고용 길 열려

울산시 관계자는 16일 SK브로드밴드 울산중부센터를 방문해 노사를 만났다. 도급기사 사용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협력업체를 방문한 지자체는 울산시가 최초다. 이날 조사에서 협력업체 사용자는 "3월 중 도급기사 개인면담을 하고 직접고용을 희망하는 도급기사를 채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센터에는 59명의 설치기사와 49명의 도급기사가 있다.

센터가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SK브로드밴드의 지침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18일과 이달 2일 두 차례에 걸쳐 도급기사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80여개 협력업체에 전달했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IPTV 설치를 하는 도급기사가) 정보통신공사업법 면허를 보유했는지 여부를 확인해 면허를 보유한 자가 공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도급기사 관련) 개선계획을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 이후에도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2017년 (협력업체와) 재계약 결정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도급기사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시다.

면허를 취득하려면 3억원 이상의 자본금과 개인사무실, 기술자를 갖춰야 한다. 개인사업자인 도급기사의 면허 취득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에서 불법논란을 의식한 원청이 도급기사 사용을 중단하라고 지시하자 협력업체들이 직접고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파악한 바로는 도급기사 사용업체 74곳 중 12곳이 직접고용 의사를 밝혔다.

LG유플러스 원·하청도 직접고용 검토

LG유플러스도 직접고용을 검토하고 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지난달 협력사협의회와 만나 도급기사 직접고용을 전제로 논의했다”며 “이달 중 원·하청이 한 번 더 만나면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노조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협력업체들은 “정규직 전환을 희망하는 도급기사에 한해 정규직 전환을 검토한다”며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급기사들의 반발이 커서 설득 중”이라거나 “업계 분위기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힌 협력업체도 있다.

노조 관계자는 “도급기사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조에 (국선인입선로 공사인) 전신주 작업은 조합원을 시키겠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불법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내통신선로 공사는 도급기사, 국선인입선로 공사는 협력업체에 고용된 기사로 업무를 분류해 불법을 피하겠다는 얘기다.

노동계와 정치권은 이 같은 방식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여론의 관심이 가라앉으면 협력업체들이 이전처럼 도급기사에게 불법 공사를 맡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에서 도급기사를 직접고용하는 조치를 취해 고무적”이라면서도 “일부 통신사 협력업체는 법적 쟁점만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지자체가 조속하게 실태조사를 하고 시정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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