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 판단을 근거로 지난 21일부터 파업 참가자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홍순만 공사 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코레일 서울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불법파업 주동자를 시작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본격적인 징계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철도노조는 이에 대해 “정부와 철도공사가 아직도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어 같은날 반박자료를 내고 정부의 불법파업 규정 논리가 잘못됐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철도파업 불법성 여부는 파업 초기부터 논란이 심했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의 파업을 정부가 임금·근로조건에 관한 이익분쟁이 아닌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하는 권리분쟁으로 규정해 불법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정도였다.

취업규칙 변경하면 모두 권리분쟁? 단체교섭 형해화

정부는 철도노조 파업을 권리분쟁이라고 주장하며 불법으로 몰았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관계부처 합동기자회견에서 “철도노조는 개정된 보수규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며 “그 효력을 다투는 사법적 판단에 관한 사항(권리분쟁)으로 목적상 정당성이 결여된 불법파업”이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코레일이 올해 5월 이사회를 열어 취업규칙에 해당하는 보수규정을 개정,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고 노조 파업은 이사회 의결 철회를 목표로 하고 있어 권리분쟁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이익분쟁만을 쟁의행위 대상으로 보고 있다.

노조를 포함한 노동계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는 조합원의 임금과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에 노조가 이를 대상으로 쟁의행위를 하는 것은 헌법과 노조법이 보장한 노동자(노조)의 정당한 권리라는 설명이다.

노조법(제2조5항)은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한다.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는 명백한 임금·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는 것이 노동계 주장이다.

더군다나 정부 논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임금·단체교섭과 노조의 쟁의행위 자체가 형해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게 뻔하다. 사측이 단체교섭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노조는 교섭이나 파업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임금체계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당연히 노사가 논의하고 합의해 결정해야 할 단체교섭 대상”이라며 “정부 논리대로라면 앞으로 회사는 단체교섭 없이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개정한 다음 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가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성과연봉제 반대파업은 합법”

법원은 성과연봉제가 단체교섭 대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2012년 1월 알리안츠생명노조 파업 판결에서 “성과급제가 평가·승진제도 같은 인사 전반에 관한 것을 포함하더라도 근로자의 임금체계를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가져온다”며 “노조 파업은 회사의 일방적인 성과급제 실시에 반발해 이뤄진 것으로 목적 및 절차에 있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성과연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변경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파업은 목적상 정당해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다.

철도노조는 5월 사측 요구로 성과연봉제라는 단일 의제를 두고 두 차례에 걸쳐 보충교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쟁의조정까지 받았다. 사측과 중앙노동위 모두 성과연봉제를 단체교섭 대상, 즉 이익분쟁 사안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특히 중앙노동위의 조정은 철도노조 불법파업 논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이슈다. 중앙노동위는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해 쟁의조정을 신청하자 6월29일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과 관련해 개정한 보수규정의 효력 유무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에 따른다”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해당 조정안은 노조 거부로 성립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조정안 내용을 근거로 들며 “중앙노동위가 사법적 판단을 받으라고 적시한 것 자체가 권리분쟁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와 형식을 간과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노동위는 이익분쟁 사안에 대해서는 조정을, 권리분쟁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지도를 한다. 임금·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절충점을 찾도록 ‘조정’을 하지만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소송으로 법원 판결을 묻도록 ‘지도’를 하는 것이다. 노조는 “중앙노동위가 성과연봉제를 권리분쟁 사안으로 해석했다면 행정지도를 해야 했다”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이익분쟁으로 봤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기권 장관·김영훈 위원장, 환노위 국감 공방

노동부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 국감에서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권리분쟁 사안은 행정지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철도파업에서 절차적 잘못은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다만 “법원이 목적상 불법이라고 판결한 2009년과 2013년 철도파업에 대해서도 노동위는 행정지도가 아닌 조정을 하는 등 사안별로 달리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파업 목적상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에 대해 “2009년과 2013년 파업은 (이익분쟁과 권리분쟁을 포함한) 여러 사안을 두고 파업에 들어갔기에 노동위에서 조정을 한 것이고 올해 또한 성과연봉제라는 단일 안건에 대해 조정을 했다”고 반박했다. 중앙노동위 조정절차는 모두 이익분쟁 사안에 대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헌법과 노조법조차 무시하고 철도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가는 장관 발언에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수많은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해 파업을 벌였는데, 철도노조 파업만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철도노조를 탄압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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