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가 “연내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연일 발표하고 있다. 발표문 어디에도 "일방적으로 하지 않는다"거나 "노사와 협의하겠다"는 표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발표를 좇아 언론들은 “노사정 합의에 따라 정부가 추진계획을 밝혔다”는 보도를 쏟아 내고 있다.
노동부로서는 노사정 합의를 제대로 알리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나. 수십 쪽에 이르는 방대한 합의 내용을 광고하는 데에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도 요즘 틈틈이 그 내용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노사정 합의의 진의를 왜곡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정부는 합의 내용이 자신의 의도대로 해석되길 바라는 게 아닐까. 보수언론에서도 비판하듯이 이번 합의를 “제대로 된 최종 합의”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입법으로 구체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이 종료가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합의 수준과 이후 경과를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나름의 일정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 같은 노동부의 태도는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합의 파기다. 그렇다면 당사자의 한 축인 한국노총으로서도 더 이상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한 행위에 대해 노동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노사정 차원에서도 노동부에 엄중 경고하고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져야 한다.
노사정 합의 당일까지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해석 변경과 일반해고는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노동자 안정을 위협하는 두 제도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한국노총의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부와 사용자측의 "우선 논의는 해 보자"는 의견을 받아들인 정도다.
그래서 노사정 합의문에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협의하겠다”고 명시한 것이다. 만약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약속’위반이다. 계약 파기에 대한 법률효과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합의 이전으로 되돌리고 파기로 인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기억해 보면 노동부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대해 “노동자들을 쉬운 해고로 내몰려는 의도가 아니다”고 강조했었다.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사용자의 임의적 평가에 내몰리는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그런 말들은 간데없다. 과연 노동부가 의도하는 방식과 내용에 동의하는 노동자가 있을까.
이번 합의가 진정 개혁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노동부는 합의 문구에도 반하는 가이드라인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 외 60여개 합의 내용 중에도 입법 이전에 노동부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 전체 노동자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사업을 해야 한다.
출퇴근재해는 지금이라도 행정입법으로 실행할 수 있다.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 또한 자주 인용하는 것처럼 “판례에 따라”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어떨까. 계약기간을 쪼개거나 기간을 단절시켜 기간제법을 위반하는 사업주를 엄벌해야 한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단속은 또 어떤가. 이 모두가 정부가 외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핵심 아니던가.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에도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행정지도에 힘쓰는 게 지금으로선 급선무다.
사실 노동현장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당장 민주노총에서는 연일 총파업 결의대회와 집회를 하고 있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어렵게 통과되긴 했지만 한국노총 내에서도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세부 이행 결과까지 동의를 유보한 실정이다.
협상 당사자로서 노동현장으로부터의 비판을 그저 노동부의 합의 위반과 일방통행으로만 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합의 내용을 분명히 알리고 혹시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솔직히 고백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오류가 있다면 앞으로 진행될 본격적인 제도설계 과정에서는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볼 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