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회장 하영구)가 소득상위 10% 직원 임금동결안을 내놓으면서 금융 노사 임금교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소득상위 10% 이상 임직원은 자율적으로 임금인상을 자제하기로 한 노사정 합의정신을 반영했다는 게 사용자측의 설명인데,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는 "노사 자율협상의 원칙을 저버린 후안무치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노사정 합의정신" vs "정부 눈치보기"=20일 노조에 따르면 사용자측은 지난 17일 열린 8차 산별중앙교섭에서 "노사정 합의정신에 의거해 소득상위 10%는 임금동결, 이하 직원은 1% 임금인상 후 0.5% 반납"을 요구했다. 노조의 또 다른 핵심 요구안인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내년에 논의하자"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제안은 대표단교섭을 정회한 사이 하영구 회장이 김문호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7차례 대표단교섭과 5차례 대대표교섭, 13차례 실무자교섭 끝에 나온 사용자측의 답변이 '임금동결 및 반납'으로 귀결되자 노조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노사정 합의문에는 '임금동결'이 아닌 '임금인상 자제'로 명시돼 있는데도, 사용자측이 정부 눈치를 보며 합의문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교섭 하루 전인 16일 하영구 회장 주선으로 사용자측 교섭위원들과 시중은행장(이광구 우리은행장만 참석) 간 비공개 회동에서 노사정 합의문상 '소득상위 10% 이상 임금인상 자제' 문구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지난 교섭에서 하 회장이 임금동결을 얘기했다가 철회했던 만큼 "또다시 임금동결을 얘기하는 건 어렵지 않겠냐"부터 "임금인상 자제가 동결을 뜻하는 것인지, 말 그대로 자제를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BH(청와대)의 의중이 뭐냐" 같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결국 △반납을 전제로 임금인상을 하되 △노사정 합의문의 상위 10% 임금인상 자제는 어떤 식으로는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종합해 하 회장이 최종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나기상 노조 교육문화홍보본부장은 "최근 10년 동안 금융 노사가 공공기관 임금가이드라인 이상으로 합의를 해 본 적이 없다"며 "물가상승률에 비하면 터무니없었는데도 정부 정책방향에 맞춰 임금인상을 자제해 왔다"고 사용자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조남홍 사용자협의회 노사협력처장은 "일단 (사용자측에서는) 처음 제시한 안이니까 앞으로 교섭의 여지가 있지 않겠냐"며 조율 가능성을 열어 놨다.
상위 10%가 어디까지인지도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사용자측은 올해 3월까지 국세청에 신고된 순수근로소득 기준으로 소득상위 10%를 연봉 6천700만원 이상 받는 노동자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 근로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소득상위 10%는 연봉 9천198만원 이상이다. 어떤 자료를 근거로 삼느냐에 따라 '상위 10%' 해당자들의 규모가 달라진다.
◇"임금피크제 논의 불가" vs "임금피크제 손질"=정년연장과 연동된 임금피크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사용자측은 아예 논의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노조는 최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은행들이 임금피크제 적용시점을 만 57세 이상으로 정한 만큼 "임금피크제를 도입·시행 중인 은행들의 임금피크제 적용시점을 개선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용자측은 "임금피크제는 각 은행별로 합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산별중앙교섭에서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용자측 관계자는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은행마다 3차례나 의견수렴을 했는데도 임금피크제 논의 안건에 대해 단 한 명도 오케이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조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 11층 하영구 회장 집무실 앞에서 '불성실교섭 사용자 규탄대회'를 개최한다. 노조는 지난 16일부터 은행연합회관에서 규탄집회를 이어 가고 있다.
노조는 "노사정 합의는 정부가 노동계의 팔을 비틀어 만들어 낸 굴욕적인 결과물인 만큼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측이 노사정 합의를 핑계로 임금협상을 파행시키는 작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