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지난 13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에 합의하면서 각 사업장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완화와 연공서열 중심 급여체계 개편 압박이 전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공서열, 즉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은 정부·재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보면 노사정은 장년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세대 간 상생고용 체제 구축을 위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임금체계 개편방향은 직무·숙련 등을 기준으로 노사 자율로 추진하기로 했다. 노사정은 이와 함께 합의문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하고, 이를 준수한다"고 명시했다.

정부와 재계는 그동안 청년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임금피크제의 합리적 시행을 위해서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한 지침을 판례와 제도에 맞게 수정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정부·재계의 목적은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직무·성과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계는 수년간 임금체계 개편을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내년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을 위해서는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급여가 상승하는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재계를 거들었다. 지난해 3월에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뼈대로 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이와 관련해 이번 노사정 합의로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노조 동의 없이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공연맹 관계자는 "처음에는 임금피크제 문제만 얘기하더니 합의문에는 임금체계 개편 내용까지 담겼다"며 "공공기관에서 얘기하는 성과연봉제·성과직무급제를 노조 동의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노사정이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고 했지만 직무와 성과를 결정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이라며 "직무·성과급제는 임금의 개별화로 인해 임금 하향평준화를 야기하고 노동자 통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변경된 세종호텔의 정규직 연봉제 규정을 보면 노동자 개인에 대한 연봉조정률은 '대표이사의 결정에 의해' 최대 30%까지 삭감될 수 있다. 현장에서 갈등도 예상된다. 실제 올해 3월 직무성과급제인 신인사제도를 도입한 이마트에서는 저임금 논란과 절차상 하자 문제로 이마트노조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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