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노동개혁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왜 개혁인지, 개혁의 대상과 주체가 무엇이고 누군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없었다. 개혁을 하면 청년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그조차도 억지춘향으로 강변하는 수준이다. 광복 70년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노동개혁은 이제 우리 사회 미래에 대한 화두이자 과제가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소외됐다. 당장 노동자들의 개혁 동참을 촉구하는 분위기지만 정작 개혁의 목적도, 개혁의 과정에서도 노동자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단언컨대 그간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이거나 또는 노동자가 주체가 된 개혁은 없었다. 자본을 위한, 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개혁(?)만 있었을 뿐이다.
전력산업이 그랬다. 크게 보면 세 번의 개혁이 이뤄졌지만 노동자 참여는커녕 노동자 의견조차 배제된 개혁만이 있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전시동원체제에서 전력산업 통합과 5·16 쿠데타 직후의 전력 3사 통합, 그리고 필자가 노조활동을 하고 있던 2001년 한국전력의 발전부문 분할과 민영화를 내세운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그랬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3년,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시 총동원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조선전력관리령을 시행했다. 발전과 송전사업을 하나의 사업체로 통합하고 배전사업을 광역단위로 하는 전력산업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전쟁물자 생산에 효율성을 기하고자 했다. 즉 우리나라를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생산기지화하기 위해 ‘개혁’이란 이름을 내세운 조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전력산업 체제가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남한에서는 발·송전을 담당한 조선전업과 지역별 배전사업을 담당한 경성전기·남선전기 등 이른바 전력 3사 체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분단과 함께 48년 북한의 5·14 단전조치는 전체 발전량의 10% 정도에 불과했던 남한의 전력사정을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았고, 그 때문에 전력산업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의 개혁으로 추진됐다. 발·송전 사업을 담당한 조선전업의 2대 사장으로 취임한 서민호는 48년 12월 취임하자마자 불합리한 요소를 개혁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무려 1천여명의 직원들을 해고했다. 대규모 해고에 따른 노동자들의 반발과 사회적 비난여론이 들끓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던 서 사장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가 조선전업노조 출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의 요구에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에 열을 올렸던 것은 그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전력 3사 통합 시도는 조선전업 2대 사장 때 있었다. 불합리한 요소를 개혁하겠다는 명분으로 한 전력 3사 통합안을 국회와 정부·언론사 등에 배포하면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통합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지만, 전시에 전력 3사 및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전기사업체운영위원회’를 조직해 당면한 전력산업 운영을 개선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 과제로 전력 3사의 국영화를 제안하게 된다. 자유당 정권의 정치적 혼란에 따라 전력 3사 통합은 57년 전기사업을 발전과 배전·운수 등 세 부분으로 분류하고 불하(민영화)한다는 원칙을 결정하고 경전의 운수사업 부문 매각부터 단행했지만 민간주주와 노동자의 반발, 그리고 자본의 취약성으로 인해 무산됐다. 결국 4·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에 의해 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법안이 처리되면서 3사 통합은 본격화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합리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3사 통합을 반대하며 시위와 실질적인 파업도 감행했지만 노조의 요구는 묵살되고 3사 통합 법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으며, 5·16 쿠데타 정권에 의해 61년 7월1일 전력 3사가 통합해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40년 뒤인 2001년 4월 한전의 발전과 배전부문을 분할해 경쟁체제를 구축한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에 따라 발전이 분할됐고 그 또한 노동자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진행됐으니 최소한 노동자 요구를 제대로 반영한 개혁은 없었던 것이다.
작금의 노동개혁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을 개혁 대상으로 놓는 순간 그것은 노동자·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한다. 개혁의 목적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청년실업 문제,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고용유연성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다. 자본의 문제인데도 노동의 문제로 본질을 왜곡하고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말하는 개혁에서 절대 노동자를 위한 개혁은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