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봐라. 강요하는 건 아니다."
말은 강요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압박을 받았다. 두 번째 면담이었다.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는 배종현(가명)씨에게 A부장은 30분 동안 똑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심사숙고해라."
희망퇴직 신청을 생각해 보라는 A부장의 설득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배씨는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계속 면담이 이어졌다"며 "지금 신청하지 않으면 영업점이나 다른 곳으로 멀리 나갈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창립 이래 첫 희망퇴직을 단행해 406명을 구조조정한 메리츠화재에서 벌어진 일이다. 메리츠화재는 올해 2월26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로 보상업무 담당 직원들에게 희망퇴직 압박이 가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 신청 안 하면 멀리 내보낸다"
9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메리츠화재 희망퇴직 면담 녹취를 보면 최근 증권·생명보험·손해보험 회사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희망퇴직이 왜 '절망퇴직'으로 불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A부장은 여러 차례 "강요는 아니다", "전적으로 당신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희망퇴직을 안 하면 발령이 날 수 있다"라든가 "(발령 후) 적응을 못하면 (희망퇴직) 기회도 놓치고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지 않겠냐"고 압력을 가했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뒤따를 수 있다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배씨도 단호하게 맞섰다. "발령이 나더라도 어디 가서든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에 A부장은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A부장은 희망퇴직 기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배씨가 "기준이 뭐냐"고 묻자 그는 "오랫동안 성과가 안 좋거나 조직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여러 가지를 본다. (당신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들은 게 있다"고 얼버무렸다. 배씨는 다시 한 번 "나가지 않겠다"고 못 박았지만 비슷한 내용의 면담을 한 차례 더 해야 했다.
희망퇴직을 하라고 압박·강요를 받은 건 배씨만이 아니다. 주정식(가명)씨는 "직접적으로 '너 나가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회사측은) 피를 말리듯 집요했다"고 털어놓았다.
주씨에 따르면 희망퇴직 신청기간에 회사는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관련 면담을 한 차례 진행했다. 일종의 설명회 자리였다. 그런데 이날 면담 이후 주씨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부서장 면담을 해야 했다. 두 번째 면담 뒤에도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더니 곧바로 세 번째 면담이 이어졌다.
희망퇴직 거부하자 원거리 보수교육
주씨는 "희망자에 한해 희망퇴직을 받는 게 아니었다"며 "압박에 못 견딘 사람들은 두 번째 면담에서 손 털고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버틴 사람들에게는 희망퇴직 신청을 자정까지 연장해 줄 테니 신청서를 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주씨의 부서장은 신청 마감 당일 "업무를 안 줄 테니 집에 가서 부인과 상의하고 오라"고 했다. 외근 중이었던 주씨는 그날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김영준(가명)씨도 희망퇴직 신청 마지막날까지 부서장 전화에 시달렸다. 김씨는 "그만 좀 하시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전화기를 꺼 버렸다.
희망퇴직 신청 불응자들에게는 제재가 들어왔다. A부장이 예고한 바로 그 불이익이었다. 마감일 다음날인 지난달 10일 배씨와 주씨·김씨를 비롯한 희망퇴직 거부자 30여명에게 "3월11일부터 보수교육을 받으라"는 내용의 협조전이 날아들었다. 원거리 교육인 탓에 그들은 한 달째 여관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김씨는 "(희망퇴직자) 머릿수 채우는 게 누구에게는 실적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그동안 잘 써먹더니 이제 필요 없어지니까 헌신짝 버리듯 하는 회사 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씁쓸해했다.
메리츠화재는 그러나 희망퇴직 과정에 강압이나 압력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메리츠화재 인사총무부 관계자는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희망퇴직 신청을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메리츠화재 희망퇴직 면담 녹취 입수해 들어 보니] "신청 안 하면 발령, 적응 못하면 더 큰 타격" 발언 반복
노동자 "누구에게는 실적, 당사자에겐 생존" … 메리츠화재 "강요 없었다" 주장
- 기자명 배혜정
- 입력 2015.04.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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