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패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힘겨루기를 했던 공공부문 노동계 얘기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6일 현재 38개 중점관리 공공기관 중 부산대병원·한전기술·철도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공공기관들이 정상화 관련 노사합의를 마무리했다. 합의율이 92%를 넘는다. 중점 외 점검기관까지 포함하면 합의기관은 더욱 많아진다.

올해 공공부문 노동계는 공공노련·공공연맹·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 5개 조직에 더해 양대 노총 내셔널센터까지 합류한 거대 연대체를 만들어 정부에 맞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됐다. 공공기관이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되고 싶었던 양대 노총 공공부문 공대위. 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판 커진 공공기관노조 투쟁

"초기에는 나름 일사불란했다."

공대위 실무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동안 공공기관 노동계의 연대투쟁 패턴은, 노동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기획재정부 앞에 모여 대차게 집회 한 번 하고, 날 풀리면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정부 예산 편성시기에 모여 집회나 기자회견 몇 번 하고, 이듬해 봄 공공기관 경영평가 즈음에는 투쟁을 접는 양상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이전 정부들의 얼차려 수준을 넘어서면서 노동계의 분노와 대응 또한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정부가 지난해 12월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한 그날, 공대위는 '전국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를 열고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거부를 결의했다. 올해 2월27일 304개 공공기관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정상화 대책 관련 모든 노사교섭 거부 △정상화 대책 관련 교섭권 상급단체 위임 △경영평가 거부를 선언했다.

노정 대결 국면이 펼쳐진 것이다. 여기에 양대 노총 내셔널센터가 공대위에 참여하면서 판을 키웠다. 노동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긴장한 듯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작심한 듯 공대위를 맹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노조가 연대해 정상화 개혁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은 심히 우려되고 국민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변화의 길에 저항과 연대·시위 등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대위 활동) 초창기에는 정부도 긴장을 했던 게 사실"이라며 "당시 노동부는 '노동계 동향이 심상치 않으니 너무 심하게 압박하면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고, 기재부는 '결국 노동계가 손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식의 보고서를 냈는데 BH(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노동부 것을 더 쳐줬다"고 귀띔했다.

경영평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노조

하지만 위기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역시 경영평가가 문제였다. 노조 대표자들이 거부선언은 했지만, 막상 경영평가 시기가 되자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가 정상화 대책 불이행시 경영평가 불이익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경영평가 불이익은 곧 성과급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대위는 대표자회의에서 "경영평가 실사를 반대하는 행동을 벌이자"고 결정했지만 경영평가 반대 플래카드 하나 제대로 걸지 못한 현장이 적지 않았다.

당시 38개 중점관리기관노조 대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가 먼저 경영평가 성과급 포기선언을 하자"거나 "복리후생의 일부를 먼저 내려놓자"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공론화되지는 못했다. "(성과급 포기를) 고민해 보자"는 의견보다 "조합원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성과급도 임금의 일부인데 왜 포기하냐"는 의견이 많았다. 침묵한 대표자들은 더 많았다.

공대위 관계자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팔 하나 잘라 주고 나면 저쪽(정부)에서 나머지 팔·다리도 내놓으라고 할 것이라는 반대의견에 묻혔다"며 "만약 '우리도 내려놓을 테니 대신 공공성은 지켜 달라'고 얘기했다면 지금보다는 덜 빼앗겼을 것"이라고 되짚었다.

이승헌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정부가 경영평가를 정상화 대책의 핵심 이행수단으로 삼은 상황에서 노동계가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집회나 결의대회가 아니라 경영평가 성과급을 거부하는 것이었다"며 "눈앞의 작은 이익(성과급)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부문 노사관계 전문가는 "공기업 길들이기와 통제수단이 된 경영평가 성과급을 과감히 거부하는 발상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며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이끌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당근과 채찍, 내부갈등 고조시켜

노조가 경영평가를 거부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한꺼번에 내밀었다. 올해 4월29일 중점관리기관 38곳과 중점외 점검기관 16곳에 대한 중간평가 방식을 확정한 것이다. 중점관리기관 중 우수기관에는 내부평가급 30%를 추가로 지급하되, 정상화 계획 중 한 건이라도 합의하지 않을 경우 내년 임금을 동결하겠다는 게 중간평가의 골자였다. 본격적인 줄세우기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자 공대위 내부에서 진통이 시작됐다. 단위 사업장별로 사측의 회유·압박·읍소는 기본이고, 조합원들이 노조에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노조 대표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공대위는 뭐하고 있냐"는 불만이 극대화됐다.

그런 가운데 5월 수자원공사가 일부 조항(퇴직금 산정 기준)을 제외한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고, 대형 공기업을 중심으로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송민우 공공노련 정책실장은 "수자원공사의 합의가 뼈아팠다"며 "그때부터 (노조 간 공조가) 크게 흔들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승헌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5~6월 들어 공대위 내부에서 서로서로 어떤 기관들이 합의날짜를 받아 놨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며 "차라리 질서정연하게 퇴각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복리후생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더 이상 이걸로 시달리지 말고, 동시에 합의해 훗날 기능조정에 대비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동의하지 않는 조직이 있어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공대위 차원의 총파업은 지리멸렬했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6월까지 쟁의권을 확보한 곳이 전체 공공기관의 30%도 안 됐다"며 "준비부족을 이유로 파업일정이 계속 뒤로 밀리면서 정부가 공대위를 얕잡아 봤고, 공대위 내부에서도 갈등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일련의 투쟁 과정에서 공대위 조직끼리 긴장관계가 형성된 것은 내부의 복합적인 구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 기본적인 노선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산별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와 그렇지 않은 나머지 연맹 간의 입장차, 교섭이냐 투쟁이냐에 대한 입장차, 정상화 대책 수용에 대한 각 기관별 온도차까지 얽히고설켰다.

이경호 공공노련 사무처장은 "조직마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온도차가 있다 보니 대응방식에서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교섭이냐 투쟁이냐를 두고도 입장이 갈렸다. "노사정위에 복귀해 노정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쪽(공공노련)과 "투쟁을 해야 교섭력도 생긴다"는 쪽(금융노조·공공운수노조)이 나뉘면서 정부를 향한 단일한 대응태세를 갖추지 못했다. 각자가 자기조직의 처지와 상황만 앞세우면서 8월 말 9월 초 '김빠진 공대위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공대위 총파업에 참여한 주요 조직은 금융노조와 보건의료노조 국립대병원지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정도다. 송시영 금융노조 정책국장은 "9월3일 금융노조의 하루 총파업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정부 관계자들이 대화를 하자고 연락을 해 왔다"며 "공대위 전체가 강력한 총파업 투쟁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프레임 짜야 산다

공대위가 1년 가까이 엇박자만 냈다고 볼 수는 없다. 경영평가의 '기역'자만 나와도 속절없이 무너졌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전례없이 긴 기간 동안 버틴 것은 누가 뭐래도 공동투쟁의 성과다.

하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복리후생을 내주는 대신 사업장의 해묵은 현안을 해결하는, 이른바 '이면합의 논란'이 알음알음 떠돌면서 공대위 조직 간 불신을 부추겼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합의 과정에서 비공개 협상과 양보교섭이 횡행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이 무너졌고 노사관계가 왜곡됐다"며 "조직 간 신뢰가 무너진 부분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송민우 공공노련 정책실장은 "단사별로 '지킬 건 지켰다', '선방했다'고 평가하는 곳도 있는데 과연 무엇을 지킨 건지 회의가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김규남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은 "사업장마다 상황이 달라 이미 결정된 공대위 투쟁을 집행하지 못한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향후 공공기관 기능조정과 민영화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공대위 활동의 성과를 이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대위의 앞날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효용가치가 다했다는 혹평도 있고, 다음 투쟁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에 꾸준히 모여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복리후생이나 임금·근로조건에 천착한 활동으로는 앞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1년 내내 복리후생에만 매몰돼 있다 보니 정작 공공기관의 근본적인 문제인 지배구조 문제나 낙하산, 경영평가 이슈는 사라졌고 국민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며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대위는 제도적인 이슈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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