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종범이는 진짜로 일만 했어요. 신혼여행도 안 가고 지난 추석연휴도 3일 내내 일했어요.”(고 최종범씨 동료 노동주씨)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 천안분회 조합원 고 최종범(32)씨의 빈소가 천안시 삼룡동 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3일 새벽, 곧 돌을 맞는 그의 딸이 빈소 앞으로 기어가 국화꽃다발을 헝클었다. 아기는 아빠의 죽음을 모른다. 뇌경색으로 입원 중인 어머니도 막내아들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그가 소속된 천안분회 동료들이 이틀째 밤새 장례식장을 지키며 손님들을 맞았다.

“(자살할 줄) 몰랐죠. 힘들다는 말은 다들 곧잘 했으니까요. 원체 점심도 거르고 주말에도 일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라….”

자리를 정리하던 동료 이학빈(37)씨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고인이 남긴 ‘배고프고 힘들다’는 말은 공감이 가요. 다들 그렇다고 얘기할 거예요.”

저임금·감정노동·실적 달성·표적감사

삼성전자서비스 기사의 '4중고'


"최씨가 월평균 410만원을 받았다"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이제근 삼성TSP 사장의 말에 동료들은 혀를 찼다. 최씨의 초등학교 동창인 노동주(33)씨는 “여긴 열심히 일할수록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나가는 곳”이라고 했다.

"성수기에 허리 부서지게 일해서 밤 9시까지 하루 15건씩 뛰면 월 300만~400만원은 나와요. 그런데 거기서 기름값·통신비·밥값 해서 100만원은 기본으로 나갑니다. 더 뛸수록 유지비가 더 나가잖아요. 비수기엔 월 100만원 벌까 말까 하고.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벌이가 결코 나아질 수 없는 거죠."

노씨는 특히 "회사의 실적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본사가 센터별로 실적 등수를 매기는데, 등수 낮은 곳은 그날 밤 팀별로 대책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집합해서 사유서를 써야 합니다. 요즘은 고객 방문시간 15분 전후로 도착해서 인증샷까지 찍어야 해요.”

실적을 위해서는 욕도 먹어야 했다. 올해 7월 한 고객이 “어디 기사 따위가 고객 앞에서 허리에 손을 올리느냐”, “술 먹었느냐”며 최씨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는 평소 받은 서비스교육대로 사과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해당 고객은 고객불만(VOC)을 접수했다. 이 사장은 최씨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를 설립되자 최씨는 갑작스런 감사를 받았다. 김기수 천안분회장은 표적감사 의혹을 제기했다.

“3년 전 자료를 갖고 와서 그때 왜 이 자재를 썼는지 설명하라고 했어요. 그걸 누가 기억합니까. 당연히 해명이 안 되죠. 그럼 사고금액이 커져요.”

사고금액이 20만원을 넘으면 기사들은 퇴직 처분된다. 김씨는 “최씨가 표적감사로 많이 힘들어했던 것으로 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최씨에게 노조는 희망이었다. 노조를 만들고 그는 처음으로 가족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며 사진을 찍어 자랑하기도 했다. 노씨는 "종범이가 힘들었던 만큼 노조에 기대가 컸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부당한 일이 안 고쳐지니까 많이 힘들어했다"고 귀띔했다.

"그 친구가 많이 울었어요. 겉으로는 앞장서도 속은 참 여린 놈이거든요."

또 다른 동료 이민재(38)씨는 "무엇보다 회사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힘든 거 알아 달라는 거 아닙니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테니까, 적어도 쥐어짜지 말고 부당한 행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최소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 줘야지요. 그게 회사가 하는 일 아닙니까.”

지난 2일 저녁 7시께 금속노조와 지회 조합원 150여명은 고인이 일했던 삼성전자서비스 두정센터 앞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고 분향소를 설치했다. 두정센터와 천안센터 모두 삼성TSP가 운영한다. 안산서비스센터 소속 기사 장홍석(45)씨가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일하느라 허리가 아프다던 고인의 말을 기억했다.

“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그게 가슴이 아파요.”

센터 벽면에 걸린 ‘고객만족도 1위, 삼성전자 창립 44주년 전 국민 감사대축제’라 쓰인 현수막이 천막 위에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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