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산업인력공단 회의실에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구간 재조정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국노총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가 시행 3년 만인 다음달 재조정된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위원장 김동원)가 지난 14일 타임오프 고시한도 재조정안을 발표하자, 노동계는 이에 따른 전임자수 변화 여부를 확인하느라 분주한 주말을 보냈다.

타임오프 한도 재조정을 두고 노사 간 희비가 엇갈린 것은 물론 노조 내에서도 온도차가 컸다. 노조의 분포가 집중된 구간인 조합원수 50~999인 사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데다, 전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된 탓이다. 전국 분포 사업장이더라도 전임자가 1명(2천시간) 이상 늘려면 조합원수가 최소 1천명 이상은 돼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타임오프 구간이 변동되는 조합원수 50인 미만 사업장은 2천600곳이며, 전국 분포 가중치가 적용되는 사업장은 111곳"이라고 설명했다.

◇비정규직·택시 등 영세사업장 전임 가능=타임오프 한도 재조정에 따라 조합원수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타임오프 한도가 2천시간으로 늘어난다. 기존에는 조합원 50인 미만 사업장은 0.5명에 해당하는 파트타임 전임자를, 조합원 50~99인 사업장은 1명의 풀타임 전임자를 둘 수 있었다. 재조정된 타임오프 한도에 따르면 조합원 1~99인 사업장은 일괄적으로 풀타임 전임자 1명을 둘 수 있다.

근면위 실태조사 결과 그동안 50인 미만 사업장 노조가 타격을 입었다. 타임오프 제도 시행 전까지 0.6명이던 평균 전임자수가 2010년 7월 이후 0.3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앞으로 택시·비정규직 등 영세사업장에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노동조건이 개선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제는 사용자의 태도다. 노조가 전임자를 요구해도 사용자가 외면하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임오프 고시가 개정되더라도 50인 미만 사업장의 전임자 유무는 결국 노조의 협상력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근면위는 이들 노조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큰둥한 대기업노조=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의 경우 재조정된 타임오프 한도에 따라 전임자가 1.9명씩 늘어난다. 현대차지부는 울산·충남·전북·서울·경기 등 5개 광역자치단체에 4만5천명의 조합원이 있다. 전체 조합원 대비 5% 이상이 지역에 분포돼 있다. 현재 19명인 타임오프 면제자의 10%가 할증되면 1.9명이 늘어나게 된다. 경기도(소하리·화성공장)와 광주에 전체 조합원의 5% 이상이 분포해 있는 기아차지부 역시 19명에서 1.9명 증가한다.

이와 관련해 현대·기아차지부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두 지부는 2010~2011년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인상된 수당을 전임자 확보를 위한 재정으로 사용했다. 현대차지부는 타임오프 면제자 19명을 포함해 114명을, 기아차지부는 85명을 확보했다. 이런 상황에서 타임오프 한도가 2명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는 “타임오프를 실시하면서 전임자가 20여명 줄었다”며 “노사자율로 전임자를 결정해 기존 전임자를 회복하지 않는 이상 1.9명 증가하는 것으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아차지부 관계자는 “2명 가까이 타임오프 면제자가 늘어난다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허탈한 은행권노조=전국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어 노조활동에 타격이 컸던 은행권노조는 "전국 지점을 관리하려면 최소 4~5명의 전임자가 더 필요한데 늘어난 건 겨우 1명 안팎"이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유주선 신한은행지부 위원장은 "정확한 수치를 기반으로 타임오프 한도를 재조정해야 하는데 너무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금융노조는 산하 36개 지부 중 18곳에서 전국 분포 가중치를 적용받아 전임자가 15.4명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노조당 평균 0.85명 수준이다.

◇30% 최대 가중치 적용 사업장 드물어=
조합원수 2만4천757명인 KT노조는 전임자수가 기존 18명에서 3.6명(2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장복 노조 조직실장은 "전국에 12개 지방본부가 있다 보니 그동안 전임자수가 턱없이 부족했다"며 "타임오프 한도 재조정으로 노조 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정노조는 2만9천여명의 조합원의 5% 이상인 광역단체가 8곳이다. 20%의 가중치가 적용된다. 현재 18명인 유급 전임자(3만6천시간)가 3.6명(7천200시간) 늘어난다.

한국노총은 "1천인 이상 전국 분포 사업장에 가중치가 부여돼 노조활동에 도움을 준 것은 다소나마 진전"이라며 "영세사업장 노조를 고려한 아쉽지만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논평했다. 반면에 민주노총은 "타임오프의 본질적 성격을 바꾸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경영계는 "근면위의 과도한 결정에 깊은 유감"이라며 "타임오프는 노조의 유지·관리업무 수행을 위해 유급으로 인정할 수 있는 최대 상한선이므로 개별 기업 실정에 맞춰 면제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미영·김학태·윤자은 기자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는 어떻게?

타임오프 적용대상서 제외 … 타임오프 매뉴얼 변경 불가피


"그럼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는 어떻게 되나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위원장 김동원 고려대 교수)가 지난 14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고시한도 재조정 결과를 발표한 후 노조 현장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이다.

김동원 위원장은 이날 오전 과천 고용노동부 브리핑에서 "타임오프 도입 이후 상급단체 활동이 위축돼 앞으로 상급단체 파견도 타임오프에 포함되도록 공익위원들이 정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일단 타임오프 고시한도 재조정 과정에서는 빠졌다는 말이다.

애초에 상급단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는 타임오프를 둘러싼 노사정 대결구도에서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타임오프 고시한도 재조정 과정에서는 논의 초반부터 제외돼 있었다. 타임오프 고시는 조합원수에 따라 타임오프 구간을 정한 것에 불과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를 담기에 틀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파견전임자 임금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근면위 공익위원들이 상급단체 파견활동도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되도록 정부에 건의한 만큼 노동부 타임오프 매뉴얼 변경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상급단체 파견전임자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노동부가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을 통해 “사업장과 무관한 순수한 상급단체 활동은 타임오프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타임오프 제도 시행 이후 상급단체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1년 사업장 45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노총의 경우 단위 사업장당 평균 0.07명이던 상급단체 파견전임자가 타임오프 시행 이후 0.06명으로 14.3% 축소됐다. 민주노총 사업장은 0.32명에서 0.07명으로 무려 78.1%나 줄어들었다.

노동부가 근면위 공익위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타임오프 매뉴얼을 변경한다 해도 상급단체 활동이 활기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위노조에서 타임오프 한도가 부족해 전임자수를 줄이는 마당에 상급단체 파견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현재 단위노조 전임과 겸직하는 경우 상급단체 파견활동을 유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드물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타임오프 고시한도 재조정으로 금융·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타임오프 한도가 늘어나는 만큼 부족하지만 파견전임자 활동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파견전임자 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파견전임자에게는 기존 고시와는 별도의 타임오프를 적용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이달 초 발의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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