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일 에스제이엠(SJM) 안산공장 정문에 직장폐쇄 공고문이 붙어있다. 철문 너머 컨텍터스(CONTACTUS) 소속 용역경비들이 줄지어 섰다.정기훈 기자

발레오만도·KEC·유성기업·SJM 등 지난 수년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은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회자되는 말이 있다. 이른바 '자본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다. 자본은 컨설팅업체들이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고, 유관기관에 로비를 한다.

노무컨설팅 업계에서 대표적인 곳이 창조컨설팅이다. 한국경총에서 10여년 이상 근무한 심종두 공인노무사가 대표를 맡고 있다. 창조컨설팅은 발레오만도와 유성기업에서 컨설팅을 진행했다. 지난달 초 사회적 뭇매를 맞고 진퇴양난에 빠진 SJM 사측도 창조컨설팅을 찾아가 자문을 의뢰했다. 심종두 노무사는 “SJM이 문의를 하긴 했지만 자문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파괴 현장마다 등장하는 이름

창조컨설팅은 2004년 170여일간 장기파업을 겪은 풀무원과 2006년 영남대 노조무력화 사건에 개입했다. 2010년 발레오만도에서는 '직장폐쇄→용역투입→친기업노조 설립'이라는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동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유성기업에 주차해 있던 현대차 관리자의 차량에서 발견된 문건에서도 '창조컨설팅'이 등장한다. 현대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쟁의행위 대응요령'(2011년 5월11일 작성)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컨설팅사의 '원칙적 대응' 방향 재검토 권고(창조컨설팅)-경주 발레오만도 사례에 대한 맹신 위험 경계"라고 적혀 있다. 발레오만도의 노조파괴 사례를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인력 구조조정계획에 유관기관 대책도


노무컨설팅업체들은 주로 사용자를 대리해 단체교섭에 응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이나 운용방안을 실행하고, 회사의 노무관리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그런데 노무컨설팅의 실제 내용은 외부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매일노동뉴스>는 창조컨설팅이 2003년 맡았던 K사 구조조정 시행방안 자료를 입수해 살펴봤다. 2003년 8월14일 작성한 'K사 구조조정 계획(안)'은 △관리직 연봉을 20~25% 삭감하고 △금형제작팀을 분리 매각 △자동화를 통해 현장직원 임금 15% 삭감 △유휴인력 40% 전제하에 희망퇴직 실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이 회사는 흑자를 내고 있었는데도 창조컨설팅은 정리해고 방안까지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문건에는 구조조정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부터 "노조 쟁의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사전에 1개월치 생산물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응방안까지 상세하게 명시돼 있다. 심지어 해고를 통보할 때 △먼저 직속상사가 비공개적으로 하고 △면담은 짧고 확실하게 하되 결정이 번복되리라는 희망을 주지 말라는 내용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문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노조에 대한 비판여론을 조성하라"는 내용의 홍보대책과 유관기관 대책이다. 창조컨설팅은 해당 문건에서 "유관기관에 사전대책을 충분히 수행해 우호적인 주변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상기관으로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물론이고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유관기관을 통해 노조에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핵심 노조원 왕따 시켜 떠나게 하라" … 충격적인 노무관리 전략

노조무력화 컨설팅에 주력하는 업체로 알려진 S노무법인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보다 노골적이다. 이 업체가 만든 '리더십 평가방안'을 보면 "모든 관리자에 대해 정기적으로 평가해 하위 10% 평가자는 보직 해임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평가의 세부기준에는 노조의 쟁의행위 찬반투표시 찬성률도 포함돼 있다. 예컨대 과거 6개년 임단협 평균 찬성률이 58.7%면 2등급에 해당한다. '이슈 대응능력' 부문의 경우 노조의 아침선전전 참가인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S노무법인은 리더십 평가방안에서 노무관리기법 향상과 노무지휘권 확보수단으로 노조원을 평가·관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외부세력과 연계를 시도하고 회사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노조원'에 대한 관리방안은 충격적이다. 괴롭힘과 왕따를 통해 사실상 퇴출시키는 방법을 ‘노무관리 전략’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작업장 이탈시 내용을 작성하도록 하고 본인이 확인을 거부하면 목격자 진술을 받아내도록 하는 '누적관리제' △생활습관이나 경력 등 개인신상을 파악해 세력을 약화시키거나 고립시키는 '원형분리 관리제' △모범(친회사)사원으로 사방을 포위해 대화를 차단시키거나, 실수했을 때 모범사원이 즉시 공격하도록 평소에 훈련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압축관리방안' 등이 있다.<그림 참조>
 

 

‘노동자 삼청교육대’현실로

실제로 이런 일들은 발레오만도와 KEC·유성기업에서 발생했다. 삼청교육대를 방불케 하는 정신교육으로 파업에서 복귀한 노동자들의 인권은 철저하게 훼손됐다.

"화랑대교육은 이른바 세뇌교육이다. (중략) 셋째 날에는 30킬로미터 행군과 오리걸음, PT체조와 한강철교, 집단줄넘기 등을 시킨다. 회사방침에 따르지 않고 금속노조에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는 라인작업을 시키지도 않는다. 사무실 복도 통로에 혼자 책상 하나 주고 앉혀 두고 부서장이 일대일로 관리한다. 그럼에도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참고 견디니 이제는 화장실 청소, 풀 뽑기, 사원아파트 조경관리 등을 시킨다. (중략) 조합원 가족들에게도 협박이 진행된다. 회사는 <남자의 자격>에 나오는 합창단을 흉내내며 가족들에게 합창단 모임에 가입할 것을 강요한다. 부인들을 동원해 (금속노조 해고자들이 있는) 천막농성장에 항의방문을 계획하기도 한다."(정연재 금속노조 발레오만도 지회장)

"KEC는 파업철회 후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7주간의 반인권적인 교육을 감행했다. 파업참여 수준에 따라 KEC혁신학교라고 적혀 있는 주황·파랑·노랑 색의 옷을 입히고 3개 반으로 나눴다. 화장실 갔다 오는 횟수와 시간도 일일이 체크했다. 교실 정면에 ‘내가 여기 왜 있는가’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고 그 문구를 계속 쳐다보게 했다. 몸도 움직여선 안 되고 눈도 깜빡이지 못하게 했다. 회사가 내어준 문제지에는 순서대로 답을 적어 제출하게 했다. 답안지는 “다 나 가 라”, “나 가 라 다”라는 글자로 채워졌다. 회사 의도가 뭔지 뻔히 보이는 이런 기막힌 답을 가지고 퇴사를 강요했다."(이미옥 금속노조 KEC지회 여성부지회장)

용역경비에 의한 폭행만큼이나 잔인한 일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노동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의 자존감을 짓밟고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 개발된 노무기법이다.

노무컨설팅-용역경비업체 공생관계

용역경비업체가 노무컨설팅업체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본사를 둔 K사 ‘노사분쟁기업 전문 경호회사’를 표방한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서울 양재동 본사 경호를 맡았고, KEC 파업(2010년)·쌍용자동차 파업(2009년)·알리안츠생명 파업(2008년)·현대건설 파업(2007년)·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농성현장(2006년) 등 굵직한 파업현장에 경호인력을 투입했다.

K사가 홍보 프레젠테이션용으로 제작한 자료를 보면 노무컨설팅업체와 용역경비업체의 담합구조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K사는 자료에서 “노사분쟁시 회사측에서 노무컨설팅을 의뢰하고 추가로 경호계약을 하게 되는데, 경호회사 같은 경우 인터넷 검색이나 지인을 통해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전문 경호회사에 일을 맡긴다”며 “비전문 경호회사는 수수료를 챙기고 다시 전문 경호회사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아 확실한 일처리가 안 된다”고 차별성을 부각했다. 이어 “노무법인과 경호회사가 협력해 노사분쟁에 대응하면 전문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강조했다.

수익구조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자료에 따르면 노무컨설팅업체는 용역경비업체와 제휴해 노사분쟁 현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수익을 나눠 갖는다. 노무컨설팅업체가 경호업체에 일거리를 소개해 주고, 일종의 리베이트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이다. K사는 자료를 통해 “현재 ○○컨설팅을 비롯해 많은 노무법인이 전문성과 회사수익을 위해 제휴를 맺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사업장 노사분쟁에서 사설폭력을 묵인하는 사이 용역경비업체들은 ‘노사분규 전문’을 내걸고 파업 진압기술을 특화하는 등 발 빠르게 진화해 온 것이다. 

 
노조파괴 시도, 잇따르는 이유는?
노조법 개정 이후 노사관계 힘의 균형 ‘와르르’

여름휴가 시즌을 하루 앞둔 지난 7월27일 경기도 평택과 강원도 문막, 전북 익산에 위치한 만도 3개 공장에 직장폐쇄 공고와 함께 1천500명의 용역경비가 들이닥쳤다. 같은날 옛 만도기계 사업장이었던 충북 청원의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에 친기업 성향의 복수노조가 등장했다. 콘티넨탈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보쉬전장에서도 올해 2월 친기업 성향의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보쉬전장 역시 옛 만도기계 계열사다. 복수노조 등장 이후 회사는 정근원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장을 징계해고했다. 안정적이었던 노사관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 19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박윤종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장은 "보쉬전장에 복수노조가 생기는 것을 보고 올해 3월부터 조합원 교육을 여러 차례 하고 대비를 튼튼히 했다"며 "조합원들은 복수노조 폐해를 알고 '우리 중 누가 빠져나가겠냐'며 자신 있어 했지만 막상 회사노조가 생기니 아무 소용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속노조 중견사업장들이 회사노조 잇단 등장에 속수무책 쓰러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이달 현재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200여곳 중 복수노조가 설립된 사업장은 41곳(46개 지회)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곳에서 지난해 7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후 잇따라 복수노조가 등장했다. 복수노조 설립은 줄을 잇고 있지만 금속노조가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는 사업장은 SJM·경남제약·델타캐스트·금호타이어 등 4곳에 불과하다.

새로 설립된 복수노조들은 주로 투쟁력 있는 300~500인 규모의 중견사업장이나 장기투쟁 과정에서 등장하고 있다. 주로 강성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회사가 주도하는 노조가 설립되고 있다.

회사노조 등장 이어 노동강도·현장통제 강화

2010년 1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개정된 이후 ‘직장폐쇄·용역투입→금속노조 탈퇴 또는 회사노조 설립’ 방식의 노조파괴 프로그램이 사업장 곳곳에서 복제돼 가동되고 있다. 기업별노조 등장 이후 노동강도가 20~40% 강화되고, 고용보장 관련한 단체협약이 대폭 후퇴하는 양상까지 유사하다.

발레오만도는 2010년 연초부터 식당에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경비직 외주화를 추진해 노사갈등을 유발했다. 설연휴 직후인 같은해 2월26일 발레오만도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용역경비를 투입해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99일간 직장폐쇄를 했다. 그 후 공장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생산량이 40~50% 증가했다. 수십 개의 CCTV가 공장에 설치되고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의 모임(조조모)'이라는 임의단체가 만들어졌다. 조조모는 불법적으로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열어 가결시켰다. 2010년 말 매출액이 전년 대비 1천억원 증가한 4천억원대를 기록했는데도 회사는 상여금을 150% 가까이 삭감했다. 생산직에 차등성과급제 도입해 7개 등급을 매기는데, 최하위등급은 성과급과 자녀학자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단체협약에서 생산부문 외주화시 노사협의 조항이나 법인분리시 60일 전에 노조와 합의 조항 등 고용보장 조항을 대부분 삭제했다.

상신브레이크에서도 2010년 8월 발레오만도의 전철을 따라 직장폐쇄 후 금속노조를 탈퇴하는 수순이 이어졌다.

콘티넨탈과 보쉬전장도 최근 기업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서 '임시직 고용시 최대 3개월 미만으로 하고 계속 고용시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용역·하도급시 노조와 협의하도록 돼 있는 조항도 뺐다.

박윤종 콘티넨탈지회장은 “사내에 한 대도 없었던 CCTV가 7월 한 달 동안 36대가 설치됐다”며 “ERP시스템도 도입돼 각 라인에 설치된 모니터마다 그날 생산목표와 현재시각 도달 생산량이 표시되면서 공장 안은 그야말로 수용소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회사노조 등장한 사업장에서는 대부분 고용감소와 매출액 대비 임금비중 감소가 뒤따른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노조파괴 사업장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된 사업장에서는 어김없이 사용자에 의한 불법행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법원의 판결은 너무 늦게 나왔다.

발레오만도의 경우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금속노조 탈퇴는 무효"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상신브레이크는 올해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산별노조 집단탈퇴 총회 결정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어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상신브레이크의 공격적 직장폐쇄는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사업장은 만신창이가 된 이후였다. 유성기업 해고자 20여명도 올해 5월 서울고법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이끌어 냈지만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만도는 대놓고 법을 어기고 있다. 만도 경영진은 "금속노조 만도지부가 교섭대표노조이므로 교섭권이 없는 기업노조와는 교섭할 수 없다"는 노동부의 통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노조와 단체협약을 맺고 격려금과 성과급을 기업노조 조합원들에게만 지급하는 배짱을 보였다.

“노사 자율교섭, 법 개정으로 될 일 아니다”


노조법 개정 이후 노사관계의 힘의 균형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노조법은 사용자에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다. 설사 직장폐쇄 요건이 강화되고 경비업법을 개정해 용역경비업체가 사업장 분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제도개선이 이뤄진다 해도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더욱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조남덕 금속노조 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노조법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이 삭제돼 노사 자율교섭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별교섭을 통해 친기업노조와 단협을 맺고 그렇지 않은 노조와는 시간끌기식으로 교섭을 진행하면서 ‘노조 길들이기’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관계자도 “지금 현실을 보면 금속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진영의 전면적인 혁신과 함께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실 김철희 보좌관(공인노무사)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사용자의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교섭패턴과 방식, 체결시기와 내용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며 “비정상적인 법·제도를 바로잡는 한편 복수노조 시대에 걸맞은 노동운동의 대대적인 자기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보좌관은 “중장기적으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사법수사기관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의 근로감독 기능으로는 사각지대가 많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보장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국의 연방노동위원회(NLRB)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노동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노동계 강타한 '만도 충격'
노조파괴 시나리오, 대공장으로 확산 '우려'

올 여름 만도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던 지난 7월27일부터 30일까지 3일 만에 금속노조에서 일곱 번째로 큰 사업장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노동진영은 할 말을 잃었다. 직장폐쇄 후 단 3일 만에, 그것도 전·현직 노조 지도부에 의해 회사노조가 설립되고, 이틀 동안 조합원의 90%가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벼랑 끝에 선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방패와 곤봉으로 완전 무장한 채 SJM 공장에서 노동자를 쫓아냈던 컨택터스보다 만도가 더 충격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7월27일 전국에서 집결한 1천500명의 용역경비가 평택·문막·익산공장에 투입됐다. 용역경비가 들이닥쳤을 때 공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날 파업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이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첩보를 받아 만도에 용역경비가 투입될 것을 사전에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도지부는 이날 새벽 6시께 '파업 철회했으니 출근하라'는 문자메시지를 전 조합원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30분 뒤 '예정대로 파업에 들어간다'는 두 번째 문자메시지가 전달됐다. 오진수 평택지회장과 김일수 문막지회장이 '조합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이유를 들어 파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탓이다. 며칠 뒤 이들은 기업노조 출범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직장폐쇄 3일 만에 등장한 기업노조를 만든 것은 5기 금속노조 만도지부 지도부들이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지부장과 사무장을 맡았던 공병옥·황옥두씨가 기업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을 맡아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오진수·김일수 지회장과 같은 정파 소속이었다. 노동계의 한 축을 지탱해 온 정파그룹의 리더들이 금속노조 탈퇴를 내걸고 새로운 노조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노조의 제1 목적은 고용안정"이라며 "정치투쟁 및 허구적 산별운동과 결별하겠다"고 못 박았다.

98년 정리해고 트라우마와 대학등록금 고지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만도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탈퇴서와 근로복귀희망원을 쓰고 출입증을 받아야 공장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용역경비직원 1천여명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틀 만에 조합원의 91%가 금속노조 탈퇴서를 썼다. 3개 지회 지도부가 모두 기업노조로 넘어가고 지부도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조합원들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노동계는 만도지부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한 원인으로 '고용문제'를 꼽는다. 98년 정리해고 트라우마를 가진 만도 노동자에게 제1 순위는 자신의 고용안정이다. 만도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43세로 대학생 자녀를 부양할 나이다. 김희준 민주노총 강원본부장은 “설연휴 직후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발레오만도나 여름휴가 직전 직장폐쇄를 한 만도 모두 대학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올 때쯤 일을 저질렀다”며 “임금은 둘째 치고 1천만원이 넘는 대학학자금 때문에 조합원들이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기업노조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존 민주노조의 관성화 때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신성목 만도지부 사무국장은 “87년 이후 쌓아 왔던 민주노조 정신이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무뎌진 측면이 있다”며 “치열함이 사라지면서 노동조합운동이 그저 집행부 교체에만 매몰된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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