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이자 전태일 열사의 첫째 동생인 전태삼(71)씨가 9일 오후 이 여사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서울북부지법 근처 카페에서 가진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88년 11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의 사진을 들고 있다. <홍준표 기자>

“오늘은 공교롭게도 경찰이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노동교실을 봉쇄했던 1977년 9월9일과 같은 날입니다. 할 말이 많지만 오늘 재판을 통해 어머니의 명예가 회복되고, 전두환이 5·18 유족과 국민 앞에 사죄하고 참회해 뉘우쳤으면 합니다.”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이자 전태일 열사의 첫째 동생인 전태삼(71)씨는 9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고인에 대한 재심 첫 재판이 끝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매일노동뉴스>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전두환이 진심으로 참회해 천국으로 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
검찰 “신군부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범죄”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부(홍순욱 부장판사)는 9일 오전 이소선 여사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소선 여사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41년 만이다. 이날 재판에는 당시 청계피복노조 조합원의 가족도 참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재심은 검찰이 당시 계엄법 위반이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청구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안준석 검사)는 지난 4월 신군부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행위는 헌정질서파괴 범죄에 해당하고, 신군부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이 여사를 포함해 5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달 23일 “이 여사의 행위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군사정권 시절 당국의 허가 없이 시국 성토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같은해 12월6일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일주일 뒤 형이 확정됐다. 청계피복노조 고문이었던 이 여사는 1980년 5월4일 오후 9시30분께 고려대 도서관에서 500여명의 시국 성토 농성에 참석해 노조 결성경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을 연설했다. 또 닷새 뒤 오전 10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회관에서 금속노조원 600여명과 합세해 ‘노동 3권 보장하라. 민정이양 하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시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그 행위의 시기·동기·목적·대상·사용수단 등에 비춰 볼 때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 20조의 정당행위”라며 “재심사유가 인정되는데도 재심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재심이 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현저히 정의에 반한다고 판단돼 직접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전태삼씨에게 발언할 기회를 줬다. 전씨는 “오늘 재판을 통해 정의로운 나라,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나라를 위해 힘썼던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피해 호소와 눈물, 고난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시 이 여사에 대한 판결문 이외에 연설 경위와 관련한 자료를 검찰과 변호인측에 요청했다. 다음 공판은 10월14일 오전 열린다.
 

▲ 전태일 열사의 첫째 동생인 전태삼씨가 9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고 이소선 여사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바보회’ 명함을 들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 전태일 열사의 첫째 동생인 전태삼씨가 9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고 이소선 여사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바보회’ 명함을 들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전태일 열사 동생 “공권력으로 생명 희생 없어야”

공판이 끝난 뒤 전씨는 “서울북부지법 청사는 남산화재로 어머니와 가족들이 이주해서 살았던 천막이 있던 곳”이라며 “오늘은 조합원 50여명이 경찰의 봉쇄망을 뚫고 노동교실에 진입해 들어가 결사투쟁을 벌였던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 이름이 적힌 ‘바보회’ 명함을 들고 오기도 했다.

그는 “청춘과 젊음을 묻었던 날들이 이번 재판을 계기로 말끔히 청산됐으면 한다”며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오늘 저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동지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권력에 의해 생명이 헛되이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씨는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열어 주는 것”이라며 “열사들이 꿋꿋이 지켜 낸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어 가는 게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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