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소천한 지 10년이다.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서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싸웠던 그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살피고 운명을 지켜본 김동만 (재)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역시 마지막을 함께하고 공동상주를 맡았던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이소선 여사의 정신을 들어 봤다.


‘노동자 하나 돼라’는 말씀, 되새긴다
김동만 (재)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김동만 (재)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김동만 (재)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

전태일 열사의 삶은 제가 감히 따르고자 했던 노동운동의 표본이었습니다. 아들을 가슴에 품고 그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평생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님은 개인적으로도 삶과 운동의 갈림길마다 옳은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았습니다.

어제 일처럼 뚜렷한 어머니와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20년 넘게 전태일기념사업회 운영위원과 전태일재단 이사를 맡으며 어머님과 세상사 허물없이 이야기 나눌 만큼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낸 것은 돌아보면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습니다. 매달 한 번 이상은 따로 또 전화 주셔서 잘 지내고 있냐, 한국노총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냐 물으시며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특히나 2005년 제가 금융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날 어머님이 직접 찾아와 축하해 주셨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이광택 당시 기념사업회 이사장님과 함께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들고 금융노조를 방문해 활짝 웃으며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힘든 시기마다 그날의 따뜻한 격려를 떠올렸습니다.

어머님께서 쓰러지시기 전 가족들과 함께한 마지막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제게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 투쟁 중인 김진숙 동지를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순간들도 여전히 생생합니다. 우리 장기표 선생 잘 되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우리 곁을 떠나신 지 그새 10년이 흘러, 어머님의 정신과 유훈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사이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되는 나라로 한 걸음 내디뎠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안타까워하던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노동자라 불리지도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되풀이되고 있고, 어머님께서 늘 함께하셨던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나타나 지금도 사업장과 거리 곳곳에서 쉰 목소리로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 축인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또다시 경찰에 연행돼 구속되는 사태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노동운동이 단결해야 하고 자신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소외받고 고통받는 노동자를 위해야 한다는 말씀은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형 노동자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현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저 스스로도 32년 노동운동과 3년3개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이제 잠시 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도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이사장을 맡게 된 것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과 역할이 어머님의 뜻과도 맞닿아 있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노동권과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열악한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을 보셨다면 어머님께서 흐뭇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내 주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머님의 10주기를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뜻깊게 추모하는 자리로 만들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님께서 평생 강조하신 노동자가 하나가 돼야 승리한다는 진리의 말씀을 노동운동의 많은 동지들과 되새기고 실천을 결의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 또한 오늘의 전태일과 여공들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은 또 다른 나’ 어머니의 정신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지만 벌써 10주기가 다가옵니다. 어머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나요. 사랑하는 아드님도 잘 계시죠. 지난 겨울 백기완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 많은 분들이 함께 슬퍼했는데요. 그때도 어머님 생각이 나서 한참 동안 지난날을 생각했습니다.

올해 2월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엄수된 백기완 선생님 영결식에서 “백 선생님이 떠나시면 이제 저는 누구 옆에 앉아야 합니까”라고 절규하신 문규현 신부님의 추도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수많은 투쟁 현장에서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은 언제나 맨 앞자리 앉아 노동자·민중들과 함께해 주셨는데, 오랜 동지 노 혁명가를 먼저 떠나보내는 신부님의 애통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어머님 영결식에서 백기완 선생님도 문정현 신부님과 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이소선 어머님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를 넘어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야. 전태일 정신과 함께 이소선 정신을 노동자들이 실천해야 해”라고 힘줘 말씀하시고 “이제 누구랑 전태일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상의해야 하나”고 탄식하셨습니다.

10년 전 오늘 처음엔 너무 놀랐지만 돌아볼수록 운명 같은 하루였습니다. 여름부터 어머님 편찮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렇게 빨리 가실 줄 모르고 전 그날 오전 병문안을 예약했죠. 첫 번째 병문안이 마지막 인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님 뵐 때마다 “양대 노총이 하나가 돼야 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님과 함께 임종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손은 따뜻했고 얼굴은 너무도 편안하게 보였습니다.

어머님 10주기를 맞아 백기완 선생님이 말씀하신 이소선 정신을 다시 생각합니다. 2010년 7월 서울 영등포에 위치했던 민주노총 사무실을 정동으로 이전하고 현판식을 하던 날, 어머님은 민주노총이 시민들과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왔다고 좋아하셨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민주노총 사무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치졸한 방법을 다 동원했죠. 저도 그날 민주노총의 정동시대를 알리면서 명박산성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우리 노동자가 앞장서서 싸우자고 얘기한 기억이 납니다.

마침내 광장은 열렸고 촛불항쟁으로 무도한 정권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고단합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되돌아봅니다. 2010년 세계노동절 대회에서 어머님은 “노동자가 하나 돼 싸우면 무서울 것이 없는데 왜 단결하지 못해 가진 자들로부터 천대받느냐”고 하신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전태일 열사께서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라고 말씀하셨듯이, 이소선 정신은 모든 일하는 사람은 또 다른 나이며 또 다른 나와 자신이 하나 될 때 비로소 노동존중 사회가 열린다는 평등의 정신입니다. “또 다른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열사의 부탁”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투쟁하신 실천과 연대의 정신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한 불평등과 양극화. 이제는 비정규직 문제로만 설명이 불가능한 분절화된 노동시장 ‘다중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모든 일하는 사람들과 노동운동이 함께 하기 위해 “하나 돼 싸우라”는 어머님의 가르침을 다시 받들 때입니다.

노동조합이 시민권을 획득해야 하듯이 모든 일하는 시민들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는 나라. 임금 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 자영업자들의 연대가 실현되는 나라. 전태일 열사가 꿈꾸던 공정하고 평등한 나라를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어머님이 언제나 함께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어머님 10주기를 맞아 절망하는 수많은 또 다른 나. 일하는 사람들이 다시 용기를 얻고 일어서기를 바라면서 다시 뵐 때까지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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