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주관으로 지난 3일 대구 중구 남산동 전태일 열사 옛집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 이소선을 기억하다’ 이소선 운동가 10주기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열렸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성서공동체 FM, 뉴스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가 공동 주최했다.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가 소천한 지 지난 3일로 10년이 됐다. 고인은 ‘갈라짐’을 경계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갈라져 있어서는 안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라져선 안 된다.” “뭉쳐야 이긴다. 하나가 돼라.” 이소선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노동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갈라져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2020년에는 양대 노총이 통합을 선언하자”는 목소리가 2016년 8월 이소선 어머니 5주기 토론회 때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정규직 의견이 분출됐다. ‘갈라짐’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갈라짐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별 없는 세상, 하나되는 세상”을 호소했던 ‘이소선 정신’이다. 지난 3일 이소선 10주기를 기념해 대구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열린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 이소선을 기억하다’ 세미나에서는 이소선 어머니 유족과 함께 활동했던 활동가, 이소선 어머니의 생애를 구술로 기억한 <전태일, 이소선 기록을 기억하다> 저자 김대현 문학평론가가 참여해 고인의 삶과 정신을 추억했다. 세미나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사장 이재동)이 주관하고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성서공동체 FM, 뉴스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가 공동 주최했다. 추도식은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인해 취소됐다.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삶
“차별하지 않는다” 이소선 정신 씨앗 틔워

이소선 어머니는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어머니다. 그는 전태일 열사 산화 이후 “너의 뜻을 잇겠다”고 약속하고 평생 그 약속을 지켰다. 청계피복노조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했고 노동자 교육기관 운영을 맡았다. 민주화운동 유가족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회장을 맡았고, 민주노총 탄생에도 기여했다. 2007년 기륭전자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부터 희망버스까지 각종 노동현안에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소선 어머니가 전태일 열사 사망 이전부터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며 노동운동에 대한 씨앗을 품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부각됐다. 구술을 기록한 김대현 문학평론가의 설명은 이렇다.

이소선 어머니는 차별과 주변인들의 죽음에 노출된 어린 시절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항일 농촌운동을 하다 일제에 발각돼 사망했고, 이후 어머니는 정씨 집성촌으로 재가했다. 피를 나눈 혈족이나 인척들로 구성된 집성촌에서 완전한 외부인이던 이소선 어머니와 가족은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다가 도망친 뒤 해방이 될 때까지 숨어 있었다. 같이 끌려간 친구 7명 중 2명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친구 중 한 명은 공장에서 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해방 이후 중매로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폭력에 노출됐다. 남편은 사업에 실패했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가족을 길바닥에 두고 자취를 감추거나 술에 취해 아이들을 때리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가족은 생계를 위해 서울과 대구, 다시 서울로 떠돌며 생활하다 서울 창동 무허가 판잣집에 정착했다. 공동묘지터에 위치했던 집 주변은 비나 바람이 불면 뼈나 썩은 관뚜껑이 돌아다녔는데, 판잣집은 이 관뚜껑을 문짝과 발판으로 썼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을 대접했다. 새벽시장에 나가 바닥에 떨어진 우거지를 주워 밥을 조금 넣고 죽을 끓였다고 했다.

김대현 문학평론가는 “이소선 어머니가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전향해서 운동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차별하지 않는다’는 운동의 씨앗이 있었다”며 “이 정신이 전태일 열사에게 전해졌고,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며 이소선 어머니에게 또다시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차별 없는 세상’ 이소선 정신에는
진전성 있는 사랑이 바탕

이소선 어머니 일생을 돌아보면 “차별하지 않는다”는 정신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소선 어머니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지난 3일 전태일기념관이 이소선 어머니 10주기를 맞아 공개한 “이소선의 기억과 기록”에서 이소선 어머니의 정신 아래 모든 이를 사랑으로 대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청계피복노조 조합원이던 이숙희씨는 “노조 노동교실 개관 직후 건물주에게 뺏긴 노동교실 찾기 싸움을 준비했는데, 당시 어머니가 여관 부엌을 빌려 대파 넣고 소고깃국을 끓여 주셨다”며 “생각해 보면 늘 싸움이 있기 전에는 어머니가 고기를 사서 대파를 숭숭 썰어 넣은 고깃국을 끓여 주셨다”고 했다. 1980년대 노조운동을 한 이승숙씨는 “투쟁 현장에서만 어머니를 보다가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생기며 어머니랑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명절에는 고스톱도 많이 치면서 가까워졌다”며 “어머니와 노조활동 방식에서 이견이 있어 안 맞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저희를 지켰다”고 기억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직후 서울시 명동 성모병원으로 달려간 장기표 국민의힘 김해을 당협위원장도 참석해 “사회과학적 용어로는 인간해방의 세상, 자아실현의 노동이 있는 세상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대 중반이던 93년부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를 참여하며 이소선 어머니를 봤다는 정은정 전태일의 친구들 부이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이소선 어머니의 메시지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머님은 항상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교과서적으로 받아들였다”며 “생각과 행동이 자주적이지 않고 자본가의 뜻에 따라 활동하는 노조와도 단결해야 하는지 생각했지만, 지금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대현 문학평론가는 “이소선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양대 노총이 협력해서 3일만이라도 총파업하면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온다고 했다”며 “노총의 성격과 조직이 다르지만 이소선 어머니에게는 그게 본질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이 하나로 뭉쳐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본질로 봤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무언가를 이뤄 내서 소중한 게 아니라
어머니 정신 그 자체로 소중”

이소선 어머니의 업적이 아니라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소선 어머니의 아들 전태삼씨는 “어머니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어떤 행위를 해서 더욱 소중했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일을 감당하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머니가 노동자와 학생들과 함께했던 건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청계피복노조를 만들 때부터 무엇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앞에 놓인 길을 간 것이다”고 말했다. 청계피복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을 지낸 박계현 중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이소선 어머니는 현장에 호출됐다”고 추억했다. 이소선 어머니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기여한 업적은 크지만, 어머니가 그 업적을 바라보고 간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있는 곳이면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어디든 갔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전태삼씨는 “청계피복노조를 만들 때나 이후에도 그 시대가 어머니가 가는 길을 만들어 주셨고, 그 길을 감당하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려 한 데에 어머니의 참된 정신과 뜻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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