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 전태삼(71·사진 왼쪽)씨가 21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이 여사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 이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이 여사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전태삼씨 제공>

“1980년 5월께는 신군부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시기로 전국적으로 대학생·노동자·재야인사들의 시위가 증가하던 상황이다. 대학생들의 시국농성과 노동자 집회에 참석해 시위한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에 대항해 반대한 행위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노동자들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계엄령 위반 사건 재심 재판장은 21일 판결문을 낭독하며 이소선 여사의 행동은 ‘정당행위’였다고 못 박았다. 이 여사가 전두환 정권 시절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지 41년 만이다.

재판부 “전두환, 노동운동 강하게 탄압”
이소선 여사, 1980년 시국성토농성 참여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부(홍순욱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이소선 여사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여사의 차남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71)씨와 전두환심판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선고 공판을 방청했다. 재판은 약 2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전두환 정권이 노동운동을 탄압했다고 질타했다. 홍 부장판사는 “군 지휘권을 장악한 전두환 등은 부마항쟁 이후 활발히 전개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더 강하게 탄압하려 했다”며 “피고인(이소선 여사)은 고 전태일의 모친이자 청계피복노조 설립자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노동운동을 해 왔고, 1980년 4월 노조와 함께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선고로 이 여사는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청계피복노조 고문이었던 이 여사는 1980년 5월4일 오후 9시30분께 고려대 도서관에서 500여명의 시국 성토 농성에 참석해 노조 결성 경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등을 연설했다.

닷새 뒤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회관에서 금속노조원 600여명과 합세해 ‘노동 3권 보장하라. 민정이양 하라.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시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후 당국의 허가 없이 시국 성토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같은해 12월6일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일주일 뒤 형이 확정됐다.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 전태삼씨가 지난 9월9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이소선 여사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바보회’ 명함을 들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 전태삼씨가 지난 9월9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린 이소선 여사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바보회’ 명함을 들고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준표 기자>

40여년 만에 재심 결정, 검찰 무죄 구형
차남 전태삼씨 “여전히 참담하고 억울”

검찰은 지난 4월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안준석 검사)는 신군부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이 여사를 포함해 5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 8월23일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은 9월9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세 차례의 변론을 거친 뒤 종결됐다. 검찰은 전두환이 지난달 23일 사망한 지 이틀 뒤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여사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이 여사의 차남인 전태삼씨는 이날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계엄군이 어머니를 전국에 지명수배해서 감금하고 군사재판을 연 이유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이 단 1분 만의 선고로 끝났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며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씨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여전히 참담하고 억울하고 슬프다”며 “전두환의 총칼에 생명을 잃었던 영령들에게 무죄 판결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라며 “후세에 반드시 오늘을 기록해서 다시는 이 땅에 군부와 권력이 민주주의를 좌지우지 않는 세상을 유산으로 남겨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씨와 국민행동 관계자들은 선고 이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이 여사 묘역을 방문해 참배했다.

전태일재단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비록 늦었지만, 국가의 판결을 환영한다. 이소선 어머니의 무죄 판결이 역사의 법정이 국가의 법정 위에 서는 마중물이 되리라고 믿는다”며 “무죄 판결은 이소선 어머니 한 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모든 전태일과 이소선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하기를 사법당국에 바란다”고 밝혔다.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 전태삼(71·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씨와 전두환심판국민행동이 21일 오전 서울북붑지법에서 열린 이 여사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두환심판국민행동>
고 이소선 여사의 차남 전태삼(71·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씨와 전두환심판국민행동이 21일 오전 서울북붑지법에서 열린 이 여사의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두환심판국민행동>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