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경기도 평택항 평택컨테이너터미널에 위치한 검사장에서 검사요원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어 컨테인 안을 점검하고 있다. <강예슬 기자>

“사운드(Sound)!”

경기도 평택항 평택컨테이너터미널 안 한쪽에 위치한 컨테이너 검사장에서 화물차에 실려 온 컨테이너를 살펴본 검사자가 소리쳤다.

“사운드는 통과, 깨끗하다는 뜻이에요. 바로 컨테이너 반납하면 돼요.” 양인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평택항지부 사무부장이 설명했다. 검사를 마친 앞 차가 컨테이너를 내려놓을 구역을 찾아 떠나가자, 뒷 차는 신호봉을 든 ‘봉맨’(신호수)의 수신호에 맞춰 이동해 멈춰 섰다. 정차한 차량에 검사자 한 명 혹은 두 명이 붙어 문 개폐와 내부 점검을 이어 갔다.

지난 21일 오후 <매일노동뉴스>가 화물차 검사장·세척장 작업현장을 찾았다. 화물노동자는 안전운임 부대조항에 따라 자신의 업무가 아닌 컨테이너 문 개폐, 위험물 스티커 제거, 세척 셔틀 업무를 강요하는 선사를 상대로 투쟁 중이다.

평택컨테이너터미널은 본부의 오랜 요구로 상황이 개선된 모범적인 사업장에 속한다. 하지만 평택항에 위치한 또 다른 컨테이너터미널인 평택동방아이포트터미널(아이포트)은 물론 대다수 항만에서 화물노동자는 제 업무가 아닌 일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중장비, 화물차 오가는 항만
“긴장 늦추면 대형 사고”

평택컨테이너터미널로 향하는 길, 보안은 삼엄했다. “검사장 갔다가 세척장으로 갈 거예요.”

4번 게이트 앞에 서 있던 사복경찰관이 행선지를 묻자, 지부 관계자가 답했다. 평택지방해양수산청에서 미리 받아 둔 촬영허가신청서를 초소에 제출하고 나서야 항만 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앞에 잘 봐!” 뒷자리에 앉은 강신인 평택항지부장이 운전자에게 안전운전을 신신당부했다. 강 지부장이 말한 곳에서는 20피트·40피트 컨테이너를 나르는 데 쓰이는 대형지게차가 이동 중이었다. 20피트 컨테이너는 길이 5.9미터·폭 2.3미터·높이 2.4미터, 40피트 컨테이너는 길이 12미터에 폭과 높이가 20피트 컨테이너와 같다. 항만 안은 대형중장비와 화물차가 쉴 새 없이 오갔다. 한눈을 파는 순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터라 이동 내내 긴장감은 계속됐다.

첫 행선지는 검사장이었다. 검사장은 물품 운송을 마친 화물노동자가 빈 컨테이너를 싣고 터미널에 들어올 때 필수적으로 들려야 하는 코스다. 컨테이너의 소유주는 선사다. 화물노동자는 사용을 마친 컨테이너를 다시 부두에 반납해야 한다. 검사 과정에서 컨테이너에 실었던 물품·음식물 잔해나 기름때 등이 남아 있으면, 세척 과정을 거쳐야 한다. 컨테이너에 새로운 물품을 실을 때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강신인 지부장은 “문을 여닫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며 “오늘처럼 비가 온 날에는 발판을 딛고 문을 열다가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세척 업무는 선사가 도급을 맡긴 업체가 맡는다. 정부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고시에서 차주에게 수행시킬 수 없는 업무 중 하나로 ‘컨테이너 검사 및 청소작업’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와 부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침은 스티커 제거작업도 차주에게 시킬 수 업무로 규정했는데 높은 곳에서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검사장의 경우는 노조의 오랜 요구로 전산작업, 인력충원이 이뤄져 화물노동자가 직접 문을 여닫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검사장에서 “세척이 필요 없다”는 뜻의 ‘사운드’ 통보를 받은 화물차량은 컨테이너를 내려놓을 지정장소로 이동했다. 반면 세척작업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차량은 세척장소로 이동한다.
 

▲ 강예슬 기자
▲ 강예슬 기자

“시간인 돈인데,
세척 대기에 답답한 화물노동자”

지부 조합원 차량을 이용해 검사장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세척장소로 이동했다. 이미 세척이 끝나 건조 중인 컨테이너와 세척을 기다리며 쌓여 있는 컨테이너가 보였다. 양인규 사무부장은 “세척이 필요한 컨테이너는 냉동고추·마늘·파 등을 실었던 냉동컨테이너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허가받은 동행취재 시간 동안 세척이 진행되는 모습은 볼 수는 없었다.

10년 넘게 화물업에 종사한 한지성(가명)씨는 “오후에는 본래 차가 많지 않다”며 “전날 화물을 실어 놓고, 다음날 오전 7~9시까지 현장에 짐을 전해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부에 따르면 평택컨테이너터미널의 경우 화물노동자가 컨테이너 세척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없다. 세척장으로 이동한 화물차량에 실린 컨테이너를 대형지게차가 바닥에 내려놓고, 세척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택항 안 아이포트는 상황이 다르다고 한다. 한지성씨는 “아이포트에서 세척을 기다리느라 40분이 걸린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이포트의 경우 검사장에서 세척용지를 받은 뒤 20미터 거리에 위치한 세척장으로 이동해 세척을 받는다”며 “세척을 마친 뒤에 또다시 검사장쪽 사무실로 이동해 컨테이너를 내려놓는 자리를 배정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통 세척은 한 대당 15분 정도가 걸린다. 운송 건당 수수료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화물노동자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기다리는 차량이 많으면 대기시간이 크게 늘어 손해를 보는 구조다.

인력 부족은 대기시간 지연을 부추긴다. 강 지부장은 “아이포트는 검사장 인원이 두 명밖에 안 되는데, 한 명은 냉동컨테이너 업무로 빠지고 검사장에는 혼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지부는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방쪽에 공문을 보냈고 만나 대화했다. 동방쪽은 문제 개선을 약속한 상태다. 화물연대본부도 해양수산부와 국토교통부, 한국해운협회에 공문을 보내 교섭을 요구한 상태다. 5월 둘째 주까지 회신을 요구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상태다.
 

▲ 강예슬 기자
▲ 강예슬 기자

“이선호씨 숨지기 하루 전 화물차량 전복사고”

컨테이너터미널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재해 위험은 특수고용직인 화물노동자의 또 다른 고민이다.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정리작업을 하다 숨진 스물셋 청년 비정규 노동자 이선호씨의 죽음에 이어 지난 23일 경남 창원 부산신항에서도 노동자 한 명이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 이런 재해는 화물노동자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이선호씨가 숨지기 하루 전인 21일 평택컨테이너터미널에서는 화물노동자가 타고 있던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누운 ㄷ자 모양의 트랜스퍼 크레인(T/C)이 화물차량에서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화물차 짐칸과 컨테이너를 고정하도록 하는 잠금장치(콘)가 걸린 탓에 차체가 컨테이너에 매달려 끌어올려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화물노동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화물노동자 재해는 ㈔한국항만물류협회가 집계하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10년 동안 전국 11개 항만에서 33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1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다쳤다. 화물노동자 재해까지 더하면 항만 안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양인규 사무부장은 “트랜스퍼 크레인이 움직이는데 차나 사람이 아래 왔다갔다 하면 정말 위험하다”며 “컨테이너를 이동시키던 중 컨테이너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차 항만에 머무는 30분 동안 컨테이너 부두에서 트랜스퍼 크레인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한지성씨는 “부산항에는 화물차에서 트랜스퍼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들거나 내릴 때 ‘야드맨(신호수)’이 있는데, 평택항에는 없다”며 “평택항에는 컨테이너를 배에서 내릴 때만 야드맨과 감독관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고 발생을 막으려면 기사들이 크레인이 내려오는 시점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카메라를 설치하든, 수신호 체계를 공유하든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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