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슬 기자
강예슬 기자

지난 23일 부산항운노조 소속 조합원 A씨가 부산신항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중 42톤 지게차에 깔려 숨을 거뒀다. 스물셋 청년 비정규 노동자 이선호씨가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업무 중 재해로 숨진 지 한 달 만이다.

정부는 이선호씨의 황망한 죽음으로 비판여론이 일자 지난 17일 5대 항만 합동점검에 돌입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점검 방법과 범위를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논란에 등 떠밀려 시행되는 일회성 점검이 아닌 근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다수 노동자가 일용직으로 고용돼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되는 상황을 개선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14년째 일용직, 일당 10만원 남짓”
백열등에 의존 깜깜한 선박 안에서 일해

인천항에서 일하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모여 만든 인천항민주노조협의회가 25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3부두 출입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만노동자 안전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야드트레일러(YT) 기사로 일하는 이태경 인천지역일반노조 YT지부장은 “문제는 무분별한 일용직 사용”이라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YT 기사는 한진·선광 같은 하역사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내리고, 야적장으로 컨테이너를 옮기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태경 지부장은 “38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업체는 31명을 쓰고, 나머지는 일용직으로 충원한다”며 “일용직 노동자에게 하는 안전교육은 없다”고 말했다.

인천신항에서 일용직으로 14년째 일하고 있다는 전창환 인천일반노조 항만지부장에게 퇴직금은 언감생심이다. 매일매일 다른 하역사와 일일계약을 맺어 일한 뒤 10만원 남짓한 일단을 손에 쥔다. 전 지부장은 “위험한 곳에서 일하니 사고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하역사는 산재보험료율이 올라갈까 봐 산재를 신청하지 않고, 공상처리한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원목·고철·석탄·시멘트 등 선박이 싣고 온 물품을 컨테이너에서 빼내는 일을 한다. 포클레인·지게차 같은 대형중장비가 수시로 움직이는 깜깜한 선내에서 중장비 불빛과 높은 곳에 희미하게 빛을 내는 백열등에 의지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헤드랜턴이나 손전등은 지급되지 않는다.

이들은 정부의 합동점검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인천항 노·사·정 공동인력관리위원회 사무국은 지난 14일 “해양수산부에서 항만 암행순찰 강화로, 현장에서는 안전조끼·안전화·안전모를 착용해 주시고, 직원의 통제에 협조해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를 일용직 노동자에게 전송했다.

조정재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인천지역본부 사무국장은 “암행감찰이라고 하는데,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며 “사전에 정리를 싹 해 놓고, 봉고차 타고 항만을 한 바퀴 휙 돌고 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 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 거기에도 끼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물어봤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 인천북항 어두컴컴한 선박 안에서 일용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 인천일반노조 항만지부>
▲ 인천북항 어두컴컴한 선박 안에서 일용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 인천일반노조 항만지부>

“중대재해 발생한 부산신항 배후단지는
정부 점검 대상에 미포함”

정부의 5대 항만 점검 계획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근영 화물연대본부 인천지역본부장은 “정부는 현재 항만 위주로 점검을 하는데, 항만만 점검해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며 “부산신항 사고는 부두에서 거리가 떨어진 컨테이너 야적장(ODCY)에서 났다”고 말했다.

정부 점검 대상은 5대 항만(부산항·인천항·여수광양항·울산항·평택항)과 그곳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23개 운영사다. 지난 23일 부산신항에서 지게차에 깔려 숨진 부산항운노조 소속 조합원 A씨가 일한 곳은 정부 합동점검 대상이 아니다. A씨는 사고 당일 부산신항 웅동배후단지에 위치한 팬스타신항물류센터에서 일했다. A씨는 컨테이너 안 물품을 빼내는 작업을 했는데, 항만 내 일용직 노동자가 하는 업무와 동일하다. 위험한 작업공간이 분명한데도 부산신항 웅동지구에 위치한 탓에 이번 점검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나머지 항만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배후단지 물류업체의 고용구조는 일용직 노동자가 넘치는 항만과 판박이다. 부산항운노조 관계자는 “사고가 난 배후단지 물류업체 대부분이 정규직 인원을 최소화하고 70~80% 인력을 일용직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원래 물류업체가 배후단지에 들어오려면 입찰을 거쳐야 하는데, 입찰 당시 계획했던 고용창출 계획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후단지 물류·제조업체의 경우 항만공사에 임대료를 내고 해당 부지를 이용하는데, 입주하려면 건설기간과 전체 운영기간 중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창출 계획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이번 재해가 발생한 팬스타신항물류센터는 2012년 5월부터 부산신항 웅동지구에 들어왔다.

부산항운노조 관계자는 “부산항 같은 경우는 노사정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안전상설협의체가 있어서 현장점검을 한 번씩 나가는데 배후단지에는 이런 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사업장(팬스타신항물류센터)에 대해서는 해당 지청에서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감독을 별도로 실시한다”며 “점검인력의 한계도 있어, 일단 점검을 해 보고 결과를 놓고 (추가점검 등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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