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물류대기업이 운영하는 물류터미널·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이 잇따르고 있다. A사에서는 지난 7일 경기도 용인허브터미널에 이어 9일 대전허브터미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에는 B사 부천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물류터미널과 물류센터는 노동자 대부분이 일용직으로 작업동선이 유동적인 데다가, 노동자가 여러 사업장을 오가며 일하는 터라 방역 사각지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1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사 대전허브터미널에서 일하던 인력 도급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 한 명이 지난 9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노동자는 지난 3일 오후 5시께 출근해 4일 오전 9시까지 일했다. A사에 따르면 해당 확진자는 근무 직후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 판정을 받았고, 근무 3일 후 증상이 발현돼 추가 검사를 통해 확진판정을 받았다. A사쪽은 “당사는 확진판정 통보 이후 전문업체의 시설방역, 확진자 근무장소 폐쇄, 근무인력에 대한 코로나19 확진상황, 전파·접촉자 파악 및 통보 등 선제조치를 취하는 한편 보건당국의 추가 지시를 충실히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10일 대전시는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현재 대전 터미널은 정상 가동 중이다.

“확진자 발생에 두려움 떠는 노동자”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지 않거나, 감염 가능성이 희박해 관련 사실을 직접 공지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확진자 발생 사실에 불안감을 표했다.

대전허브터미널에서 일하는 물류업계 종사자 김대명(가명)씨는 “한 라인(레일)만 폐쇄했다는데, 확진자가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니 불안하다”며 “터미널 안에서 일하는 사람만 1천명이 넘는데…. 안내 문자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확진자는 택배 상·하차 업무를 수행했다. 허브·서브터미널을 오가는 간선차량이 컨테이너 박스를 접·이안 장소에 세우면, 상·하차 노동자는 분류작업을 거쳐 레일을 타고 내려온 상품을 싣거나 내린다. 레일을 컨테이너 박스 안까지 연결해 물건을 옮기는데 상·하차 일용직 노동자들은 레일 양쪽에 서서 일하기 때문에 밀접접촉 가능성이 적지 않다. 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사이 간격은 차량 뒷문을 양쪽으로 완전히 열 수 없을 만큼 좁다.

물류업계 종사자 고지한(가명)씨는 “오후 6시30분께 일용직 노동자가 도급업체 버스를 타고와 내리면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며 “버스 여러 대에서 100~200여명의 노동자가 순식간에 내려 우후죽순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잠깐 쉬거나 업무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화장실 등을 오간다”며 “상·하차 업무의 경우 워낙 노동강도가 높은 탓에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도 심심찮게 보였다”고 덧붙였다.

간선차 기사를 상대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조치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에는 차량 내·외부를 소독하는 등 방역조치를 했지만, 최근에는 소독작업은커녕 열도 재지 않는다는 증언이 나온다. 간선차 기사는 물건 상·하차가 이뤄지는 시간 동안 차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화장실과 휴게공간은 일용직 노동자와 함께 사용한다.

“물류업 미등록 체류자
코로나19 방역 허점” 우려

물류업계 종사자는 현장에 언제든 코로나19가 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C택배 경기도 이천 터미널에서 일하는 물류업계 종사자 김수찬(가명)씨는 “이천 터미널에는 하루에 700여명의 노동자가 찾는데 대부분 수도권에서 일당을 벌러 오는 이들”이라며 “20~30군데 용역회사에 소속돼 (출퇴근) 버스에서 내려 발열체크를 하기는 하지만 내린 뒤 동선은 깜깜이”라고 설명했다.

위법이지만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물류터미널 내 이주노동자 고용은 코로나19 방역 구멍을 키운다. 현재 고용허가제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업종을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은 택배 상·하차 업무에 투입될 수 없다. 그런데 업무강도가 높고,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내국인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물류업계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김수찬씨는 “이천 터미널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가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며 “쉬는 공간도 마땅찮아 화장실에서 박스를 깔고 쉬는 노동자들이 바글바글한데, 그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확진되면 확진세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5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일했던 고건 쿠팡 피해 노동자 모임 대표는 “방역당국은 사업장의 특수성을 잘 몰라 밀접접촉자를 파악할 때 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기반으로 할 텐데, 그 자료를 신뢰하는 문제에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며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 있고 노동자들의 삶을 좌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쿠팡은 부천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의 원인이 초기 대응 미흡 탓이라는 여론이 일자 ‘쿠팡 뉴스룸’을 통해 “방역에 사용된 소독제의 잔류기간 등을 고려해 방역 종료 후 3시간 동안 폐쇄를 거쳐 업무를 재개하는 것으로 부천시 보건소와 협의됐다”고 밝혔다. 확진자를 통보받은 당일 3시간 사업장 폐쇄·소독 후 운영을 재개한 것은 방역당국의 조치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당시 최초 확진자 D씨는 5월12일 하루 일한 일용직 노동자로, 쿠팡은 D씨의 확진 사실을 12일이 지난 24일에야 통보받았다.

“노동자에게 위험 회피 권리 줘야”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초반에는 가령 물체 표면에도 바이러스가 남아 당분간 이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경로로 감염된 경우는 거의 없어 소독과 폐쇄의 과학적 필요성이 코로나19 발생 초기보다 강조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감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하기 때문에 고지, 알권리 보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역당국은 현재 코로나19에 노출된 정도를 평가해 접촉자의 범위를 판단한다. 접촉자는 확진자의 증상·마스크 착용 여부, 노출력(접촉 장소·접촉 기간 등) 등을 고려해 증상 발생 2일 전부터 접촉자 범위를 설정한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물류터미널처럼 여러 사람이 오가면서 일하는 공간일수록 철저한 방역이 중요한데, 사람을 대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구조다 보니 철저한 방역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더 큰 문제는 일반 회사의 경우 확진 이후 치료를 받고 복귀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일용직은 오히려 복귀를 하지 못한다거나 거꾸로 책임을 추궁당하기도 한다”며 “확진자가 발생해 격리된다고 해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확진자 발생으로 격리되면 당장 수입이 끊기는 구조다.

A사쪽은 “현재까지 해당 현장을 통한 추가 확진은 없는 상황”이라며 “당사는 고객과 택배종사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방역수칙 준수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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