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세웅 기자

일을 구하는 데는 문자 두 통이면 충분했다. 구직 절차는 깜짝 놀랄 정도로 간단했다. ‘알바천국’ 같은 구직사이트에서 택배 상하차를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글이 뜬다. 게시글에 있는 휴대전화 번호에 ‘택배사·이름·나이·성별·통근버스 탑승지·근무가능 기간’을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신분증 앞면과 본인계좌번호를 보내라는 자동응답 문자가 왔다. 신분증 사진을 찍고 계좌번호를 적어 전송했다.
“오늘 출근 가능하세요?” 드디어 문자가 왔다. “네, 가능합니다.” 문자를 보내니 바로 “그럼 오늘 출근해 주세요”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24일 경기도 군포에 있는 롯데택배 군포지점(군포터미널)에서 택배 상하차 일을 시작했다. 오후 4시40분 서울 동작구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반도TS’라고 적힌 통근버스를 타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당역 10번 출구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45인승 통근버스에는 24명이 탔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 다수였다.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숫자를 셌다. “김씨 탔어요?” 그는 혼잣말 하듯 허공에 외치고는 자리에 앉았다. 달리는 버스에서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류센터, 21세기 도심 속 정글

“세웅씨, 어디세요?”
통근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구인 문자의 주인공에게서 전화가 왔다. 롯데택배 군포터미널 건물 정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관리자인 듯한 그는 다른 한 명과 함께 서류 세 장을 가지고 왔다. 근로계약서와 연장근로동의서·사실확인서였다. 그가 볼펜과 서류를 내밀었다. “대충 써요, 대충. 벽에 대고 쓰셔도 되고.” 이름과 서명을 적는 곳에만 옅은 흑색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분명 ㅎ사 공고를 보고 연락했는데 ‘갑’은 반도TS였다. 통근버스에 적힌 이름도 같았다.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오후 5시30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근무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사실확인서에는 ‘네’ 항목에 표시했다. ‘안전교육 등을 제공받았다’는 항목도 있었다. 관리자에게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네’에 체크하냐”고 물었다. “나중에 일하기 전에 교육하니 체크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수리가 벗겨지고 얼굴에 주름이 진 남자가 말없이 관리자 옆에 섰다. 관리자가 친근하게 인사를 건며 “오랜만이에요 ○○씨, 잘 지내세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서류를 받아 든 중년 남자는 “뭐 늘 그렇지. 그런데 이거 또 써야 해?”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서명을 하는 시간은 30초면 충분했다.
관리자는 서명한 서류를 건네받고는 롯데택배 군포지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가로로 긴 탁자 앞에 출근 명부 10여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 업체명이 달랐다. 기자는 ㅎ사 출근명부를 찾아 출근 시간을 기록했다. 출근 시간을 기록하자 관리자가 어떤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 따라가세요, 일 잘하시고요”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관리자가 지목한 사람을 쫓아가며 물류센터 내부를 훑었다. 4층 높이의 넓은 공간에, 바닥에는 녹색 방수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군데군데 페인트가 갈라져 시멘트 속살이 드러났다. 짐을 옮기는 파란색 접이식 수레를 끌고 노동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간헐적으로 쇠 마찰음이 났다. 건물 주변으로 돌아다니는 트럭들의 배기음, 웅웅대며 울리는 컨베이어벨트의 기계음이 공간을 울렸다. 정글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임세웅 기자
임세웅 기자


거친 사람들, 첫 만남에 “야, 나와!”
관리자는 “도망가면 안 된다”


남자는 목장갑 하나를 던져줬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저 사람 도와줘라”며 검지손가락을 폈다. 손가락 끝에는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가 힘없이 어디론가 향했다. 목장갑을 끼고 그의 뒤를 따랐다.
눈이 마주쳤다. 목례를 했다. 반응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는 접이식 수레가 겹쳐져 있는 곳으로 신발을 끌며 이동했다. 접이식 수레를 묶어 놓은 쇠사슬을 풀었다. 낑낑대며 수레 네 개를 빼냈다. 그를 도우려고 수레에 손을 댔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주위가 시끄러워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했다. 그가 소리쳤다.
“나와! 나오라고! 야!”
정신이 곤두섰다. 수레에서 손을 뗐다. 그는 수레를 옮겼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수레를 옮긴 후 “저기로 가”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짐을 수레에 쌓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짐이 실린 수레를 ‘저쪽’으로 옮기라는 명령이 날아왔다. 가리키는 목적지는 컨베이어벨트 앞이었다.
컨베이어벨트 앞으로 모든 짐이 옮겨졌다. 목장갑을 줬던 관리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그는 인력을 배치했다. “임세웅씨? 이 사람 따라다녀요.” 사수배정 후 10분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모두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관리자는 담배를 다 피운 후 말했다. “오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중간에 도망가시면 안 돼요.” 어떤 일을 할지 설명은 없었다. ‘내가 말야, 수색대 유격 조교 출신이고 요새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도망이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먼저다? 아니 ‘짐이 먼저다’

사수는 컨베이어벨트 맨 앞줄에 섰다. 약 5미터 뒤에 섰다. 사수와 내 뒤는 감옥처럼 수레들이 공간을 감쌌다. 사수가 말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움직이는 짐들 중 47·51·55번 짐을 구분해서 수레에 넣어, 라인에서 살짝 내려서 표시해 줄게.” 말이 끝나자마자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갔다. 물건이 밀려왔다. 1초에 5개 물건이 앞을 스쳐갔다. 정신없이 47번과 51번·55번이 적힌 짐들을 수레에 쌓았다.
눈이 뽑힐 것 같았다. 무거운 물건이 연속으로 지나가기라도 하면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리지 못했다. 미처 내리지 못한 물건은 누군가가 수레로 던져 넣었다. “똑바로 안 해?” 어디서 날아드는 소리인지도 몰랐다. 고개도 들지 못했다. 소리의 소재를 파악하려 얼굴을 돌리면 컨베이어벨트의 물건을 놓치기 때문이다. 잠시도 쉬지 못했다. 이내 수레에 짐이 가득 찼다. 짐을 배달하는 일을 맡은 알바가 수레를 재빨리 빼내고 빈 수레를 넣었다. 수레 교체에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레가 어디로 옮겨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반복 작업만을 계속했다.
사수가 “담배!”를 외쳤다. 휴식시간이다. 그새 1시간30분이 지났다. 10분 정도를 쉬었다. 목이 칼칼했다. 옷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수기에서 물을 최대한 많이 마셨다. 다시 자리를 잡고, 담배를 다 피우고 돌아온 사람들과 말 한마디 없이 일을 시작했다. 쉬는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일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허리가 아파 왔다.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자세를 잡았다. 하체를 써서 짐을 옮겼다. 허리는 괜찮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지는 짐들을 수레로 옮길 수가 없었다. 역시 “놓치지 마” 하는 고성이 들려왔다. 다만 무거운 물건은 가벼운 물건과는 다르게 수레로 날아들지 않고 컨베이어벨트를 한 바퀴 더 돌았다. 허리를 써야 하는 짐과 다리를 써도 되는 짐을 재빨리 판별했다. 몸은 금세 물건에 맞춰졌다.
날짜가 바뀌었다. 0시55분이 되자 모두가 한 곳으로 향했다. 눈치를 잘 봐야 생존할 수 있다. 눈치껏 따라갔다. 4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식당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줄을 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도시락을 배급했다. 5천500원이었다. 사람들은 도시락을 사서 건물 여기저기에 걸터앉아 먹었다. 계단에도 사람들이 앉았다. 그렇게 4층에서 지하 2층 계단까지 사람들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몇몇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었다. 매점에서 파는 2천원대 햄버거 하나만 먹는 이도 보였다. 식당에서 도시락을 팔던 아주머니가 “이 사람들 밥도 못 먹으면 어떡하냐”며 사람들에게 바나나를 나눠줬다. 어리둥절해 하는 외국인들은 “서비스, 서비스!”를 외치며 바나나를 받았다.
식사는 15분 만에 끝났다. 추위가 엄습했다. 25일 새벽 온도는 섭씨 0도였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휴게실 문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닫혀 있었다. 불 꺼진 창고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빛에 얼굴을 찌푸렸다. 얼른 창고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바닥 냉기를 막기 위해 빈 박스를 하나씩 깔았다.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나마 덜 추웠다. 난방시설은 없었다.
 

임세웅 기자
임세웅 기자

손톱 들리고 허리·발바닥 통증
몸 신호 무시할 수밖에


새벽 2시부터 업무가 재개됐다. 원래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눈치껏 수레를 배달하는 업무를 맡았다. 목장갑을 던져주며 도망가지 말던 관리자가 어딘가로 지나가며 기자에게 “뽑기 안 하세요?”라고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뽑기요?” 라고 물으니 “아까 하시던 거, 물건 뽑는 거요”라는 답이 왔다. 원래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어 ‘배달’을 한다고 했다. 그는 말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배달은 그나마 뽑기보다는 나았다. 경험 많아 보이는 남자가 “15번, 16번으로 가”라고 하며 짐수레를 줬다. 15번과 16번은 찾기 쉬웠다. 건물 외곽이 1번부터 45번까지 번호로 구역을 나눠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쌓인 짐을 무너지지 않게 운반하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했다. 뽑기에 비하면 힘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15번과 16번 구역으로 수레를 운반하며 둘러보니 후방주차된 트럭들이 있다. 트럭은 2층 높이에 있는 컨베이어벨트와 연결돼 있다. 그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이 쏟아져 내려왔다. 사람들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쏟아지는 물건과 기자가 배달한 수레의 짐을 트럭에 실었다. 빈 수레를 끌고 뽑기 지점으로 향하며 물류터미널이 시외버스터미널 구조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외버스터미널과 물류터미널의 차이는 사람을 운반하느냐, 물건을 운반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짐들을 트럭에서 내리고, 목적지를 분류하고, 목적지에 맞는 트럭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택배 상하차 노동은 그래서 필요하다. ‘배달’을 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을 구조였다.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뽑기 지점으로 돌아오자 “뽑기 안 하냐”고 묻던 관리자가 나타나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컨베이어벨트 맨 끄트머리로 기자를 데려갔다. “뽑기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사라졌다.
컨베이어벨트 맨 끝에서는 식사 전에 했던 일처럼 숨가쁘게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무게가 달랐다. 사수처럼 보이는 40대 남자는 “무거운 짐이 제일 많이 들어오는 자리”라고 했다. 20킬로그램 무게로 느껴지는 쌀과 생수, 절임배추 등이 들어오는 빈도가 높아졌다. 컨베이어벨트 끝이어서 그런지 수레 교체 속도도 느렸다. 20킬로그램 넘는 절임배추 세 박스를 허리보다 높이 쌓인 짐 위로 연속해서 쌓을 때는 “으앗!” 하는 기합이 절로 나왔다. 발바닥과 허리가 찌릿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휴식시간에 화장실에서 목장갑을 벗었다. 왼손 엄지손톱은 살짝 들렸고 오른손 약지는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다. 오른손 약지 손톱도 들려 있었다. 일을 계속했다. 머리가 점차 멍해졌다. 몸은 삐걱댔지만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선가 싸움 일어나도
‘재출근 가능할지’ 계산에만 몰두해야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지만 노동강도는 약해지지 않았다. 물량을 모두 쳐내야 퇴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오전 8시에 마지막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렸다.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없었다. 물량을 다 쳐내고 나서 청소를 했다. 청소 뒤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했다. 퇴근하나 보다 짐작했다. 짐작은 맞았다. 모여든 사람들은 퇴근 명부를 작성했다.
어디선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봐줬더니 말 진짜 x같이 하네. 어디서 굴러먹다 왔냐?” “별것도 아닌 xx가 나한테 xx이야. 뒤지고 싶어?” 고성이 이어졌다. 4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말리는 사람들에 의해 떨어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들을 떼어 놓은 사람들 덕에 주먹다짐은 일어나지 않았다. 싸움을 말리던 사람들은 싸우던 이들의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누구야?” “이번에 새로 온 OO업체 사람이라던데?” 잠시 뒷말이 오갔을 뿐이다.
노동자들은 무관심했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을 줄 곳과 뺄 곳을 잘 구분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 내 앞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틀은 밤샘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오늘 과연 출근할 수 있을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현재 몸 상태, 회복력을 살펴야 했다.
통근버스에 오르자마자 눈을 감으며 역산했다. 사당역에서 오후 4시40분에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타기까지 7시간10분이 남았다. 통근버스는 사당까지 30분, 사당에서 집까지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걸린다. 집으로 귀가하는 1시간30분과 집에서 사당으로 출근하는 1시간은 깊이 잘 수 없다. 집에 오전 11시에 도착해 씻고 늦은 점심을 먹는 데 30분을 쓴다고 하면 4시간은 푹 잘 수 있을까.
몸 상태는 좋지 않다. 허리와 발바닥엔 통증이 남았다. 왼손 엄지와 오른손 약지손톱은 아프다. 4시간 숙면하면 조금 회복될까.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계산은 빨라야 했다. 상하차 필요 인력은 오전 중에 계산이 끝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에는 익숙한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오늘 출근 가능하세요?”

 

택배 상하차, 고강도 저임금 노동인 이유는
중간단계 많고 ‘백마진’ 관행도 … 정부 “사회적 기구 출범시킬 것”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은 원·하청 구조가 만든다. 물류센터에 고용된 노동자는 원청과 두 단계를 걸쳐서 계약한다. 노동자는 롯데물류센터에서 일하지만 롯데글로벌로지스의 하청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구조다. 중간업체들이 수수료를 떼어 가면서 노동자들에게 떨어지는 인건비는 낮아진다. 기자도 롯데글로벌로지스에서 일했지만 롯데글로벌로지스에서 택배 분류 업무를 위탁받은 반도TS와 근로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기자가 인력파견업체인 ㅎ사와 계약했기 때문에 그들도 인력 알선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가 두 번 떼인다.
낮은 택배수수료도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 자료에 따르면 택배 물량은 2015년 이후 매년 10% 내외로 증가하지만 평균 단가는 1997년 상자당 4천732원에서 2019년 2천269원까지 떨어졌다. 단가가 하락하며 택배기사들은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한다.
업계에는 ‘백마진’ 관행도 있다. 백마진은 택배사가 택배비 중 일부를 온라인 쇼핑몰 등에 돌려주는 관행이다. 쇼핑몰 택배 물량을 끌어오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백마진을 상하차와 분류 업무를 하는 노동자와 택배기사 등에게 나눠주거나 고용 인력을 늘리면 노동환경 개선이 가능하다.
백승근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은 지난달 12일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배송수수료는 소비자 문제도 있고 택배업계와 화주 문제,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기구를 출범시켜서 구체적 논의를 진행할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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