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코로나19 기간 동안 외국인노동자는 거의 외출할 수 없어요. 한국 동료 외출에는 (사장이) 아무 말 안 해요. 외국인은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라셰드씨는 준비해 온 발언을 읽어 내려갔다. 한국에서 겪은 이주노동자 차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새로운 차별을 겪었다. 서울시와 경기도·인천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이주노동자에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다. 경기도 한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외국인노동자를 바이러스 취급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기숙사에 사람도 많고 소독도 잘 안 하고 코로나19 교육도 별로 없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주·노동·시민단체의 비판이 일자 검사를 의무화하도록 한 행정명령을 철회했지만, 경기도와 전라남도 등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행정명령을 유지하고 있다.

3월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8개 이주·노동·시민단체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청년공간JU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은 UN이 1966년 제정했다.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샤프빌에서 인종분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해 평화시위를 하던 민간인 69명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고, ‘샤프빌 학살’이 계기가 됐다. 학살 이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이주노동자 차별·혐오로 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생활하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달하던 지난해 12월20일 잠든 뒤 눈을 뜨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주노동자·결혼여성이주민·중국 동포
혐오·차별 이유도 제각각”

이주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은 언감생심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농업 이주노동자 까오 뽄나씨는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10시간에서 12시간에 이르기도 하는데,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한다”며 “문제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도 임금은 최저임금 미만”이라고 답답해했다. 사업장을 옮길 자유가 없는 탓에 부당한 일에 문제제기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사장은 자꾸 제 몸을 건드리려고 이렇게 저렇게 시도했다”며 “결국 사업장을 나오기로 결심했지만, 단지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증언했다.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에게도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통·번역사로 5년째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안은경(한국 이름)씨는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업무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관련 전문자격증을 취득했는데도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며 “선주민과 동일한 시간 일해도 선주민은 임금이 인상되고 저희는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최저임금”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도 불안하다. 1년 미만 쪼개기 계약을 수년째 하고 있다.

서남권글로벌센터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 박연희씨는 “코로나19 발생지가 중국 우한이라는 이유로 재한 중국 동포 80만명은 차별적인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며 “코로나19 유행 초기 정부의 마스크 수급 안정화 정책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6개월 미만 체류자, 유학생,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125만명은 마스크 구매 자격에서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 손 놓은 차별금지법 제정”

이주민 혐오·차별 문제를 풀 해법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모아졌다. 이현서 변호사(화우공익재단)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회구성원들이 논의를 해 보자고 하는 첫걸음”이라며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법 제정이 미루어지고 있는 현실은 아직 우리 사회가 고민과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은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유일하다.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잠들어 있는 사이 일상적인 혐오뿐 아니라, 정부·정치권발 혐오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퀴어축제 참여 여부를 질문받자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이유로 꺼내든 이주노동자 대상 코로나19 전수조사도 궤를 같이 한다.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2018년 12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첫 번째로 권고했지만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반차별의 근간을 마련하고, 사회변화를 요구하는 일들을 이어 가며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차별을 철폐하는 일이 제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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