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마켓컬리 냉장 창고에 출근하며 사진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지만 계약서에 포함된 안전교육은 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 전자문서 갈무리>

마켓컬리 1팀(가칭) 채용 담당자는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무단이탈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휴대전화는 쓰시면 안 됩니다. 휴대전화 사용하다가 걸리면 한 번은 경고, 두 번이면 집에 가셔야 해요. 창고 안에서 사진 찍으시면 안 되고, 화장실 가고 싶으시면 조끼 입은 관리자에게 물어보세요. 말 안 하고 화장실 가면 무단이탈이고 경고 누적되면 퇴근입니다. 몸을 쓰는 일이라 간혹 거친 분들이 있는데 일하다 못 견디겠으면 와서 말씀하시고 퇴근하세요. 퇴근할 때 퇴근 명부에 서명 안 하시면 급여 지급 안 됩니다. 쉬는 시간 40분은 두 번으로 끊어 쉽니다. 오후 7시부터 20분, 오후 9시40분부터 20분 쉬고 시간은 조금 바뀔 수 있어요.”
‘일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경고였다. 담당자의 안내를 듣고 출근 명부에 이름을 적었다. 담당자는 연장노동 동의란에도 서명하라고 했다. 사전에 업체에서 ‘연장노동에 동의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받은 터였다. 원치는 않았지만 동의란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20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서울복합물류센터 D동에서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알바로 일했다. 19일은 냉장 창고에서 포장 업무를, 20일은 상온 창고에서 종이 완충재를 정리했다. 마켓컬리가 2015년부터 시작한 ‘샛별배송’은 전날 오후 11시까지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집 앞에 상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새벽배송’ 시장 이면에는 이른 새벽까지 물건을 포장하고 밤새 배송하는 새벽노동의 그림자가 있었다.

안전교육 이수 서명했지만
“지게차 피해 다녀라”는 경고가 전부


업무 시작시간인 오후 5시를 10분 남기고 담당자가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옆 대행업체가 모집한 사람까지 60여명은 족히 돼 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학이름이 적힌 외투를 입은 대학생부터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과 남성도 있었다. 30~40대로 보이는 이들도 더러 있었고, 젊은 여성도 많았다.
담당자는 주의사항을 다시 안내했다. 휴대전화 사용과 근무지 이탈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최근 지게차에 치이는 일이 많으니 지게차를 보면 무조건 피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휴대전화로 전달된 근로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계약서에는 ‘정기 안전교육’을 10분간 이수했다는 안전교육확인서가 포함돼 있었다. 냉장 창고 안 위험 시설 안내와 안전화·안전장갑 같은 보호구를 착용한다는 지침도 있었지만 관리자의 안내는 없었다. 다시 보니 지원한 근무조도 계약서에 적힌 것과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담당자는 계약서를 작성할 때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전자문서로 발행됐는데 처음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를 빼고는 계약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4장의 계약서에 동의 서명을 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코로나19 문진도 직원이 대신 입력했다.

이름·나이·근무지 같은 간단한 정보로 출근 신청
‘투잡’과 ‘급전’ 필요한 이들이 주로 지원


그나마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대기자가 많으면 출근 확인 문자를 받아도 일을 못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대행업체가 일 정보를 공지하는 오픈채팅방에서 구직자들은 종종 ‘2시간 빨리 가야 한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일부 업체가 당일 필요한 인원보다 많은 사람에게 근무확인 문자를 보내고 선착순으로 일할 사람을 뽑기 때문이다. 출근하고도 허탕 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빨리 센터에 도착해야 했다.
마켓컬리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채용대행업체에 아웃소싱한다. 대행업체는 ‘일당 익일 지급’과 ‘초보 환영’ 문구를 내걸고 구직자를 유혹한다.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 ‘마켓컬리 물류’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마켓컬리 S팀, T팀, A팀’ 등 서로 다른 대행업체들이 올린 글이 나온다.
근무시간은 다양하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오전 조도 있고, 오후 4시 출근해 새벽 1시에 끝나기도 한다. 저녁 7시30분 출근해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하는 일명 ‘투잡(Two Job)이 가능한 조’도 있다. 퇴근한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종종 ‘투잡’을 뛴다며 4대 보험 중복가입이 가능한지를 채팅방에서 묻곤 했다.
근무지는 서울복합물류센터 내 마켓컬리 냉장 창고나 상온 창고다.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에 위치한 물류센터의 인력 모집 글도 간혹 보인다. 구직자는 DAS(다스)·포장·피킹 등 지원 업무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업무에 관한 설명은 없었다. 출퇴근 시간이 적당한 것을 골라 대행업체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냉장/이름/나이/여성/19일 17시 희망’이라는 정보만 적으면 됐다. 오후 5시부터 새벽 1시에 일이 끝나는 냉장 창고의 포장업무에 지원했다. 휴게시간은 40분, 실제 근무시간은 7시간20분으로 일당 8만5천249원이다.

▲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서울복합물류센터에는 택배사들이 임대해 쓰는 물류창고가 있다. 마켓컬리는 D동 물류센터에 상온·냉장 창고를 두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서울복합물류센터에는 택배사들이 임대해 쓰는 물류창고가 있다. 마켓컬리는 D동 물류센터에 상온·냉장 창고를 두고 있다.


말보다는 눈치로 적응해야 하는 현장
“지게차를 피하라”는 안전교육이 끝나고, 담당자는 우리를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은 앞 사람을 따라 작업구역으로 이동했다. 냉장 창고 안에는 재고가 쌓여 있었고 겨울옷을 여러 겹 껴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곳곳에서 지게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창고 바닥에 지게차 동선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사람들도 많고, 기계 작동음으로 창고 안이 몹시 시끄러운 데다가 물량이 많이 쌓여 있어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눈치껏’ 피해야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창고 안에 도달하자 ‘마켓컬리’ 상표가 적힌 조끼를 입은 직원이 사람들을 맞았다. “1차 포장 가능하신 분”이 있는지 물었다. 일에 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1차 포장’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손을 든 몇 사람을 직원이 지목해 앞에 세웠다. 기자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신입’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직원이 좁고 가파른 철제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고, 사람들이 뒤를 쫓았다.
2층에는 창고 바깥까지 이어진 거대한 레일이 있었다. 그 위로 상자 몇 개가 레일 끝부터 바깥까지 옮겨지고 있었다. 직원이 레일 옆 작업대에 사람들을 한 명씩 세웠다. 얼떨결에 레일 바로 옆 작업대에 서게 됐다.
여태껏 꽤 많은 종류의 일일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지만 맡은 일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한 것은 이 일이 처음이었다. 작업대 앞에 멀뚱히 있었는지, 옆에 선 ‘1차 포장 담당자’가 “매니저님 거기 쌓여 있는 박스 좀 옮겨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스스로가 무슨 일을 맡은지도 모른 채 일이 곧바로 시작됐다.

숨돌릴 틈 없이 일하는 물류센터 ‘매니저’들
시간 내 출고 위해서는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없어


창고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매니저님’이라고 불렀다. 옆에서 ‘선배’ 역할을 한 1차 포장 담당자 A씨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빠르게 공정을 일러 줬다. 설명하면서도 눈과 손은 쉬지 않고 일했다.
“상자 겉에 보면 크기별로 호수가 표시돼 있어요. 제가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물건을 보고 1차 포장을 할 거예요. 그러면 매니저님이 송장에 적힌 물건의 개수와 상자에 담긴 물건을 확인하고 테이프를 붙여 2차 포장을 하면 돼요. 송장은 상자 가운데에 잘 붙이고 상자는 레일 안쪽까지 잘 밀어 태우세요.”
기자가 맡은 업무는 일명 ‘2차 포장’이었다. 물류센터의 배송 전 마지막 공정이다.
창고에 쌓인 재고가 레일을 타고 다스 구역으로 오면 사람들은 고객이 주문한 수량에 따라 바구니에 물건들을 넣는다. 바구니에 한 명의 고객이 주문한 상품이 모두 들어가고 나면 다스 구역에서 포장 구역으로 바구니를 옮긴다. 포장 담당자들이 바구니에 담겨 온 상품을 종이상자에 넣어 1·2차 포장을 마치고 레일 위에 상자를 태운다. 배송 레일을 탄 상자는 권역별로 분류가 끝나면 배송차량에 상차돼 고객에게 배송된다.
공정 전체를 놓고 보면 포장은 간단한 업무에 속하지만, 여러 규칙이 있었다. A씨가 때마다 필요한 설명을 해 줬지만 일하면서 몸으로 익혀야 했다.
1차 배송을 맡은 사람이 모든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종이 상자를 선택한다. 상자 종류는 네댓 개가 넘는다. 저마다 크기가 다르다. 깨질 위험이 있는 달걀이나 유리병에 담긴 상품은 종이 완충재로 감싼다. 냉장·냉동 보관이 필요한 상품들은 상자 바닥에 얼음 팩을 깔고 그 위에 상품을 담는다. 채소는 얼음과 직접 닿으면 냉해 우려가 있어 종이 완충재로 얼음 팩 위를 덮는다. 상자의 크기와 호수를 외우고 상자별로 얼음 팩이 몇 개 들어가야 하는지, 상품별 포장 방법 등을 되새겼다.
공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돼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작업테이블 바로 맞은 편에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2명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다. 허리 높이 작업대 앞에 서서 쉬지 않고 손을 놀려야 했다.
포장 업무는 작업용 장갑이 필요한 일이었다. 차가운 물건을 계속 만지기 때문에 금세 손이 시려웠다. 대행업체는 사전에 장갑을 챙겨 오라고 안내하거나 현장에서 소지 여부를 묻지 않았다. 필요하면 현장에서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기자 앞에 1차 포장을 마친 상자가 여러 개 쌓이자, A씨가 “처음이라 정신이 없겠지만 금방 익숙해질 거다”고 격려했다. “저도 첫날에는 기어서 집에 갔어요”라고 귀띔했다. A씨는 “첫 배송차가 9시쯤 나가니까 그 전까지는 쉬기가 어렵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도망가면 안 된다”는 말도 전했다.

휴게공간 없어 비상구 밑에 몸 누여

쉬는 시간이 되자 1층 창고 입구로 내려왔다. 손과 몸이 얼어 몸을 녹일 곳이 필요했지만, 쉴 곳이 없었다. 창고 입구에는 노란색 화물용 플라스틱 상자가 널려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의 소지품이 담겨 있었다. 재빨리 이동한 사람들은 상자를 뒤집어 의자로 삼았다. 뒤늦게 나온 사람들은 창고 바닥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며 휴식을 취했다.
층마다 용변칸이 2개뿐인 화장실에도 대기 줄이 길었다. 업체별로 쉬는 시간이 같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어려웠다.
비상구로 나가 계단에 앉으려고 보니 계단 아래쪽 빈 공간에 부서진 의자와 박스가 펴져 있었다. 쉴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누인 흔적이었다.
쉬는 시간이 20분뿐이라 저녁식사도 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 간편식으로라도 끼니를 때우고 싶었지만 냉장 창고에서 편의점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 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창고 입구에 놓여 있던 식염포도당 사탕을 몇 개 집어들었다.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니 시간은 빨리 갔지만 피로가 극심했다. 쉴 틈 없이, 실수 없이 잔뜩 긴장하며 일한 탓이다.
1층 계단 바깥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앉아 계단 난간에 기대 쉬고 있었다. 물류단지에는 화물차와 물건을 위한 공간은 있었지만 사람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앉을 곳을 찾다 잔디밭 위에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게 설치한 돌(볼라드)위에 앉아 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다”

달콤한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A씨 조언에 따라 쉬는 시간이 끝나기 2분 전까지 작업대로 돌아와야 했다. A씨는 창고에서 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20~30대 여성으로 보였고, 무척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냐”고 물었더니, “지난번 금요일에 업무가 연장돼 새벽 1시40분에 퇴근한 뒤로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고 답했다. “생각보다 일이 더 힘들고 쉴 틈이 없다”는 기자의 말에 “이전보다 사람을 더 적게 뽑는 것 같아 일이 힘들어졌다”고 평했다.
포장 공정에서도 애초 3명이 한 조로 일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2명이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박싱 매니저라고 박스를 정리하고 송장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한데 얼마 전부터 2명이 모든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포장될 물건을 기다리며 잠시 작업대에 기댔더니 창고를 눈으로 훑던 A씨가 “컬리 직원이 쉬는 거 보면 뭐라고 하니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퇴근을 한 시간 앞둔 자정이 되자 갑자기 안내 방송이 나오며 현장 관리자가 포장 업무에 서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냈다. 무작정 앞 사람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상자더미를 2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몰랐지만 사람들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사람들은 자기 키보다 훨씬 높게 쌓인 상자더미를 들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넘어지기라도 하면 여럿이 크게 다칠 것 같았다.
관리자는 사람들을 2층 한편으로 불러모으고 이곳에서 포장을 하라고 지시했다. 아까 일하던 작업대가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물건을 포장하는 일로, 업무 내용은 같았지만 상자 크기도 달랐고 작업 동선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완충재나 테이프가 없어 여기저기서 “어떻게 일하라는 거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관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A씨에게 “갑자기 이렇게 업무가 바뀌기도 하냐”고 물으니 “이곳은 원래 이렇다”고 답했다.
새벽 1시, 퇴근시간을 알리는 관리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고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A씨와 “오늘 고생 많았다”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퇴근 명부에 급히 퇴근 서명을 하고 도망치듯 냉장 창고를 빠져나왔다. ‘강남역까지 카풀하실 분’ ‘잠실역까지 택시 타실 분’ 같은 메시지가 단체채팅방에 계속 올라왔다.

▲ D동 지하 1층 냉장 창고 입구에 식염포도당 사탕이 놓여 있었다. D동과 식당동은 멀어 쉬는 시간 안에 식당을 다녀오기가 어려웠다.
▲ D동 지하 1층 냉장 창고 입구에 식염포도당 사탕이 놓여 있었다. D동과 식당동은 멀어 쉬는 시간 안에 식당을 다녀오기가 어려웠다.

 

관리자 갑질에 속수무책,
“일용직 노동자라서 서럽다”


다음 날은 마켓컬리 상온 창고로 출근했다. D동 4층이었다. 출근시간에 딱 맞춰 도착해 ‘815번’이라고 적힌 바코드 명찰을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대행업체 담당자는 쉬거나 출퇴근할 때 바코드를 꼭 찍으라고 일러 줬다.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B씨와 대행업체 직원이 이런저런 상의 끝에 ‘바나나 파우치’를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 전날 업체에는 다스 구역에서 일하고 싶다고 지원 메시지를 보냈으나 원하는 대로 일할 수는 없었다. 다스 구역에는 주로 남성들이, 포장업무는 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대행업체 직원이 이 일이 “이 창고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바나나 파우치’는 바나나가 포장·배송 과정에서 손상되지 않도록 감싸는 종이 완충재다. 사람 키만 한 기계에서 구겨진 종이 완충재가 튀어나오면 화물용 플라스틱 상자에 차곡차곡 쌓았다.
전날 했던 포장업무와 달리 이 일은 별다른 규칙이 없었다. 기계에서 종이가 나오면 세로로 쌓다가 다른 상자에 옮겨 가로로 누여 두 줄씩 포갰다.
몸은 훨씬 편했지만 마음은 다소 불편했다. 업무 배정 당시 만난 현장 책임자 B씨가 기자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줬다. 기계가 관리자 작업대 바로 앞에 있어 B씨는 기자가 일하는 과정을 언제든 볼 수 있었다.
업무에 금세 적응했지만 ‘종이가 삐죽 튀어나왔다’거나 ‘종이를 여러 번에 나눠 옮기지 마라’는 지적이 계속됐다. 업무의 완성도와는 관계가 없는 지적이었다. 관리자의 조언대로 한다고 업무 진척이 더 빨라질 것도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B씨는 “바보냐” 혹은 “일을 똑바로 하라”고 면박을 줬다.
잠시 앉아 완충재를 정리했더니 1분도 되지 않아 B씨가 “일어나서 일하라”고 주의를 줬다. 창고 소음으로 잘 못 들어 늦게 일어서자 B씨는 대행업체 직원을 불렀다. 대행업체 직원이 “B반장님이 조금 거친 면은 있지만 여기서 오래 일해 고참”이라며 “매니저님은 쉬운 일을 하고 있으니 질서에 잘 따라 주세요”라고 말했다. 연신 “죄송합니다. 잘 못 들은 거예요”라고 해명했지만 관리자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이 관리자는 오픈채팅방에서 종종 ‘갑질 관리자’로 회자되는 인물이었다. 어떤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이 관리자를 두고 ‘사람들에게 매번 소리를 지르는 B씨는 직장내 괴롭힘을 하지 마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마켓컬리 물류센터는 주 5일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월 8일 이상 일하면 노동자에게 4대 보험을 가입해 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일하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채팅방에서 ‘일용직 노동자라서 서럽다’고 했다. 어떤 이는 ‘마켓컬리 물류센터는 직장내 괴롭힘 법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폭언을 하는 관리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증언도 있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그날 저녁 자신이 관리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토로하기도 했다.

배송 스케줄 맞추려 끊임없는 업무 독촉
연장노동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관리자들의 독촉이 이어졌다. 특정한 업무 구역을 거론하며 “빨리 움직여라”는 방송이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관리자들이 모인 책상 앞에는 업무 진척도가 표시된 큰 모니터가 있었는데 예상 속도보다 실제 작업 속도가 더딘 듯했다. 현장 관리자들이 무척이나 초조해 보였다.
현장 관리자 B씨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이동시켰다. 냉장 창고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갑자기 바뀐 업무를 배정받아 일을 시작했다. 지게차가 오가는 곳이라 동선에 주의해야 했지만, 관리자들은 “걷지 말고 뛰어라”거나 “일 못 마치면 계속 연장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방송했다.
새벽 1시, 퇴근시간이 다 됐지만 퇴근하라는 지시가 없었다.
관리자의 방송에 따라 휴식시간과 식사를 하고, 지시가 없으면 움직여서는 안 됐다. 지나가던 관리자를 붙잡고 “퇴근은 언제하냐”고 물으니 “조금 이따 방송할 것”이라며 “그 일은 그만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장노동이었다. ‘이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기가 곤란했다. 창고 안을 뛰어다니는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와 퇴근 바코드를 찍었다. 대행업체 직원에게 ‘일이 끝나 연장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도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창고 안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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